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5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역 산업화로 고용을 늘리려는 정부 계획에 따라 알파 로메오가 이탈리아 남부에 새로 세운 공장에서 만든 소형차가 알파수드다. 독특한 개념과 설계로 운전재미와 실용성을 고루 갖춰 호평을 얻었지만, 악명높은 차체 부식으로 알파 로메오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알파 로메오는 줄리아 시리즈, 스파이더 등 매력적인 디자인과 스포티한 주행특성을 지닌 대중차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경영은 안정되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1930년대 이탈리아 정부가 지원하는 IRI(이탈리아 산업부흥공사)가 인수한 뒤 사실상 준 국영기업으로 명맥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 정부는 농업에 크게 의존하던 이탈리아 남부를 산업화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높은 실업률이 사회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공장을 세우고 채용을 늘리려는 의도였다.

이탈리아 남부의 공장에서 이름 유래해 

당시 알파 로메오의 주세페 루라기(Giuseppe Luraghi) 사장은 이 계획을 새로운 기회로 여겼다. 이탈리아 남부에 대규모 자동차 공장을 세우면 정부 지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구실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마침 나폴리 인근의 포밀리아노 다르코(Pomigliano d’Arco)에는 알파 로메오가 항공기용 엔진을 생산하던 공장 부지가 있었다. 그는 이 부지를 활용해 자동차 공장을 짓고, 당시 수요가 많던 소형차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이전까지 알파 로메오는 배기량 1.3리터를 밑도는 소형차를 양산한 적이 없었다. 이는 피아트와 맺은 신사협정에 따른 것으로, 피아트가 고성능 고급차를 만들지 않는 대신 알파 로메오는 소형차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시장이 겹치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경영난이 해소되지 않는 알파 로메오에게 신사협정은 시장확대를 막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대규모 자동차 공장을 신설하면 그만큼 고용도 늘 것이라 기대했던 이탈리아 정부는 알파 로메오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금을 지원했다. 1967년에 새 소형차를 만들 공장을 위해 새로운 법인인 알파수드(Alfasud S.p.A.)가 만들어졌다. 회사 이름은 알파 로메오의 알파에 남쪽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단어인 수드(sud)를 결합한 것이었다. 이는 밀라노를 비롯해 이탈리아 북부에 뿌리를 둔 이전까지의 알파 로메오와 구분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었다. 

루라기 사장은 새로 생산할 소형차를 구체화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출신 엔지니어인 루돌프 흐루스카(Rudolf Hruska)에게 설계를 맡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함께 일했던 그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피아트, 생카, 아바르트 등을 거치며 활동하고 있었다. 설계와 디자인에는 한창 이름을 높이고 있던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알도 만토바니가 합류했다. 주지아로와 만토바니는 이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이탈디자인을 설립했다.

흐루스카의 주도로 설계된 차는 1971년 11월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차 이름은 회사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알파수드였다. 1972년 4월부터 양산되기 시작한 알파수드는 그동안 알파 로메오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당시 소형차에 흔치 않던 기술을 담은 혁신성이 돋보였다.

알파수드는 알파 로메오 차 중 처음으로 앞바퀴 굴림 구동계를 쓴 양산차였고, 네 바퀴 모두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쓴 것은 물론 수동변속기에는 모든 기어마다 싱크로나이저(동기장치)가 쓰였다. 앞 브레이크는 디스크를 엔진에 가까이 배치한 인보드 방식이었다. 세로배치 수랭식 4기통 복서 엔진을 얹은 것도 특이했다. 서스펜션은 앞쪽에는 맥퍼슨 스트럿, 뒤쪽에는 리지드 액슬에 세로 방향 와트 링크와 가로 방향 파나르 로드를 결합한 구조였다. 아울러 엔진룸과 탑승공간 사이에는 이중 구조 격벽이 자리를 잡았다.

스포티한 주행특성으로 호평 얻어

알파수드는 처음에는 1.2리터 63마력 엔진에 4단 수동변속기를 결합한 구동계와 트렁크 리드가 작은 4도어 패스트백 세단 한 가지 차체만 나왔다. 출시 당시 브로슈어와 보도자료에는 2도어 버전도 있었지만 당장 생산되지는 않았고, 1973년 10월에 고성능 모델 Ti를 통해 2도어 모델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서스펜션을 스포티하게 튜닝한 Ti는 외관에서도 일반 알파수드와 차이가 있었다. 사각형 헤드램프는 두 개의 원형 헤드램프 한 쌍으로 바뀌었고, 방향지시등은 앞 범퍼로 옮겨졌다. 앞 범퍼 아래와 트렁크 리드에는 스포일러가 더해졌다. 엔진은 캠샤프트를 바꾸고 트윈 카뷰레터와 높은 압축비로 출력이 68마력으로 높아졌고 수동변속기는 5단을 썼다. 

여러 신선한 설계가 조화를 이룬 알파수드는 스포티한 주행특성을 지녀 호평을 얻었다. 무게중심이 낮고 길이가 짧은 복서 엔진, 바퀴의 스프링 아래 무게를 줄이는 인보드 방식 앞 브레이크, 이중 격벽으로 높아진 차체 앞쪽 강성 덕분에 핸들링은 민첩하고 접지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장신이었던 흐루스카는 설계자들에게 실내 공간을 가능한 넉넉하게 만들라고 요구했다. 키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도 부담없이 탈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덕분에 크기에 비해 매우 넓은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실용성과 운전 재미를 모두 갖춘 탁월한 소형차로 인정받은 알파수드는 판매도 성공적이었다.

인기에 힘입어 가지치기 모델도 이어져 나왔다. 1974년에는 고급형 알파수드 L이 추가되었고, 이듬해에는 3도어 스테이션 왜건인 자르디네타(Giardinetta)가 더해졌다. 그리고 1976년 9월에는 3도어 쿠페인 스프린트(Sprint)가 더해졌다. 스프린트는 일반 알파수드의 플랫폼을 공유했지만 주지아로가 새로 디자인한 차체는 각을 살려 좀 더 현대적이고 스포티한 모습이었다. 다른 알파수드는 1977년과 1980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1984년까지 생산되었지만 스프린트는 1989년까지 생산되었다. 알파수드는 스프린트를 포함해 100만 대 이상 판매되어 역대 알파로메오 중 가장 인기 있는 모델 중 하나로 꼽힌다.

역대 가장 뛰어난 앞바퀴 굴림 소형차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주행감각을 지닌 차였지만 악명도 높았다. 남부지방 근로자들의 기계조립 경험부족으로 품질이 좋지 않았고, 지나치게 잦은 파업으로 생산성도 낮았다. 조작방법에 일관성이 없고 고장이 잦은 각종 장치들도 불편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차체 부식이었다. 차체 제작에 필요한 강판 보급 문제로 러시아에서 수입한 강판이 부식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너무 빨리 차체가 부식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알파수드는 많이 팔린만큼 열악한 품질이 널리 알려지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브랜드의 평판을 악화시켜 알파 로메오가 피아트에 매각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