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차의 단계와 현주소

[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웹진 2016년 11월호에 쓴 글의 원본입니다. ]

자율주행 차는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로 꼽힌다. 자동차 산업은 물론 자동차를 둘러싼 생태계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올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관련 기술은 빠르게 발전해 왔고, 자동차 관련 업체들은 자신들이 선도자라고 주장하며 미래 시장을 선점하려 애쓰고 있다. 기존 완성차 업체는 물론 전기차를 통해 새로 업계에 뛰어드는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쏟아져 나오고 있는 미래 자동차와 관련한 정보에는 자율주행을 포함해 다양한 기술이나 시각이 섞여 있는 것이 많다. 그렇다 보니 일반 소비자는 물론 기술 개발에 관여하지 않는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도 다소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혼란을 줄일 수 있도록, 업계나 학계에서는 기능이나 표현에 관한 기준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을 중심으로 지난 2014년부터 자율주행과 관련한 개념과 기술적 발전 단계에 관한 기준이 정리되어 발표되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청(NHTSA)은 2014년에 주행 자동화를 기준으로 레벨 0에 레벨 4에 이르는 5단계로 구분해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자동차기술학회(SAE)는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기능적 관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구분해, J3016 표준에서 주행 자동화를 비자동화에서 완전 자동화까지 레벨 0에서 레벨 5까지 6단계로 정리했다. 서로 다른 주체가 세운 기준이지만, 완전한 자율주행에 관한 관점은 같다.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까지 이동하는 동안 운전자가 차의 주행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자동차 업계에서는 자율주행의 개념과 기술을 포괄해 정리한 SAE 구분 방식을 주로 썼다. 그러나 미국 교통부(DoT)는 2016년 10월 3일, SAE J3016 표준을 연방 자율주행 차 정책(Federal Automated Vehicles Policy)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6단계인 SAE 구분 방식이 국제적인 자율주행 단계 구분 기준으로 쓰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SAE 구분 방식에서 주행 자동화 단계를 운전자와 시스템의 역할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레벨 0(비자동화): 운전자는 차의 속도와 방향을 계속 통제한다. 시스템은 주행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 레벨 1(운전자 보조): 운전자는 차의 속도 또는 방향을 계속 통제한다. 시스템은 주행에 관한 다른 기능에 개입한다.
  • 레벨 2(부분 자동화): 운전자는 적극적 주행에 반드시 개입하고 주변 상황을 항상 주시한다. 시스템은 정해진 조건에서 차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다.
  • 레벨 3(조건부 자동화): 운전자는 적극적 주행에 개입하거나 주변 상황을 항상 주시하지 않아도 되지만, 항상 직접 주행을 통제할 준비를 해야 한다. 시스템은 정해진 조건에 차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고, 기능 구현이 한계에 미치기 전에 운전자가 대응할 시간적 여유를 두고 운전자에게 적극적 운전을 이어나가도록 알린다.
  • 레벨 4(고도 자동화): 운전자는 정해진 조건에서 운전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정해진 조건에 모든 상황에서 차의 속도와 방향 및 적극적 주행을 한다.
  • 레벨 5(완전 자동화): 운전자는 모든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주행 중 모든 경우에 차의 속도와 방향을 통제하고 적극적 주행을 한다. 

이 가운데 레벨 0에서 레벨 2는 운전자(human driver)가, 레벨 3에서 레벨 5는 자율주행 시스템(automated driving system)이 운전 주도권을 쥔다. 

현재 레벨 1에 해당하는 자동화 기능은 비교적 폭넓게 보급되고 있다. 적응형 정속주행 장치, 자동 조향 기능이 있는 주차 보조 기능, 차로 유지 보조 기능 등 직간접적으로 안전 운전을 돕는 여러 기술이 레벨 1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는 일시적으로 스티어링 휠이나 액셀러레이터 조작을 하지 않아도 주행할 수 있지만, 운전자는 항상 주변 교통상황을 주시하고 상황변화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테슬라를 비롯해 일부 업체들이 현재 내놓고 있는 차들은 레벨 2에 해당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주행 차로 자동 유지 기능, 충돌 방지 제동 보조 기능이 포함된 적응형 정속주행 장치 등을 갖추고 제한된 조건에서 차량 흐름에 따라 자율주행이 가능한 것이 이 수준에 해당한다. 첫 레벨 2 자율주행 기술로 알려진 테슬라의 오토파일럿(Autopilot)은 자동 조향, 자동 차로 변경, 교통량 대응 정속 주행장치, 측면 충돌 경고, 자동주차 등 여러 기능이 통합된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자동 차로변경 기능이 포함된 드라이브 파일럿(DRIVE PILOT)을 올해 출시된 신형 E-클래스에 넣었다. 지난해 선보인 BMW 7 시리즈는 카메라로 차로를 인식하고 주행 경로를 유지하도록 스티어링을 조절하는 기능뿐 아니라 차 외부에서 리모컨 키로 주차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다만 운전자는 레벨 1과 마찬가지로 주변을 항상 살펴야 하고 필요할 때에는 언제든지 운전에 개입할 준비를 해야 한다.

대부분 주행 상황에서 운전자가 주행에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레벨 3부터다. 이 단계에서는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같은 환경은 물론, 도심에서도 제한적으로 자율주행 시스템이 운전자를 대신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레벨 4로 이행하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레벨 5는 운전자가 전혀 운전에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인공지능 로봇 운송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구글이 개발하고 있는 ‘운전자 없는 차’는 레벨 4 또는 5 수준이고, 많은 자동차 회사가 몇 년 내에 레벨 4 수준의 차를 내놓는 것을 목표로 삼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닛산은 2020년, BMW와 포드는 2021년에 레벨 4 기술이 쓰인 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그보다 앞서 볼보는 이미 스웨덴, 영국, 중국에서 300여 대의 자율주행 차를 시험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는 중국에서 레벨 4 기술이 쓰인 차의 시험을 시작한다. 테슬라도 레이더와 입체 카메라 기술로 기능을 보강한 오토파일럿 2.0을 2018~2019년에 선보이기 위해 개발을 시작했다.

자동차 업체 중심으로 자율주행 기술에 힘을 쏟고 있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특히 각국 정부는 소비자의 자율주행 기술을 맹신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테슬라는 오토파일럿이 자율주행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오토파일럿 모드로 주행 중에 치명적인 사고가 생긴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 이어 네덜란드에서도 테슬라 광고에서 ‘오토파일럿’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도록 했다. 운전자가 도로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밀리에 독자적으로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던 애플은 최근 핵심 개발인력을 정리하고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도 초기 핵심 개발인력이 떠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사업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 테슬라 역시 핵심기술 협력업체인 모바일아이가 결별을 선언하면서 전망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기술 개발과 더불어 자율주행 시스템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에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도요다 아키오 토요타 사장은 올해 파리 모터쇼에서 자율주행 차를 충분히 검증하려면 142억 킬로미터 정도 주행 시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완전 자율주행에 가까운 차는 기술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운전자가 적극적으로 차를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돌발상황에서는 탑승자나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고, 따라서 주행 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내구성과 신뢰성, 보안 등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자체는 물론 주변 차나 교통환경 정보도 종합해 주행에 반영하는 V2V(vehicle-to-vehicle), V2I(vehicle-to-infrastructure) 통신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다른 자동차나 시설로부터 개별 자동차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정보를 얻어 보완하는 것이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회계 감사 및 자문업체 KPMG는 이와 같은 기술이 양산차에 쓰이기 시작하는 시기를 레벨 4는 2025년 전후, 레벨 5는 2030년 전후로 전망하고 있다. 자율주행 차 관련 법규와 제도 정비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완전 자율주행 차가 널리 보급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충분한 실제 도로환경 정보를 확보해 시스템에 반영하고, 경쟁력 있는 값으로 시스템을 만들 능력을 갖춘 업체들이 미래 시장에서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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