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점수는요

[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7년 6월호 ‘제 점수는요’ 피처 기사에 포함된 제 글의 원본입니다. 여러 새차와 콘셉트카의 디자인을 놓고 세 명의 자동차 저널리스트가 각자 의견을 이야기했고, 제가 그 중 한 명으로 참여했습니다. ]

제네시스 GV80 콘셉트 (별점 3.0/5)

제네시스는 할 일이 많은 브랜드다. 곧 나올 G70을 포함해 세 차종에 불과한 라인업도 늘려야 하고, 아직 뚜렷하지 않은 정체성도 분명히 보여줘야 하고, 소비자에게 시장에서의 입지도 더 분명히 알려야 한다. 아직 제네시스가 그릴 큰 그림의 윤곽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나올 첫 SUV에 대한 제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GV80 콘셉트를 보니 기대와 걱정이 반반씩 섞이게 된다. 

우선 제네시스 브랜드로 앞서 나온 세단이나 다른 콘셉트카와 공통점이 보인다. 세부 요소들은 어디에서 본 듯 익숙한데, 그런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느낌은 비교적 개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요소들을 살짝 더해 둔한 느낌을 덜어낸 외부는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느낌이다. 오각형에 가까운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양산차에서는 단순화될 =자형 램프 같은 요소들은 전에 없던 것이지만 전체 분위기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실내도 수평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대시보드를 비롯해 간결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대형 고급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접근 방식이어서 신선하지는 않다. 

이전 콘셉트카들과 비교하면 디자인을 꾸준히 섬세하게 다듬어 감각적 밀도를 높이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이미 정해진 답을 가지고 뭔가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잘 포장한 느낌은 여전하다. 잘생겼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은 아직 갖추지 못한, 데뷔 직후의 배우 장동건을 보는 느낌이랄까.

렉서스 LC 500 (별점 4.0/5)

L-피네스라고 부르는 렉서스의 디자인 철학은 여러 모델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발전하며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다. 차에 구현된 모습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데,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점은 개성만큼은 확실히 뚜렷하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세단이나 SUV에서는 날카로움과 섬세함이 극단적으로 강조된 디자인 요소들이 정형화된 차체 형태와 잘 어우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LC 500을 보면 확실히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차체 형태가 가장 날렵하고 속도감이 뚜렷할수록 좋은 2도어 쿠페에 스며든 극단적 날카로움과 아슬아슬한 선들은 의외의 멋진 조화를 보여준다. 균형과 조화보다는 파격이 돋보였던 LFA와 비교해도, 전체적 흐름은 이어받았으면서도 훨씬 세련된 분위기다. 롱 노즈 숏 데크의 전형적인 2도어 쿠페 구성이 신선할 것은 없어도, 절제된 섬세함이 차체 형태에서 세부 디자인 요소까지 일관성 있게 표현된 것이 인상적이다. 스포츠카의 힘과 대담함을 느낄 수 있는 실내는 운전자 중심의 공간임을 강조하도록 운전석 쪽 대시보드에 분위기의 무게를 실은 기능성도 담고 있다. 

그러나 겉모습과 실내가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이 아쉽고, 실내가 상대적으로 구식 느낌이라는 점은 대부분 렉서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에 비해 역사가 짧으면서도 실내 공간을 보고 다루는 관점은 보수적이다. 이것도 렉서스의 개성이라면 개성이지만, 그 역시 호불호가 갈릴 표현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개성만 돋보이면 된다는 것이 L-피네스 철학의 솔직한 목표가 아닐까.

링컨 컨티넨탈 (별점 3.0/5)

한동안 링컨은 개성 있는 디자인이 매력이었다. 구석구석 투박함이 느껴지기는 해도 미국차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미국 관점의 미래지향적 감각이 돋보였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매력은 아니었다. 링컨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새 컨티넨탈에서 링컨이 디자인 방향을 크게 바꿨으리라. 

새 컨티넨탈은 좋게 말하면 모두에게 먹혀들 수 있는 고급차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표현했고, 나쁘게 말하면 개성 대신 보편성을 취하는 식으로 안전한 선택을 했다. 부가티와 재규어의 것을 섞어 놓은 모습의 라디에이터 그릴, 특징 없는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등 무난한 요소들만 가득하다. 겉모습은 과장되지 않을 정도로만 넣은 캐릭터 라인이 아니라면 무척 심심해보였을 것이다. 수많은 최신 기술과 장비로 가득 채운 실내도,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앞서 선보인 다른 링컨 차들에 비하면 훨씬 더 보수적이다. 어디를 보나 고급차라는 느낌은 들지만 이전만큼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물론 마냥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차를 더 많이 팔아야 하는 건 모든 자동차 회사의 과제이고, 링컨으로서는 좀 더 보편성을 띠는 디자인이 과제를 푸는 해법이었을 것이다. 기술이나 성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더 많은 소비자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링컨의 한계를 디자인 방향 전환이 입증한 셈이다.

인피니티 QX50 콘셉트 (별점 4.0/5)

2009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인 에센스 이후, 인피니티의 콘셉트카 디자인은 대부분 흥미롭고 존재감이 뚜렷했다. 매체와 애호가들의 평도 좋은 편이었다. 문제는 그 멋진 콘셉트카 디자인이 온전히 반영된 양산차가 많지 않다는 것. 모델 수가 많지 않은데, 대부분 모델 수명이 길어 콘셉트카의 디자인이 양산차에 스며들 기회가 별로 없었던 영향이 크다.

EX35로 데뷔해 중간에 이름을 바꾼 지금의 QX50도 데뷔 10년을 맞는 지금에서야 새 모습으로 바뀔 준비를 하고 있다. 콘셉트카라고는 하지만 양산차도 거의 그 모습으로 나올 것이 틀림없다. 이제야 인피니티 SUV에 ‘강력한 우아함’이 깃든 디자인이 반영되기 시작할 양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끝이 날카로와지는 인피니티 특유의 곡선은 한층 더 강렬해졌다. 전반적 차체 형태가 이전 세대보다 실용성이 강화된 중형 SUV에 가까워지면서 좀 더 자극적인 디자인 요소로 무난함을 상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실내는 센터 페시아에서 센터 콘솔로 이어지는 부분을 빼면 조금 보수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미래를 상징하는 콘셉트카면서도 지금 판매되고 있는 인피니티 차들 가운데 Q50과 Q60을 빼면 가장 안정되고 차분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이는 차 자체의 성격 변화를 반영한 것이지 브랜드 디자인 철학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인피니티 디자인은 에센스 이후 콘셉트카와 양산차 모두 큰 변화 없이 조금씩 섬세하게 다듬는 정도로 발전해왔다. QX50 콘셉트는 철학의 계승 관점에서 세련된 진보를 보여준다. 깜짝 놀랄만한 혁신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발전에 일관성이 있고, 처음부터 ‘강력한 우아함’으로 방향을 잘 잡은 덕에 매력을 잃지 않았다.

캐딜락 CT6 (별점 3.5/5)

한 세기가 넘는 세월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겪은 캐딜락 디자인에서도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바로 어떤 식으로 표현되든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독보적 존재감이다. 아트 앤 사이언스라는 표현으로 정리되는 21세기 캐딜락 디자인도 그렇다. 이미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차갑고 기계적인 느낌을 조금씩 덜어내면서 독특함보다 존재감이 돋보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램프 부분을 전보다 더 수직 방향으로 강조하면서 라디에이터 그릴을 넓힌 것이 눈길을 끈다. 또한, 큰 틀에서 보면 크게 휘어지는 선과 넓은 면으로 대담하고 대륙적인 분위기를 만들면서 라디에이터 그릴과 앞뒤 램프, 실내에서는 디스플레이 디자인 등에 기교를 부리고 있는 것이 CT6을 비롯한 최신 캐딜락 디자인의 특징이다. 기함급 초대형 세단에서는 존재감이 더 두드러져야 하기 때문에, CT6에서는 그런 부분에 더 신경을 쓴 듯하다. 비슷한 개념이면서도 앞바퀴 굴림인 XTS보다 전체적인 비례와 대담함이 더 돋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길고 넓은 차체를 한껏 강조하는 이와 같은 스타일은 마치 캐딜락 역사에서 압도적 크기와 존재감이 가장 돋보였던 석유파동 직전의 식스티 스페셜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느낌이다.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에 밀려 과거의 영광이 퇴색한 캐딜락으로서는 전성기의 존재감을 되살림으로써 미국 대표 프리미엄 브랜드에 걸맞은 자리를 찾고 싶을 지도 모른다. 뒷바퀴 굴림 방식을 바탕으로 한 CT6의 차체 구조는 그런 의도를 표현하는 대상으로 잘 어울린다.

현대 쏘나타 뉴라이즈 (별점 3.0/5)

LF쏘나타는 2세대 제네시스(G80)와 더불어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 모델이었다. 유연하게 흐르던 선을 좀 더 직선에 가깝게 다듬고, 면에는 긴장감을 더하고, 전체적인 형태도 단단해 보이도록 바꿈으로써 안정감과 존재감을 더 뚜렷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었다. 플루이딕 스컬프처 1.0 시대를 대표하는 YF쏘나타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모습이었다. 페이스리프트한 쏘나타 뉴라이즈의 디자인은 당연히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의 연장선에 놓고 보아야할 대상이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특성상 겉모습에서는 앞뒤 범퍼와 램프를 바꾸는 정도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처럼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이루어진 변화치고는 차의 인상이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앞쪽에서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 측면 램프와 더미 그릴, 뒤쪽에서는 번호판 자리가 범퍼로 옮겨지며 달라진 트렁크와 테일램프다. 큰 틀은 그대로 둔 채 소소한 변화만 준 실내는 여전히 기능 중심의 직선적인 특징이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젊은 인상을 주도록 손질한 변화는 윗급인 그랜저는 물론 스타일의 공통점이 남아있는 G80과의 차별화를 노린 부분이다. 그러나 직선 중심인 차체의 앞쪽에 집중적으로 더해진 화려한 곡선은 왠지 부자연스럽다. 캐스케이딩 그릴이 대표적이다. 현대가 자체 디자인을 시작한 이후 종종 볼 수 있었던 ‘변화를 위한 변화’가 반복되는 느낌이다. 제네시스와의 디자인 차별화를 추구하는 과도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앞으로 나올 새차들에서는 덜하겠지만, 현대만의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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