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투 브라이턴 베테랑 카 런 행사에서 달리고 있는 클래식카들

[한국일보 2016년 1월 11일자에 ‘신구 이동수단의 공존이 자율주행차 시대 개막의 열쇠’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지난주 미국에서는 최신 전자제품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행사인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가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행사에서도 최근 자동차 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자율주행 차 관련 기술이 크게 부각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기아자동차가 아우디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 네바다 주에서 고속도로 자율주행 면허를 딴 쏘울 전기차를 공개했다. 네바다 주는 자율주행 면허제도를 처음 법제화한 곳이어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자율주행 차 기술은 실제 판매되는 차에 곧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다만 안전과 관련해 해결할 과제가 남아 있어, 당장 시판되기는 어렵다. 복잡한 도로상황이 빚어낼 여러 변수를 처리할 수 있도록 차가 더 지능화되고, 법과 제도가 자율주행 차의 특성을 감안해 정비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반 차와 함께 도로 위를 달리면서 생길 수 있는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자율주행 면허는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 중 하나다.

새로운 이동수단의 등장에 따른 혼란은 자동차 태동기에도 있었다. 19세기 서양의 도로는 사람과 마차 등 느린 이동수단 일색이었고, 속도가 빠른 자동차는 기존 이동수단과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했다. 일찌기 증기 자동차 시대부터 속도 차이로 인한 사고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이른바 ‘적기 조례’로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했다. 적기 조례는 자동차가 달릴 때 빨간 깃발을 든 사람이 앞에서 걸어가며 위험을 알리도록 정해 지어진 이름이다. 즉 자동차를 사람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최고속도는 시내에서 시속 3.2km, 교외에서 시속 6.4km로 못박았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하며 차의 성능이 높아지자 반발의 목소리가 커졌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기술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고, 자동차 소유자에게는 이동의 자유를 막는 악법으로 여겨졌다. 결국 1896년에 조례가 개정되면서 제한속도는 크게 높아지고 빨간 깃발을 든 사람을 앞세우는 의무도 사라졌다. 영국 자동차 소유자들은 이를 기념해 런던에서 출발해 영국 남해안에 있는 브라이턴까지 달리는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는 ‘런던 투 브라이턴 베테랑 카 런’이라는 지금까지 거의 매년 열리고 있으며, 상징적인 의미로 1905년 이전에 만들어진 차만 참가할 수 있다. 

머지않아 기술과 제도가 정비되어 본격적인 자율주행 차 시대가 열리면, 자동차가 기존 이동수단과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런던 투 브라이턴 베테랑 카 런같은 상징적 행사가 열리지 않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