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달려온 월간 ‘자동차생활’, 발행을 멈추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발행된 자동차 월간지 자리를 지켜온 월간 ‘자동차생활(CARLIFE)’이 발행을 중단했습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제가 처음일 겁니다. 물론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은 알음알음 알고 계실 테고, 독자 여러분도 짐작은 하고 계셨을 겁니다. 대략 매달 20일 전후로 다음달 잡지가 발행되었는데, 10월 중순이 다 되도록 2021년 10월호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여러 이유로 자동차생활을 사지 않은 지 오래됐지만,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듣고 인터넷을 뒤져 마지막으로 발행된 2021년 9월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8월 말에 발행된 9월호를 10월에 샀다는 사실은 잡지쟁이 출신인 저로서는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잡지는 대개 다음달 책이 나오면 그달 책은 반품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달이 지나도록 재고로 남아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신호니까요.

전해들은 이야기와 제 나름대로 확인한 정보를 종합해 정리하면, 그동안 자동차생활을 만들었던 (주)자동차생활은 종이잡지 발행을 중단했습니다. 9월 중순에 편집부원이 모두 퇴사했고, 그래서 10월호는 발행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10월 10일 기준으로 (주)자동차생활은 사업자등록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고, 주요 총판의 휴간 및 폐간 매체 목록에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동차생활은 일단 ‘발행 중단’ 상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언제든 다시 발행될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발행 중단의 이유가 된 재정난이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자동차생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발행된 자동차 월간지였습니다. 1984년 9월호로 창간해 통권 445호인 2021년 9월호가 창간 37주년 기념호였습니다. 잡지 발행이 사양화되어 휴간하거나 폐간하는 잡지가 잇따르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상황에서, 자동차라는 조금 특별한 소재를 전문으로 다루는 월간지로서 이처럼 장수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긴 합니다.

다만 자동차생활과 함께 자동차에 대한 동경과 애정을 키웠고, 자동차 저널리즘에 몸담겠다는 꿈을 꿨고, 젊은 시절의 짧지 않은 시간을 필자와 기자로서 발행에 참여했고, 회사를 떠난 뒤에도 변화와 부침의 과정을 지켜보며 애증이 교차했던 사람으로서 자동차생활의 발행 중단에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수많은 월간지 중 하나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와 산업의 성장기에 자동차생활이 했던 역할이 워낙 컸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자동차생활과 더불어 자매지 ‘카 비전’ 발행도 중단되었습니다. 1991년 7월호로 창간해 2009년 6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던 카 비전은 우여곡절 끝에 2020년 7월에 재창간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제호만 부활했을 뿐, 내용은 과거 카 비전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광고 유치용으로 별도 발행했던 카구즈(CarGoods)를 이어받은 것이었지요. 이유야 어쨌든, 카 비전은 두 번째로 발행을 멈추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재발행 때에 실체를 접하고는 무척 씁쓸했던 기억인데, 이렇게 되고 나니 씁쓸함이 더합니다.

우리나라는 특수한 콘텐츠 소비환경의 영향으로 더 어렵긴 하지만, 전세계 어디나 잡지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터넷의 일상화, 매체가 아닌 개인 미디어의 활성화, 콘텐츠 형식의 다양화 등에 힘입어 자동차 잡지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죠. 이번에 발행을 중단한 자동차생활과 카 비전뿐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에 제가 좋아했던 몇몇 자동차 잡지들의 한국판들도 잇따라 발행을 중단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 살아남는 자동차 잡지들은 살아남고, 오히려 지난 몇 년 사이에 발행을 중단한 것들도 있지만 새로 발행을 시작한 자동차 잡지들도 있습니다. 물론 발행부수 자체는 많지 않지만, 전문적이고 특화된 콘텐츠와 시장을 바탕으로 독자와 광고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매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자동차 잡지의 근본적 매력 즉 깊이 있는 내용,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보다는 지면에서 더 빛이 나는 아름다운 사진과 편집 같은 것들은 기본이고요.

자동차 저널리스트면서 자동차와 자동차 잡지 애호가로서, 자동차생활 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자동차 잡지에 기대하는 바도 같습니다. 자동차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은 이제 매체나 채널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매체나 채널에서 할 수 없는 즉 자동차 잡지만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매력있게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그리고 독자(수용자라고 하는 편이 낫겠네요)를 설득하지 못하면 광고주도 설득하지 못합니다. 광고는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콘텐츠의 영향력 때문에 집행하는 것이니까요.

매달 새로운 주제와 콘텐츠로 독자와 만나야하는 잡지는 흐름을 이끌어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흐름을 따라갈 수는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 잡지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생활의 발행 중단은 37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적잖은 시간을 자동차 콘텐츠 산업의 선두에 있었으면서도 제때 알맞게 변화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만, 만약 자동차생활이 다시 발행될 수 있다면 과거와 선을 긋고 제대로 된 자동차 전문지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P.S. 올해 초에는 월간 자동차생활을 창간하신 김재관 회장께서 별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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