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5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머스탱의 성공에 고무된 포드는 유럽 시장에도 같은 개념의 차를 내놓기로 했다. 그래서 대중차 코티나를 바탕으로 만든 스포티한 스타일의 2도어 쿠페 카프리가 만들어졌다. 데뷔와 함께 큰 인기를 얻은 카프리는 유럽 시장에 새로운 시장 흐름을 만들어 내었다.

1964년에 포드가 내놓은 머스탱은 포드의 브랜드 이미지를 바꿔놓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젊은 계층도 살 수 있는 합리적인 값에 스포티한 스타일과 성능, 실용성을 고루 갖춘 덕분에, 개성 없는 대중차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희석할 수 있었다. 머스탱은 포드 입장에서도 효자 모델이었다. 이미 만들고 있는 차의 기술을 가져와 적은 비용으로 차를 만들 수 있었고, 여러 선택사항을 추가로 판매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기대낼 수 있었다.

머스탱 성공 계기로 만들어진 유럽형 포니카

머스탱이 짧은 시간 사이에 큰 성공을 거두자, 포드는 유럽 시장에서도 같은 역할을 할 차를 내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머스탱의 수출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미국에서는 소형차 취급을 받은 머스탱도 다른 시장 기준으로는 너무 컸다. 게다가 관세를 비롯한 가격장벽도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포드는 유럽 포드를 통해 유럽 환경에 맞춘 머스탱 개념의 차를 만들기로 했다. 유럽형 포드 모델 가운데 스포티한 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로터스의 힘을 빌어 튜닝한 로터스 코티나는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하며 좋은 평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포드는 고유 모델로 그런 성공을 이어가기를 원했다.

1964년 가을. 유럽 포드는 유럽형 포니카 계획인 ‘프로젝트 콜트(Colt)’를 시작했다. 콜트는 수망아지를 뜻하는 영어 단어여서, 머스탱의 개념을 이어받은 차임을 분명히 했다. 디자인은 미국 디어본, 영국 던튼, 독일 메르케니히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각각 제안했다.

그 가운데 영국 스튜디오의 제안이 기본 디자인으로 선정되었다. 영국안은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롱 노즈 숏 데크 스타일에 머스탱의 상징적 요소 중 하나였던 뒷바퀴 앞쪽의 통풍구 장식을 제외하면  머스탱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1966년 7월, 초기 디자인에 만족할만한 반응을 얻자 포드는 이 개념을 양산차로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개발비로는 2,000만 파운드가 배정되었고 1968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시제차 개발은 영국에서 주도하고 독일 포드가 지원하는 것으로 조율되었다. 이전까지 포드는 유럽에서 영국과 독일 법인이 독자적으로 개발과 생산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1967년에 두 법인이 합병되어 포드 유럽이 만들어졌고, 모델 통합과 더불어 양쪽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시제차는 1.3리터에서 2.0리터에 이르는 여러 엔진을 얹고 영국에서 시험되었다. 개발 책임자는 존 히치맨(John Hitchman)으로, 앞서 나온 소형 쿠페인 컨슬 카프리(Consul Capri)의 개발을 지휘한 인물이었다.

차체 디자인은 새로웠지만 설계 부문에서는 최대한 다른 차종의 부품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머스탱에서도 그랬듯, 생산원가를 최대한 줄이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핵심 부품들을 유럽 포드의 다른 모델에서 가져올 수 있었다. 기본형 모델의 1.3리터 엔진은 당시 갓 데뷔한 1세대 에스코트, 1.6리터 엔진은 2세대 코티나, 1969년 3월에 추가된 V4 2.0리터 엔진은 컨슬 콜세어에 쓰인 것이었다. 변속기는 모두 2세대 코티나의 것을 썼다. 뒤 서스펜션은 판 스프링을 쓴 라이브 액슬, 앞 서스펜션은 맥퍼슨 스트럿 방식이었다.

시제차에는 시판될 카프리에 쓰일 대부분의 기능이 담겨 있었지만, 옆모습은 양산형과 달랐다. 2도어 쿠페 형태의 차체 옆면에는 뒷좌석 탑승자가 밖을 볼 수 있는 유리가 있었는데, 차에 탄 상태에서는 거의 밖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제품 품평에서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폐소공포증을 느낀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뒷좌석 옆 유리를 독일 디자인 팀이 제안한 반원형으로 바꾸었다.

두 차례 모델 체인지, 1986년까지 생산되어

최종 양산차 디자인이 확정된 후 1달 남짓이 흐른 뒤인 1967년 11월에는 모델 이름이 확정되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 이름에 쓰인 콜트를 그대로 쓸 계획이었지만, 미쓰비시가 먼저 상표등록을 한 탓에 다른 이름을 써야 했다. 새롭게 정해진 이름은 카프리였다. 휴양지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섬 이름인 카프리는 포드 유럽에서 만들었던 컨슬의 2도어 쿠페에도 쓰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컨슬 카프리는 판매에 실패해 일찌감치 단종되어, 새 차에 이름을 가져다 쓰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양산 모델은 1968년 11월부터 영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해, 1969년 1월에 벨기에에서 열린 브뤼셀 모터쇼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카프리는 데뷔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저렴하면서도 스포티한 디자인을 지닌 차가 드물었기 때문에, 출시 초기에는 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판매대수는 1970년까지 40만 대, 1973년에는 100만 대를 넘겼다. 1972년에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사각형 헤드램프가 두 개의 원형 헤드 램프 두 쌍으로 바뀌었다.

스타일에 관계없이 폭넓은 소비자에게 팔고 싶었던 포드는 카프리에 다양한 엔진을 얹었다. 영국 생산 버전은 1.3리터, 1.6리터, V4 2.0리터 엔진, 독일 생산 버전은 V4 1.3리터, V4 1.5리터, V4 1.7리터, V6 2.0리터 엔진이 올라갔다. 포드는 머스탱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카프리의 고성능 모델에 관심이 없었지만, 인기를 얻자 스포티한 이미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성능 모델을 추가하고 모터스포츠에 적극 투입하기 시작했다. 1969년 말에는 영국 버전에 V6 3.0리터 엔진이, 독일 버전에 2.3리터 엔진이 추가되었다. V6 3.0리터 엔진을 얹은 3000GT는  당시 영국 포드 차 중 가장 빨랐다.

카프리는 두 번의 모델 체인지를 거치며 1986년까지 생산되었고, 영국은 물론 벨기에,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200만 대 가까이 생산되었다. 1970년부터 1978년까지는 독일에서 생산된 버전이 미국으로도 수출되어 머큐리 브랜드로 판매되기도 했다. 카프리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오펠도 아스코나를 바탕으로 만든 만타로 같은 시장에 뛰어들었다. 카프리와 만타는 1970년대 여러 모터스포츠 이벤트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