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보 2015년 12월 27일자에 ‘자동차세 산정 기준 ‘배기량서 가격으로’ 올해도 물 건너가나’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년 내는 자동차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세는 지방세법에 따라 엔진 배기량을 기준으로 정해지는데, 배기량이 큰 차를 가진 사람은 차가 아무리 낡아도 세액이 크기 때문에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자동차세 산정기준은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달라졌는데, 배기량을 기준으로 삼은지는 50년이 넘는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처럼 매년 자동차 보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산정기준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지금은 선진국 중심으로 엔진 배기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삼는 곳이 많다.
20세기 초반 영국과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대륙 국가에서는 한동안 엔진 출력이 자동차세를 매기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세금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엔진의 성능을 동력계로 측정해 얻은 실제 출력이 아니라 산술적으로 계산해 얻은 이론적 출력이었다. 계산 방법도 특이했다. 엔진이 작동할 때 움직이는 피스톤의 크기와 운동거리 같은 요소를 간단히 곱하고 나누는 것만으로 출력을 계산했다. 당연히 실제 엔진 출력과는 차이가 있었고, 그래서 계산을 통해 얻은 과세용 수치를 과세마력(tax horsepower)이라고 해 실제 출력과 구분했다.
세금을 적게 내고픈 욕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한결같고, 자동차 회사들은 소비자들의 그런 심리를 잘 이용했다. 회사가 과세마력을 차 이름으로 써서 세금 적게 내는 차라는 것을 알렸다. 요즘으로 치면 ‘현대 10마력’, ‘쉐보레 15마력’ 같은 이름이 흔했다.
엔진 기술이 발전하고 자동차가 대중화되며 1920년대 이후에는 조금씩 사라졌지만, 프랑스에서는 1950년대까지도 과세마력이 모델명으로 쓰이곤 했다. 심지어 시트로엥이 만든 장수 대중차인 2CV는 1990년까지 생산되었다. 2CV는 프랑스어로 2마력이라는 뜻이다. 초기 롤스로이스의 명차로 실버 고스트라는 별명을 얻은 40/50 hp처럼 이름에 과세마력과 실제 출력을 함께 쓴 경우도 있었다. 출력을 과세기준으로 삼은 제도는 엔진 설계에도 영향을 미쳐, 자동차 회사가 속한 나라에 따라 독특한 엔진 특성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 가을에 우리나라 자동차세 산정기준을 배기량 대신 차 값으로 바꾸는 지방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허점은 있지만 지금까지의 기준이 지닌 문제점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그런데 이번주면 19대 국회의 임기가 끝난다. 앞서 이야기한 지방세법 개정안은 정기 및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자동 폐기될 듯하다. 50년 만의 자동차세 기준 변화도 가는 해와 함께 나중을 기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