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daNo1 | CC BY-SA 3.0

[ 모터 트렌드 한국판 2015년 1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지난 9월 유럽 방문 때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를 찾았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 환경이 좋지 않아 빨리 달릴 수는 없었지만, 전설적인 서킷이 전설이 된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지난 9월 13일. 출장이라기에도 뭣하고 여행이라기에도 뭣한 유럽 방문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기자 신분으로 매체를 대표해 해외 출장을 나간 일은 많았지만, 개인 자격으로 외국에 나가는 것은 신혼여행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목적과 목표는 뚜렷했다. 목적은 머리와 가슴에 쌓인 자동차 관련 경험과 지식의 빈틈을 채우는 것, 목표는 유럽 각지에 있는 박물관과 자동차 명소였다. 기본 일정은 총 10박 11일로, 박물관 다섯 곳은 반드시 돌아보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작은 규모의 박물관 두 곳을 더 둘러볼 계획이었다. 

뉘르부르크링 방문은 처음 계획을 세울 때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봐야겠다고 늘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 일정에 포함시키기는 망설여졌다. 방문하려는 곳의 동선에서 멀리 벗어나기 때문이다. 가려는 박물관과 장소들은 이번 일정의 시작인 프랑크푸르트의 남쪽으로 이어져 있는데, 유독 뉘르부르크링만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동거리와 시간을 생각하면 들르지 않는 쪽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함께 가기로 한 황 기자는 꼭 가고 싶은 눈치였다. 대놓고 ‘꼭 가야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이번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뉘르부르크링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하는 데에서 애절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여유있게 잡았던 일정 중 하루를 조금 바쁘게 움직이기로 하고 계획을 바꿔 뉘르부르크링을 들르기로 했다. 변변치 못한 선배의 후배에 대한 소심한 배려라면 배려랄까.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는 모터 트렌드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고, 자동차 마니아라면 대부분 잘 알고 있는 유서 깊고 악명 높은 서킷이다. 한 바퀴 길이가 20km가 넘고 고저차가 심한데다가 1920년대에 세워진만큼 노폭이나 선형이 현대적인 기준으로는 무척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워낙 유명한 서킷인데다 인터넷의 영상이나 게임으로만 접해도 험난한 코스여서,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자 기대와 긴장이 뒤섞였다.

일단 방문지로 정한 뒤에 살펴보니 평일에는 오후 시간대에, 모터스포츠 경기가 없는 주말에는 오전과 오후에 일반 차로 달릴 수 있는 체험 주행(Touristenfahrten)이 가능했다. 서킷 부근에는 여러 업체가 서킷 주행이 가능한 렌터카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예약을 하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현지에서 일정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라 예약 없이 일단 가 보기로 했다. 

관련 정보를 대충 확인은 해 뒀지만 꼼꼼하게는 준비하지 못한 탓에,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프레스데이에 현장에서 만난 다른 기자들을 통해 출국 전에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선 평일에 방문하면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렌터카 업체에서 어렵지않게 차를 빌릴 수 있다고 했다. 주말에는 사람이 몰려 예약이 필수지만, 평일에는 방문자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정보는 일반 렌터카로는 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렌터카 업체가 CCTV를 통해 확인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일반 도로의 성격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서킷이기 때문에, 일반 렌터카로 달리면 계약조건을 어기는 셈이다. 노르트슐라이페 주변에 렌터카 업체들이 즐비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프레스데이 다음날인 9월 17일. 두 남자는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받은 폭스바겐 폴로 렌터카를 타고 노르드슐라이페로 향했다. 어느 업체에서 서킷 주행용 렌터카를 빌릴지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여서, 무작정 떠난 길이나 다름없었다. 숙소가 있던 뤼셀스하임에서 출발해,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은 뒤 뉘르부르크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정도였다. 의외로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워낙 산 높고 외진 동네에 있어 일반 개인 관광객이 렌터카 없이 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뉘르부르크에 도착해서는 렌터카 업체부터 찾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에서 일단 어떤 차를 빌릴 수 있는지 확인했다. 무슨 차를 타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곳으로 이끈 주역인 황 기자는 업체 주차장에 나란히 서있는 차들이 마땅치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곳은 스즈키 스위프트와 BMW 1 시리즈가 대부분이었다. 예산도 고려해야 하지만, 모처럼의 기회에 좀 더 색다른 차를 몰아보고 특별한 기억을 남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친절하게 맞아주는 업체 관계자에게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고 전하고는 잠깐 고민하다가 자리를 떴다.  

괜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 시간낭비일 것 같아서, 현지 렌터카 및 서비스 업체 중 유명하고 규모가 큰 곳으로 알려진 RSR 뉘르부르크(RSR Nuerburg)를 찾았다. 큰 곳이면 렌터카 선택의 폭도 넓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RSR은 뉘르부르크링을 비롯해 벨기에 스파 프랑코샹과 스페인 포르티마오 서킷에서도 비슷한 레이스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현장에 가서 업체 관계자와 상담을 해보니 고를 수 있는 차는 많지만 주어진 예산에서는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그리고 몇몇 차는 이미 예약이 되었거나 선택목록에는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마니아들이 많이 달리는 곳이지만 의외로 수동변속기 차는 흔치 않다. 그러나 초심자에게는 듀얼클러치나 자동변속기가 쓰인 앞바퀴 굴림 차가 안전하다고 웹사이트에도 나와 있다. 

내가 선택한 차는 르노 클리오 RS200이었다. 1.6리터 터보 200마력 엔진에 6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조합한 앞바퀴 굴림 모델이다. 평소 모는 차가 수동이고 워낙 수동변속기 차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처음 달려보는 코스에 비까지 내리는 조건인 것을 감안해 안전한 선택을 했다.

RSR 뉘르부르크의 렌터카 라인업 중 가장 아래 모델인 르노스포트 트윙고 RS는 모두 수동이고, 클리오도 수동이 있기는 하지만 고를 수는 없는 상태였다. 클리오 RS200과 메간 RS265 사이에 폭스바겐 시로코가 끼어있기는 한데, 엔진은 국내 판매 모델과는 다른 2.0리터 터보 210마력 휘발유지만 DSG 모델이다. 함께 간 황 기자는 나보다 더 심각한 수동 마니아여서, 비용부담을 부릅쓰고 메간 RS265를 골랐다. 두 차 모두 르노삼성과 줄이 닿아있는 르노 차이기는 해도 국내에서는 몰아보기 어려운 차들이다.  

렌터카 프로그램은 RSR 뉘르부르크뿐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거의 비슷한데, 차만 빌릴 수도 있고 차와 연료, 서킷 이용권으로 구성된 패키지를 구매할 수도 있다. 차만 빌리면 주유는 부근 주유소에서, 서킷 이용권은 입구에서 따로 사야한다. 대신 차만 빌릴 때에는 최소 주행 랩 수가 4랩인 반면, 패키지는 초심자용 차를 고르면 1~2랩 주행도 가능하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번거롭기도 해서 패키지를 선택했지만 경험이 있다면 차만 빌려도 괜찮을 듯하다.

서킷 이용권은 1랩이 27유로, 4랩이 100유로다. 예산만 충분하면 포르쉐 911 GT3이나 맥라렌 MP4-12C 같은 차도 빌려 타볼 수 있지만, 그런 차들은 예약이 필수라고 한다. 기본 대여료가 6랩 주행에 2,295유로부터이니 300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하면 전설적인 서킷에서 현존 최고 수준의 스포츠카를 몰고 한 시간 남짓 달릴 수 있는 셈이다.

렌터카 계약서를 작성한 뒤에는 업체 관계자의 브리핑을 들어야 한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분히 TV에 나오는 안내 동영상과 설명을 듣는다. 서킷 주행의 기본 원칙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노르트슐라이페라서 꼭 주의할 사항들은 들어두는 게 좋다. 노르트슐라이페는 서킷이면서 유료 일반도로의 성격도 지니기 때문이다.

관계자가 신신당부하는 것은 조심하라는 것. 모터사이클에서 미니버스까지 온갖 종류의 차들이 뒤섞여 달리는데다가 운전 실력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설명 도중 그의 입에서 나온 ‘난장판(mayhem)’이라는 단어가 유독 귓전을 맴돌았다.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노르트슐라이페에서 특히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처리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면 렌터카 업체에도 연락을 해야 하지만 관리주체인 뉘르부르크링 운영사무실에도 연락해야 한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파손되면 견인차를 불러야 하는데, 어느 쪽이든 비용 처리가 되기 전에는 뉘르부르크링을 떠날 수 없다. 설명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at your own risk(네 일은 네 책임)’다.

렌터카 업체에서 잔뜩 겁을 주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욕심은 버리고 달리기로 했다. 비디오 게임으로 수없이 달려봤지만 실제 주행은 처음이고, 어차피 랩 타임 재러 온 것도 아닌 데다가, 빌린 차도 처음 타보는 모델이고, 타이어를 살펴보니 마모한계가 내일 모레인 상태고, 설상가상으로 폭우는 아니어도 노면이 촉촉이 젖을 정도로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안전벨트를 매고, 클리오 RS200의 시동을 걸고 2분 정도 거리에 있는 출입구를 통해 생전 처음으로 노르트슐라이페에 들어섰다. 머리 속에는 ‘아, 드디어 전설의 서킷을 달려보는구나’라는 생각이 흘러갔다. 

비가 내려서인지 서킷을 달리는 차는 많지 않다. 그래도 초행길에 조심스럽게 달리는 내 차를 많은 차들이 추월해 지나간다. 빗길이 무색하게 쏜살같이 달리는 BMW 링택시가 있는가 하면, 트리키한 코너에서 비틀거리면서도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고 달려나가는 고수들도 있다.

그런데 추월하는 차들 가운데에는 스즈키 스위프트와 르노스포트 트윙고 RS가 많다. 정말 즐기러 온 사람들이 모는지, 작은 차들이 빠릿빠릿하고 기합 넘치게 잘 달린다. 추월하라고 내버려두고 느긋한 페이스로 달린다. 심하게 젖은 곳을 지날 때에는 빙판길인 것처럼 액셀러레이터를 살짝만 밟아도 TCS가 요란하게 작동하니 운전은 더 조심스러워진다. 앞서 달리다가 스핀하는 차, 사고가 나서 처리를 기다리는 차의 모습을 보니 빨리 달릴 엄두도 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차가 다 추월해 가는 것은 아니다. 느리게 가는 내가 추월해야 할 정도로 기어가는 차들도 간간이 있다. 뒤에 쫓아오는 차들을 일일이 신경쓰고 피해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다가오는 속도나 모양새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노면이 젖은 탓도 있지만, 주로 슬슬 기어가는 차들은 출력이 높은 렌터카들이다. 의욕은 넘치고 지갑은 두둑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포르쉐 911과 카이맨 S를 추월해도 전혀 우쭐해지지 않는다. 운전 실력이 뛰어나다면 그렇게 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달리는 품새가 그렇다. 사이드 미러나 룸 미러를 쳐다볼 겨를이 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꽁무니에 바짝 붙어 쫓아가고 있는데도 안전한 주행 라인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서킷 드라이빙의 재미는 함께 달리는 차들의 페이스가 좌우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노르트슐라이페를 달리며 크게 놀란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디오 게임의 코스 재현이 대단히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고속 주행하면 주변 풍경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마련인데, 전반적인 주행 속도가 느린 탓인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기억 속 게임 화면과 쉽게 비교가 된다. 그리고 여러 커브에서의 스티어링 조작도 게임할 때의 느낌과 무척 비슷하다. 게임에서 자주 실수하는 코너는 실제 주행 때에도 똑같이 실수하게 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다른 하나는 어쨌든 현실은 게임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아스카리 서킷에서도 느꼈듯,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는 중력가속도는 운전의 긴장감을 100배는 높여주었다. 웬만한 서킷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가파른 언덕과 내리막, 험한 산속 계곡처럼 굽이치는 코너, 종종 마주치게 되는 비정상적인 구배마다 차의 움직임을 읽으며 대응하려니 차와 사람 모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체력 소모가 심하다. 한 바퀴 도는 데 15분 남짓 걸릴 정도로 천천히 달렸는데도 네 바퀴를 모두 돌고 나니 엄청난 운동을 한 기분이다.

한 시간 남짓한 경험을 위해 150km 넘는 거리를 달려 갔지만 전혀 낭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 번 달려보니 왜 노르트슐라이페가 전설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세월동안 그곳에서 우승을 위해, 또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 마르고 닳도록 달린 사람들이 정말로 위대하게 느껴졌다.

날씨라는 조건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있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달리기 위해 노르트슐라이페를 다시 찾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꼭 한 번 달려보기를 권한다. 자동차와 연관된 여러 분야에서 나오게 되는 ‘왜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인가’라는 질문에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