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고 회피 기술의 진화

[ KAMA(한국자동차산업협회) 웹저널 2018년 7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머지 않은 미래에 완전 자율주행 기술이 쓰인 차가 등장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고 인정하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 나오는 차들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능동 안전기술은 자율주행을 안전하게 구현하는데 꼭 필요하다. 법규와 제반 환경이 뒷받침해야겠지만, 차츰 완전 자율주행에 가까운 단계에 접어든 차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구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동차 안전 기술의 흐름이 피동적(passive) 개념 중심에서 능동적(active) 개념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생각해 보면, 최근의 기술 발전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피동적 안전 개념은 사고 발생에 따르는 피해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능동적 안전 개념은 자동차가 주행 중 사고 발생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주행에 능동적으로 개입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즉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며 주행에 필요한 조작을 사람 대신 자동차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술은 단순한 전기나 기계 관련 기술만으로는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려워, 오랫동안 발전 속도가 느렸다. 최근 들어 자동차 안전 기술이 전에 없이 빠르게 발전한 것은 정보통신기술의 영향이 크다.

능동적 안전 기술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사고를 회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고 회피 기술은 가속과 감속, 조향 등 차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장치에 개입하는데, 그 시초는 정속주행장치(크루즈 컨트롤)와 브레이크 잠김 방지 장치 즉 ABS를 꼽을 수 있다. 크루즈 컨트롤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고 회피 기술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운전자의 피로를 줄이는 예방 안전 기술로서 의미가 크다. 또한, 다른 기술과 결합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로 발전하면서 사고 회피의 기반 기술로서 역할이 커지고 있다. 적극적 사고 회피 기술로서의 의미는 ABS가 더 크다. 차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개념은 ABS로부터 시작해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TCS), 전자제어 주행안정장치(ESC)로 발전하며 사고 예방에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크루즈 컨트롤부터 살펴보자. 현대적 개념의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은 미국 엔지니어 랠프 티터(Ralph Teetor)에 의해 1950년대에 개발되었다. 그는 1948년에 처음 관련 특허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10여 년에 걸쳐 개선하는 작업을 거쳐 자동차에 달 수 있는 제품으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개발한 초기 시스템은 드라이브샤프트 회전을 바탕으로 속도를 계산하고 솔레노이드로 스로틀 케이블 위치를 조절했다. 그가 개발한 크루즈 컨트롤은 1958년형 크라이슬러 임페리얼, 뉴요커, 윈저에 ‘스피도스탯(Speedostat)’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쓰였고, 이후 크루즈 컨트롤이라는 이름이 일반 명사처럼 자리를 잡았다. 이후 같은 기능을 하는 여러 종류의 크루즈 컨트롤이 등장했고, 1970년대 석유파동 시기를 거치며 빠르게 확산되었다.

크루즈 컨트롤 발전 과정에서 획기적 진전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daptive Cruise Control, ACC)을 통해 이루어졌다. 제너럴 모터스(GM)이 처음으로 관련 특허를 받은 1991년이 기점으로,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일본 브랜드 내수용 시판 승용차에 전방 장애물을 감지해 운전자에게 경고하는 기술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상용화된 기술은 라이더(lidar)나 레이저를 이용해 전방을 감지하고, 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스로틀을 제어하는 형태의 것이었다. 본격적 ACC는 메르세데스-벤츠가 디스트로닉(Distronic)이라는 이름으로 1999년 S-클래스와 CL-클래스를 통해 처음 선보였다. 디스트로닉은 핵심 전방 감지장치로 레이더를 사용하고, 파워트레인과 브레이크를 제어해 적극적으로 속도를 조절하고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현대적 ACC는 능동적 브레이크 제어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파워트레인을 제어하는 것만으로 달리는 차의 속도를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브레이크 제어 기술의 시발점을 ABS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ABS는 항공기의 제동거리를 줄이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었고, 이것이 자동차로 옮겨진 것이다. 

자동차용 ABS가 처음 실용화된 것은 1958년으로, 이 기술이 처음 쓰인 양산차는 1966년 출시된 젠센 FF였다. 이 최초의 시스템은 신뢰성이 낮았고, 높은 가격 때문에 젠센 FF와 더불어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 ABS 사용이 확대된 것은 1978년에 다임러벤츠(지금의 다임러)가 보쉬와 함께 개발한 ABS를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통해 내놓으면서부터다. 이때부터 ABS는 핵심 하드웨어의 디지털화를 통해 신뢰성이 확보되었고, 다임러벤츠는 1984년부터 순차적으로 ABS를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의 기본장비화했다.

ABS의 개념을 한층 더 발전시킨 TCS는 198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했다. 가속 때 바퀴가 헛도는 것을 감지해 엔진 출력을 낮추는 형태의 TCS는 1970년대 초반에 등장했지만, 디지털 시스템이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방식의 TCS는 1987년에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에 ASR(Anti-Slip Regulation)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ABS로 브레이크 조작을 통해 감속할 때, TCS로 액셀러레이터 조작을 통해 가속할 때 차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게 된 데 이어, 스티어링 휠 조작과 차의 쏠리는 정도(가속도)를 감지해 모든 주행 상황에서 차의 움직임을 안정화하는 ESC(Electronic Stability Control)이 등장하면서 자동차의 사고 회피 능력은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1995년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쿠페에 보쉬와 공동 개발한 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가 처음 쓰여 시판된 것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199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ESC를 앞다투어 도입했다. 

특히 1997년에 있었던 사건은 ESC의 중요성을 알리는 동시에 보급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웨덴 언론매체의 긴급 위험 회피 주행 시험(엘크 테스트) 과정에서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고, 이에 메르세데스-벤츠는 모든 A-클래스에 ESC를 기본장비화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후로 ESC 시스템은 빠르게 사용 범위가 확대되었고,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 판매되는 차에는 ESC를 의무 설치하게 되어 있다.

ACC와 마찬가지로, 차 내부 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 관한 정보를 인식하고 판단한 결과를 차의 움직임에 반영함으로 써 차의 주행 제어 시스템은 더 능동적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에 혼다가 인스파이어에 레이더 기반의 충돌저감 브레이크 시스템(CMBS)에 부분적 자동제동 기능을 추가하면서 양산차 중 처음으로 자동 긴급 제동(AEB) 시스템이 등장했다. 이 시스템은 추돌 위험이 있다고 시스템이 판단하면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작동해 속도를 줄이지만, 완전 정지는 하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완전 정지 기능을 갖춘 AEB 시스템은 2008년에 볼보 V40에서 선보인 시티 세이프티(City Safety)였다. 시속 30km 이하의 속도로 주행 중에 장애물로 인한 사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시스템이 차를 완전히 멈출 때까지 제동을 가하는 시스템이었다. 

최근에는 스티어링 기구의 전동화와 더불어 시스템이 스티어링에도 개입하는 시스템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차로 이탈 경고(Lane Departure Warning, LDW) 시스템의 발전된 형태인 차로 유지 보조(Lane Keeping Assist, LKA)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LDW 시스템은 카메라로 차선을 인식하고 현재 주행 중인 차로상의 위치를 판단해 차선에 가까이 다가가면 운전자에게 경고하는 데 그치는 것과 달리, LKA는 스티어링 조작에 개입해 주행경로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현재의 능동적 안전 시스템은 차 안에 있는 여러 개별 안전 기술이 통합되어 상호작용하며 사고를 회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에 각종 감지장치와 소프트웨어의 발전, 차대차(V2V) 또는 차대사물(V2X) 통신을 통해 주변 상황을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판단하면 사고 회피 능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들 모두 완전한 자율주행 기술 구현 과정에서 함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다.

기술이 지능화되면서, 자동차 안전 기술은 마치 사람처럼 주변 상황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오히려 사람이 놓칠 수 있는 잠재 위험까지 감지해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사람보다 더 낫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기술이 그렇듯 최신 기술이라고 해서 단숨에 탄생하고 완성된 것은 아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해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많은 사람의 노력을 통해 진화하고, 각종 법규와 제반 환경을 바탕으로 검증받아야 비로소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자동차에 쓰일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언젠가 만나게 될 자율주행 기술도 발전과 진화의 결과물이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