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5년 3월 23일자에 ‘맨발의 이사도라’는 부가티 뒷바퀴에 스카프가 감겨 목숨 잃었을까?’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자동차는 발명된 직후부터 현대사의 주요 장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초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을 좌우한 사람들의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대부분 지금보다 과거의 자동차와 유명 인물이 얽힌 이야기들이 더 흥미롭고 극적이다.

그 시절, 자동차와 명사가 연관된 사건 중 가장 극적인 것 중 하나가 이사도라 덩컨의 죽음이다. 덩컨은 현대무용의 개척자이면서 여성 해방의 불씨를 당긴 인물이다. 그러나 자신의 분야에서 거둔 성공과 세상에 미친 영향에 비하면, 개인의 삶은 무척 어두웠다. 그리고 그런 어둠이 짙어진 데에는 자동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인 1913년에 두 자녀를 자동차 사고로 잃었다. 아이들을 태우고 집에 가던 차가 세느강에 빠져 모두 익사한 것이다. 이후 충격으로 방황하던 덩컨은 1922년에 러시아에서 만난 16세 연하의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과 결혼한다. 그러나 곧 파경을 맞고 다시 방황하다가 1927년 9월 14일에 자동차와 얽힌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다. 긴 스카프가 차의 뒷바퀴에 감기며 목이 꺾여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 사고였다.

워낙 유명한 사고였던 탓에, 사고 당시 그녀가 타고 있던 차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동안 부가티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자동차 역사가들이 오랫동안 관련 자료를 찾은 결과, 덩컨의 목숨을 앗아간 차는 프랑스 아밀카(Amilcar)가 만든 그랑 스포르(Gran Sport)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부가티와 아밀카 사이에 혼란이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아밀카가 ‘가난한 자의 부가티’라 불릴 정도로 부가티와 모습이 비슷하면서 성능도 뛰어난 데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사고 당시 차를 몰았던 덩컨의 친구에게 덩컨이 붙여준 별명이 부가티였고, 그 친구가 갖고 있던 차 중에도 부가티가 있었다. 혼란스러운 여러 증거 속에서도 사고 차로 아밀카가 확실시되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여러 목격자가 남긴 증언으로 추정한 차의 모습이 일반적인 부가티보다 아밀카 그랑 스포르에 더 가깝고, 휘날리는 스카프가 차축에 감기기 더 쉬운 형태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덩컨이 부가티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68년에 만들어진 영화 ‘맨발의 이사도라’에서 사고 장면에 쓰인 차가 부가티였던 탓도 있지만, 덩컨처럼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면 당대 최고의 차로 손꼽히던 부가티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전성기의 부가티가 지닌 카리스마도 덩컨만큼이나 대단했음을 그들의 생각에서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