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5년 4월 20일자에 ‘일 자동차 산업의 아버지, 닛산에 현대식 공장을 선물하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지금은 일본 자동차 산업이 세계 시장을 흔들고 있지만, 요즘처럼 존재감이 커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자동차가 일본에 소개된 것은 19세기 말이었지만 자동차 생산은 오랫동안 수제작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겨우 산업화가 시작된 1930년대 초반은 일본 자동차 산업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환점을 마련한 사람은 일본인이 아닌 윌리엄 R. 골햄(William R. Gorham)이라는 미국인이었다.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했던 그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며 각종 엔진 개발 기술을 익혔다. 그가 일본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8년이었다. 일본에서 열린 항공쇼에 직접 개발한 엔진과 비행기를 소개하려는 목적이었다. 당시 그가 항공쇼 개최자를 위해 만든 소형 3륜차가 화제가 되었고, 그는 이내 일본에 눌러앉아 자신의 회사를 차리고 자동차를 개발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자동차 수요가 늘면서 자동차를 만들려는 회사가 늘어났다. 그러나 제대로 차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때마침 설립된 지츠요(실용)자동차제조는 골햄의 3륜차에 주목했고, 그로부터 3륜차의 특허권을 사들인 것은 물론 그를 기사장으로 영입하기까지 했다. 지츠요자동차에서 그는 소형 엔진과 4륜 자동차를 새롭게 개발하는 등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에서 쌓은 경험 덕분에 설계뿐 아니라 생산과 품질 관리 능력도 발휘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는 그만한 경험을 지닌 사람이 없었다.

골햄의 능력을 눈여겨 보던 인물 중 하나가 닛산 재벌의 총수인 아이카와 요시스케였다. 엔진 및 기계 부문으로 사업분야를 넓히고 있던 아이카와는 그에게 엔진 기술과 생산 관리에 관한 도움을 요청했다. 골햄의 철저한 관리로 제품의 질이 좋아지는 한편 수익성이 높아지자 아이카와는 골햄의 자신의 회사로 스카웃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자동차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닛산자동차를 설립하면서 그를 상품기획, 생산 등 기술부문 책임자로 앉혔다. 

새로운 자리를 얻은 골햄은 미국에서 대량생산에 필요한 설비를 들여오는 것은 물론, 유능한 미국 기술자들을 불러모아 선진 기술과 생산기법을 닛산의 자동차 개발에 접목했다. 또한, 요코하마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는 것도 직접 지휘했다. 1934년에 세워진 요코하마 공장은 일본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 공장이었고, 이후로 오랫동안 닛산의 핵심 생산시설로 자리를 잡았다. 1941년에 일본으로 귀화한 그는 1949년에 5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본 자동차 산업과 공업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