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가루’ 사태, 현대차그룹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 2018년 6월 25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얼마전 문상갔다가 오랜만에 대학 시절 과 동기들을 만났다. 대부분 전공과 관계있는 ICT쪽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주로 일이나 업계 관련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일상생활로, 그리고 자동차로 이야기 주제가 바뀌어 갔다. 물론 40대 중반쯤 되면 자동차가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 만큼 차 이야기가 오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 타고 있는 차 그리고 앞으로 바꾸고 싶거나 바꿀 차에 관한 대화 속에서 특히 의미 있게 들린 것은 친구들의 현대기아차에 대한 인식이었다. 익히 알고는 있지만, 자동차 업계와 관련 없는 사람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 일은 흔치 않은 탓에 그 정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일반 소비자들의 인식을 더 뚜렷하게 알 수 있는 대화였던 셈이다.

독자들은 대부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구매조건이 파격적으로 더 나아지지 않는 한 앞으로 현대기아차를 살 생각이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물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주변에서 외산차 구매가 늘어나는 흐름에서 동떨어지기 어렵다는 친구도 있었다. 주요 부품이 고장나서 수리를 맡겼는데 서비스를 받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불만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이유 가운데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차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현대기아차라는 ‘회사’가 싫다는 이야기였다. ‘싫은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 친구는 ‘한 번 같이 일해보면 싫어지지 않을 수 없다’고 답했다. 뜬금 없는 이유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과거 다른 업종에서 일했을 때,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포함해 대기업이나 계열사, 관계사와 진행한 일들이 썩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어서다. 요즘 흔한 ‘갑질’이라는 표현이 일상화되기 전의 일이다.

대기업은 규모가 큰 만큼 회사 밖 다른 회사나 개인과 함께 추진하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대기업과 직접 계약을 맺고 진행되는 일도 있고, 하도급법을 비롯한 법규 때문에 여러 단계를 거쳐 중소기업 또는 개인에게 외주나 용역을 맡기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대기업과 관계를 맺고 일을 하는 회사나 개인은 국내에 수없이 많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규모가 가장 큰 만큼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가장 크다. 달리 표현하면 국내 최대의 거래처를 거느리고 있는 자동차 업체가 현대차그룹이라는 뜻이다.

대기업 특성상 외부와의 거래나 소통은 수많은 경로를 통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 보면 그 많은 거래처와 이루어지는 거래가 모두 원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최대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컨트롤 타워가 명목상 존재하기는 할테지만, 그래도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업무 특성의 차이가 있을테고, 직원 개개인의 성향과 표현도 다르니 분명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을 것이다. 군대가 아닌 이상, 특정한 방식을 강제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나 불편하고 껄끄러운 관계, 한 번 같이 일하고 나면 싫어지지 않을 수 없는 관계가 많다면 어떨까? 

기회 닿을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시장 독과점은 대개 소비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시야를 넓혀보면 관련 산업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그렇다. 현대차그룹의 독과점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는 제품에 불만이 있는데도 대안이 마땅치 않아 계속 구매를 할 수 밖에 없는 소비자들이나 불편함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종속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거래처들이 생겨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현대차그룹도 진의야 어떻든 표면적으로는 그와 같은 독과점의 불편한 면들을 덮기 위해 애를 쓰고 있고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면도 있다. 최근 여러 매체 뉴스에서 다룬 것만 봐도, 고속도로에서 고의 사고로 대형 사고를 막은 ‘의인 운전자’에게 새차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 세계적 모터스포츠 이벤트인 세계 랠리 선수권(WRC)에 출전해 올 시즌 제조사 순위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 제네시스 브랜드가 미국 J.D. 파워 앤 어소시에이츠가 조사한 초기품질조사(IQS) 1위를 차지한 것 등이 있다. 그러나 그런 성과들이 실제 소비자나 거래처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현대차그룹의 변화를 상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에바 가루’ 사태의 전개과정은 과거 현대기아차가 구설수에 올랐던 여러 사건의 흐름을 거의 같이 답습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강화하기에 충분하다. 과연 이런 일들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일까?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해도, 현대차그룹은 왜 똑같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것일까? 그것도 회사의 뿌리가 박혀 있는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문제는 안에 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예를 들어서 현대차그룹이 도마에 올랐지만, 사실 전개되는 흐름만 다를 뿐 국내 대다수 대기업이 공통적으로 같은 문제를 품고 있다. 경영권을 일가에 세습할 계획이거나 그 과정에 있는 곳은 더욱 그렇다.

단순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으로 회사의 체질이 달라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내부적으로 정신차리지 않으면 국내 소비자의 시선 역시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소비자나 거래처에게 대안이 생기면 현대차그룹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빠르고 더 크게 암울해질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에바 가루’ 사태와 같은 일의 반복은 소비자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지만, 회사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현대차그룹 사람들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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