[모터매거진 2014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1950년대 들어 점차 커지고 있는 다용도차 시장을 목표로 피아트가 개발한 600 물티플라는 현대적 모노볼륨 또는 원박스카의 시초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인기 모델 600의 구동계를 활용해 개발비를 줄이면서도 차체 크기의 한계를 뛰어넘은 파격적 설계에 힘입은 실용성이 돋보였다.

피아트는 1950년대에 들어서며 소형차 시장이 커질 것을 예상하고 다양한 수요에 맞춰 여러 모델을 갖출 계획을 세웠다. 당시 피아트의 기술 개발을 책임지고 있던 단테 지아코사(Dante Giacosa)는 2세대 500과 차체를 키운 600 등 승용차 개발과 더불어 실용성이 높은 차의 수요도 고려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에는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파밀리알레, 모리스 마이너 트래블러 등 실용성 높은 스테이션 왜건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었다. 피아트는 1949년에 나온 500 자르디니에라(Giardiniera)라는 초대 500(토폴리노)의 왜건 버전이 있었지만, 좀 더 크고 현대적인 모델이 필요했다. 

여러 여건을 고려했을 때 600을 바탕으로 왜건을 만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법이었지만, 뒤 엔진 뒷바퀴 굴림 구조 때문에 엔진룸이 뒤에 있는 600으로는 일반적인 왜건처럼 뒤쪽에 큰 문을 달 수가 없었다. 게다가 600 조차도 소형차로는 비교적 작은 편어서, 다용도로 활용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다. 지아코사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역발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고, 그 결과로 1956년에 나온 것이 600 물티플라(Multipla)였다.

파격적인 모노볼륨 차체 사용해

지아코사는 600 물티플라에 600의 하체를 그대로 활용하는 대신 운전공간을 앞바퀴 앞쪽으로 옮긴 모노볼륨 또는 원박스 형태의 차체를 설계했다. 모노코크 구조의 차체에 운전석에서 적재공간에 이르는 실내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한 것은 당시에는 무척 파격적이었다.

운전석을 앞쪽으로 옮기면서 실내 뒤쪽에는 넓은 공간이 생겼고, 그 덕분에 차체 길이는 3.53m, 휠베이스는 2m에 불과했지만 상자 모양의 차체 안에는 좌석을 3열까지 배치할 수 있었다. 대신 차체 앞쪽 윤거를 넓히고 피아트 1100의 것을 바탕으로 손질한 서스펜션을 이식했다. 코일 스프링과 위시본 구조를 쓴 앞 서스펜션은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었고, 사다리꼴 프레임을 쓰는 일반 상용차와 달리 승용차에 가까운 모노코크 구조를 활용해 차체 바닥을 최대한 낮출 수 있었다. 

좌석 구성은 모델에 따라 2열 또는 3열이 있었고, 4/5인승과 6인승, 택시의 세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2열과 3열 좌석은 등받이를 접으면 평평한 바닥이 되어 다용도 차로 인기가 높았다.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짐을 실을 수 있는 실내 바닥 면적은 1.75제곱미터에 이르렀다. 이처럼 뛰어난 실용성 덕분에 이탈리아에서는 오랫동안 택시로 널리 쓰였다. 또한, 당시 고급 세단에서도 보기 어려운 편의 기능이 쓰인 것도 눈길을 끌었다. 히터와 통풍 시스템은 물론 모든 도어에 잠금 기능이 있었고 엔진룸에는 조명도 마련되었다.

부드러운 곡면으로 된 차체 앞쪽에는 두 개의 둥근 헤드램프 사이에 크롬도금된 그릴이 있었고, 그 안에는 히터 역할을 겸하는 작은 라디에이터가 있었다. 아래쪽에 낮게 깔린 범퍼는 앞모습에 독특한 표정을 만들었다. 옆부분은 밋밋함을 피하기 위해 앞뒤 바퀴 주변 펜더를 살짝 부풀렸다. 부풀린 앞 펜더는 600에는 없던 것이었다. 차체 좌우에 두 개씩 마련된 도어는 모두 경첩이 B 필러에 있어 앞은 앞를 향해, 뒤는 뒤를 향해 열렸다.

앞모습은 600과 완전히 달랐지만, 뒤쪽은 바탕이 된 600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앞쪽과 달리 뒤쪽은 어느 정도 기울어진 모습이었는데, 이는 뒤 차축 뒤에 놓은 엔진 냉각을 돕기 위한 방법이었다. 엔진룸 덮개에는 통풍구가 있어 주행 중 지붕 뒤쪽으로 흐르는 공기가 엔진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600의 구동계 그대로 사용해 개발비 줄여

엔진룸 안쪽에는 600과 마찬가지로 수랭식 직렬 4기통 633cc 21마력 휘발유 엔진은 뒤 차축 뒤에 놓였다. 엔진 동력을 뒷바퀴로 전달하는 변속기는 4단 수동으로 1단과 후진을 제외한 모든 단에 싱크로메시가 있었다. 600 물티플라에 600과 같은 구동계를 활용한 덕분에 피아트는 개발비용을 줄였고, 소비자는 편리하고 경제적으로 유지 보수를 할 수 있었다. 무게는 700kg 정도로 가벼운 편이었지만, 출력이 낮은 엔진에게는 부담스러웠다.

결국 1960년에는 엔진 배기량을 767cc로 키운 600 D 물티플라가 나왔다. 29마력으로 올라간 최고출력은 여전히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짐을 많이 실었을 때나 언덕을 오를 때에 엔진이 버거워하던 현상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최고속도는 초기 633cc 버전이 시속 90km, 후기 767cc 버전이 시속 105km 정도였지만 어느 것도 고속주행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 소형차에 보기 드문 네 바퀴 독립 서스펜션과 낮은 무게중심, 가벼운 스티어링 덕분에 주행감각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얻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 정부가 차체 앞쪽에 충돌 사고 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도록 법규에 명시하면서 600 물티플라의 생산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후속 모델인 850 파밀리알레가 나온 1966년까지 약 17만 대가 생산되었고, 633cc 엔진을 얹은 모델이 7만 6,000여 대, 767cc 엔진 모델이 9만 4,000여 대가 팔렸다. 길이를 늘리면서 차체를 더 상자에 가깝게 만든 상용 버전인 600T도 1962년부터 1964년까지 2만 대 가까이 생산되었다. 바탕이 된 600을 피아트가 1969년까지 270만 대 가까이 생산한 것과 비교하면 그리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600 물티플라는 폭스바겐 타입 2/마이크로버스와 더불어 현대적인 모노볼륨 또는 원 박스 카의 시초 중 하나로 자동차 역사에서 지닌 의미가 크다. 지아코사는 나중에 자신이 개발했던 여러 차 가운데 600 멀티플라가 가장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피아트는 1998년에 내놓은 6인승 다목적차에 물티플라라는 이름을 부활시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