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이쿼녹스, 어깨가 무겁다

[ 2018년 4월 29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끝에, 4월 23일에 한국지엠 2018년 임단협 잠정합의가 이루어진 데 이어 26일에는 노조 찬반투표 결과 잠정합의안이 가결되었다. 이로써 한국지엠은 일단 제너럴모터스(GM) 본사, 산업은행, 정부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앞으로도 당분간 가시밭길을 걸어야하지만, 한국지엠 영업과 서비스 네트워크는 물론 다양한 분야의 협력업체가 함께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사업악화로 진행하지 못했던 일들이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관점에 따라 평가는 엇갈리지만,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을 제한적으로나마 견제할 수 있는 업체가 무너지지 않고 회생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앞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 흐름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그 전제는 한국지엠이 회생에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전성기만큼 시장몫을 회복하기는 어려운 만큼, 한국지엠이 회생하려면 수출도 수출이지만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시장을 대하는 전략은 과거와는 크게 달라져야 하고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때마침 한국지엠이 예정하고 추진해 온 쉐보레 이쿼녹스 출시 시기가 맞물리면서, 악화된 한국지엠의 분위기를 북돋우는 전환점 역할이 이쿼녹스에게 주어지는 셈이 됐다.

이쿼녹스는 한국지엠이 꽤 오랜 시간 고민과 검토를 거쳐 국내에 내놓는 차다. 그리고 올해 들어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한국지엠 관련 이슈 때문에 하마터면 준비 다 해놓고 팔지 못할 뻔한 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쿼녹스의 가장 큰 의미는 따로 있다. 한국지엠과 그 전신인 지엠대우를 통틀어, 국내 시장 수요가 집중되어 있는 모델을 전량 수입해 판매하는 첫 사례라는 점이다.

지엠대우 시절에는 대형 고급 세단 시장에 호주 홀덴이 만든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를, 스포츠카 시장에 미국에서 생산한 G2X를 내놓았고 한국지엠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대형 세단 임팔라, 스포츠카 쉐보레 콜벳과 카마로를 미국에서 직수입해 한국지엠 네트워크를 통해 팔았다. 그러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차급에 해당하는 모델들이었음에도 대부분 제대로 시장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우리나라 시장환경 그리고 소비자의 눈높이나 수준을 맞추기에는 여러 면에서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이쿼녹스는 요즘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인 중형 SUV에 속한다. 그러나 수요는 큰 데 비해 경쟁 모델은 가짓수도 적고 이미 시장 지배력은 판가름이 나 있는 상황이다. 그런 시장에서 모델 수명이 다한 캡티바를 밀어내면서 이쿼녹스를 들여오는 것이다. 

심지어 핵심 시장이라 할 만큼 규모가 있는 차급 모델을 수입 판매한다는 것은 과거 실패 사례를 비춰볼 때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해당 시장 수요가 있으니 시장몫을 조금만 챙기더라도 국내 판매를 늘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며, 미국에서도 경쟁이 가장 치열한 차급에서 지난해 초부터 판매를 시작해 비교적 잘 팔리고 있는 모델인 만큼 상품성도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입 판매를 결정한 것은 투자 대비 수익성 면에서 위험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과거 사례는 물론이고, 이쿼녹스처럼 수요가 큰 시장에 경쟁력 있다고 판단한 제품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외면을 받은 크루즈의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에서 역할이 중요한 모델에 대해 여러 모로 저울질하며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 한국지엠과 GM 본사의 현실이다. 수요나 소비자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감수할 만큼 국내 생산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는 한 지역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다른 지역 시장에 적은 비용으로 투입할 수 있다는 글로벌 기업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GM 본사가 옛 GM 시절 시장 접근과 대응 방식의 틀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계산기 실컷 두드려보고 수익성 위주로 타협한 결과물을 내놓고, 그 결과물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모델이든 브랜드든 과감하게 날려버리는 것이 1990년대 이후 GM이 반복하고 있는 과정이다. 게다가 지금의 GM은 과거보다 더 수익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좋은 시너지를 낳을 수 있는 특성들은 아니다.

어쨌든 한국지엠 입장에서 이쿼녹스의 입지는 임단협 타결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 당분간 국내 사업을 지속하게 된 만큼, 이전에 생각하고 목표로 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성이지만, 개인적 의견으로는 하드웨어 면에서는 시장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할 만큼 뛰어나다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한국지엠이 할 수 있는 것은 합리적 가격 설정과 소비자에게 설득력 있는 무형의 가치 즉 신뢰를 제공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최선을 다해 잘 해서 살아남고 성장해, 국내 자동차 시장을 살찌우는 역할을 다시 할 수 있는 한국지엠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어야 소비자도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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