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시장 노크한 베트남차와 중국차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

[ 2018년 10월 8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이번 파리 모터쇼는 규모나 업체 참여 면에서 과거보다 많이 위축된 모습이었다. 국내에 모터쇼 관련 소식은 적잖이 보도되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될 만큼 파격적이거나 혁신적인 차들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하거나 의미 있는 차들의 데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몇몇 업체의 새차들은 국내 매체의 관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고 자동차 업계의 주류에서 벗어나 보이면서도, 상징성이나 앞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 면에서 결코 무시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베트남 토종 자동차 브랜드인 빈패스트(Vinfast)다. 외국계가 아니면서 실질적인 베트남 유일의 자동차 제조업체로 알려진 빈패스트는 베트남 최대의 민간 기업인 빈그룹의 계열사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빈패스트는 지난 8월 GM 베트남(옛 대우자동차 시절에 설립한 비담코에 뿌리를 둔 업체)의 하노이 공장을 인수하고, 현지에서 생산되고 있는 쉐보레의 판매와 유통을 전담하는 것은 물론 내년부터 OEM 방식으로 GM 소형차를 생산해 빈패스트 브랜드로 판매하게 된다. 빈패스트의 모기업인 빈그룹(Vingroup)은 이전에도 GM 베트남에서 공급하는 차를 베트남 내에 독점 유통하고 있었고, 이번에 GM 베트남 하노이 공장을 인수하면서 생산과 유통을 모두 손에 쥐게 되었다. 

빈패스트는 그와 더불어 이번에 파리 모터쇼를 통해 첫 고유 모델인 LUX A 2.0 세단과 LUX SA 2.0 크로스오버 SUV를 공개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두 차는 피닌파리나, 이탈디자인 주지아로, 자가토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디자인 업체에 시안을 요청하고 베트남 소비자들의 투표를 통해 양산할 차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번에 공개된 차는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피닌파리나의 안을 바탕으로 GM 출신인 데이비드 라이언이 이끄는 빈패스트 디자인 팀이 마무리했다. 기본적인 설계는 BMW의 지적 재산권 승인을 받아 이전 세대 5 시리즈 세단과 X3 SUV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엔지니어링 업체인 마그나 슈타이어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엔진 역시 BMW의 2.0리터 가솔린 엔진을 바탕으로 엔지니어링 업체 AVL과 협력해 개발했다. 

빈패스트는 기본적으로 베트남 시장에 주력하지만, 하노이 공장의 생산능력이 베트남 내에서의 수요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에서 외국 시장 진출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특히 엔지니어링 업체 EDAG과 계약해 배터리 전기차(BEV) 개발을 시작한 것도 그와 같은 추측에 힘을 싣고 있다. 베트남에서 전기차 생산을 추진하고 있는 업체는 점점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충전 인프라는 물론 제도적 뒷받침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새차는 파리 모터쇼를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 무대로 삼은 GAC 모터의 GS5 SUV다. 이 차는 중국명 트럼치(Trumchi) GS5의 2세대 모델로, 이전 세대보다 한층 더 세련된 디자인과 최신 기술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상세 제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대 싼타페와 비슷한 크기에 풀 LED 헤드램프, 190개의 LED를 3차원으로 구성한 일체형 테일램프, 플로팅 루프 디자인의 차체 측면과 더불어 3세대 1.5리터 터보 GDI 가솔린 엔진과 아이신제 6단 유압식 자동변속기를 갖췄다. 엔진 최고출력은 152마력과 169마력의 두 가지다. 이전 세대 모델에 2.0리터 자연흡기와 1.8리터 터보 가솔린 엔진을 5단 수동 및 5단 자동변속기와 조합했던 것과 비교하면 좀 더 발전된 구성이다.

섀시는 이전 세대의 것을 개선해 스티어링 반응 속도가 빠르고 ‘스포츠카 수준’의 제동력을 갖췄다는 것이 GAC 모터의 주장이다. 아울러 태블릿 PC 스타일의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을 갖춘 것을 비롯해 실내 역시 최신 유행에 뒤지지 않는 모습이다. 중국 내 기본가격은 12만~17만 5,000위안(약 1,970만~2,875만 원)으로 정해졌다.

중국 광저우가 근거지인 GAC 모터가 유럽의 대표적 모터쇼에서 자국 판매 모델을 처음 공개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GAC 모터는 중국 내에서의 가파른 성장세를 바탕으로 주요 선진 자동차 시장으로의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앞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인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북미국제오토쇼(NAIAS)에 꾸준히 차를 전시하면서 2019년 미국 판매를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무역전쟁이 중국산 자동차의 미국 진출을 어렵게 만들고 있어, GAC 모터의 계획이 예정대로 실천될 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 파리 모터쇼 참가를 통해 서유럽 시장에 얼굴을 내민 것은 유럽 역시 진출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GAC 모터는 올해 8월에 열린 모스크바 모터쇼에도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러시아에 첫 해외 자회사를 설립하고 내년부터 사업을 본격 시작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동안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완성차 수출과 판매는 주로 각종 규제가 심하지 않고 시장 규모가 작은 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시장 확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까다로운 안전과 환경 관련 규제를 뚫고 선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조악한 품질의 값싼 물건’이라는 중국 제품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마트폰을 비롯한 주요 전자제품 생산의 상당수가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판매하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더 강조되어 중국산이라는 점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의 심리를 움직이기에 좋은 자동차를 통해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이미지를 끌어 올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셈이다. 

디자인이나 기술 등 여러 면에서 중국차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까지는 좋지 않지만, 이미 GM이 중국에서 생산되는 뷰익 인비전을 미국에 판매하고 있고, 볼보는 S90 세단의 생산을 전량 중국에서 하고 있다. 적어도 한정적으로나마 생산능력과 품질 등에 있어서 중국산 자동차가 선도 업체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서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국내 브랜드 차의 이미지나 점유율이 두드러지지 않는 제3세계 국가 등에서는 이미 중국차의 진출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점차 국내 브랜드 차와 중국차가 경쟁하는 시장이 넓어질 수 있고, 선진 시장 진출이 본격화된다면 국내 브랜드 차들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빈패스트처럼 자동차 시장에 새롭게 뛰어드는 업체들도 시장에 따라서는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불확실하지만, 국내 업체 차들이 세계 핵심 시장에서 일본차와 중국차 사이에서 협공을 받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이 위기가 아닌 적은 거의 없었지만, 이와 같은 흐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근본적 변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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