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덕후의 사연 있는 책들

[ ‘2018 책의 해’ 공식 네이버 포스트에 쓴 글의 원본입니다 ]

자동차를 좋아하고, 글 쓰기를 좋아하다가 어느새 자동차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게 된 사람. 나라는 존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렇다. 그리고 자동차에 대해 갖는 좋은 감정과 자동차를 통해 얻는 즐거운 경험을 글로써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려는 것. 그것이 20년 넘게 꾸준히 자동차 글쓰기에서 손을 놓지 않는 이유다. 뭔가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다. 그래서 자동차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고,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에는 잡지를 통해 그런 지적 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차라는 물건이 주는 재미를 넘어서, 차와 사람 그리고 세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해온 역사에서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앎에 대한 갈증은 더 커졌다. 잡지만으로는 그런 갈증이 해소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서야 자동차를 다룬 책을 찾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 내가 원하는 책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지난 5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를 좀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들이 여러 종류가 나왔지만 아직 부족하다. 

부끄럽게도 자동차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책 하나 내놓지 못한 탓에, 차에 관한 사람들의 문화적 관심을 채울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 꼭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내 책장은 내가 할 일을 나보다 앞서 대신한 사람들의 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동안 개인적인 지적 갈증을 푸는 데 도움을 주고 지금도 수시로 좋지 않은 기억력을 되살리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는 책들과 그와 관련한 생각, 사연들을 두서없이 풀어본다.

‘아일턴 세나의 레이스 운전 교본(Ayrton Senna’s Principles of Race Driving)’은 내가 가장 아끼는 책 중 하나이고 개인적 의미도 크다.

개인적 의미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저자인 아일턴 세나에 관한 설명을 먼저 해야겠다. 그는 세계 정상급 자동차 경주 중 하나인 포뮬러 원(F1)에서 활약한 선수다. 1994년에 경주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1년 동안 F1 세계 선수권에 출전해 세 차례 챔피언이 되었고, 출전한 162번의 경주에서 1위 41차례를 포함해 3위 이내에 든 것이 80번에 이르는 천재적 실력을 자랑했다. 잡지 기사만 읽고도 팬이 되었을 정도로 대단한 카리스마를 내뿜던 인물이다.

사후에도 세나는 ‘영원한 우상’이었기에, 대학 시절에 그가 생전에 쓴 이 책이 있다는 것을 인터넷으로 알고 꼭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딱히 살 방법이 없었다. 결국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간 다음에야 드디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발급받은 신용카드로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해외직구로 산 품목이 바로 이 책이다. 그만큼 갖고 싶었고, 최대한 깔끔하게 읽고 보관하는 성격에도 책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읽고 또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 책은 번역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브라질 출신인 그의 구술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한 출판사가 낸 책을 다시 영어로 번역해 내놓은 탓에, 몇 번을 읽어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문장 구성이나 흐름이 어색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었다. 따로 책을 만들 생각 없이 한 권 전체를 번역하면서 전문분야 번역은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었고, 그 때 경험이 나중에 자동차 관련 번역 일을 할 때 크게 도움이 되었다.

자동차의 역사는 19세기 말에 시작했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발명된 것은 아니다. 지금 자동차가 정보통신 기술과 만나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모든 발명품이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자동차 탄생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 등장을 맞이하는 충격을 상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동차 탄생의 배경을 알 수 있는 책들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갖는 속성이 다양한 만큼, 배경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본 모습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골라 읽은 책들 중 대표적인 것들이 사진에 담겨 있다. 

자동차는 바퀴를 쓰는 이동수단이고, 기술자와 발명가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실험과 시행착오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 시스템이 갖춰진 뒤에야 대중에게 보급될 수 있었고, 대량생산은 자동차의 경제사회적 영향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론 나라나 지역마다 환경이 다른 탓에 자동차가 사회에 영향을 준 시기와 정도는 차이가 있다. 아직까지 자동차와 사회의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돌아보는 내용을 담은 책은 국내에 많지 않은 만큼, 앞으로 나올 책들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일본에 관한 관심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부터 무척 컸다. 성장하면서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일본이 세계적 자동차 강국으로 성장하기 전부터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좀 더 일본 자동차의 성장사를 파헤쳐 보겠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일본 자동차의 발전 과정을 정리한 책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사진 속 책들은 일본 자동차 성장의 토양이라 할 일본의 경제, 사회,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사 읽었던 책들 중 일부다.

사실 일본 자동차나 일본의 자동차 산업에 관해 다룬 책은 영어권에서 나온 것만도 무척 많다. 우리나라에도 일본 최대 자동차 업체인 토요타와 토요타 생산 방식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일본 자동차 산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고, 특히 성장 과정을 다룬 책은 더더욱 접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과의 관계를 조명할 수 있는 자료도 부족하다. 차근차근 큰 그림 퍼즐의 빈 조각을 찾아나가는 심정으로, 앞으로도 꾸준히 자료수집은 계속할 예정이다. 물론 언젠가는 마음 먹었던 대로 일본 자동차 성장사를 다룬 책을 써볼 생각이다.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에 관한 관심이 크기는 해도, 당연히 자동차 자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크다. 세상 모든 차들이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만큼, 특정한 자동차 브랜드나 모델만 다룬 책들도 외국에는 무척 많다. 특히 매력과 개성이 있는 모습으로 미적 아름다움에서 인정 받는 차들이나 성능과 운전의 즐거움 면에서 독보적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적 명차들을 다룬 책은 커다란 판형에 화려한 모습의 사진을 크게 담은 것들이 많다. 자동차와 관련해 사모은 책들 가운데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그런 종류의 책들이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이런 책들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물론 모두 직접 사지는 않았다. 사진에 나온 책들 중에는 지인이 선물로 준 것도 있고, 외국에 사는 사람에게 부탁해 구한 것들도 있다. 가운데 있는 페라리 화보는 고등학교 다닐 때 절친이 선물로 준 책이었다. 돌이켜 보면 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내가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직업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다. 미약하게나마 자동차 문화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데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주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책장에 꽂혀 있는 많은 자동차 관련 책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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