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시선집중! 매력과 창의성, 혁신이 돋보인 르노의 역사적 모델 10가지

1990 Renault Clio / 1990 르노 클리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인 르노는 역사가 100년이 넘어 세계적으로 존재감이 큰 편이다. 그러나 그런 존재감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인지도는 높지 않은 편. 긴 역사에 비해 우리나라와의 연이 그리 길지도, 깊지도 않았던 영향이 크다. 그래서 그동안 자동차 역사에 남긴 흔적들 가운데 특별한 의미와 재미가 있는 모델들을 통해 르노가 쌓아온 탄탄한 역사와 영향들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01. 타입 AG/AG1 ‘마른 택시’ (1909)

Renault Type AG1 'Marne Taxi' / 르노 타입 AG1 '마른 택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군은 빠른 속도로 프랑스 파리를 향해 진격했고, 개전 후 한 달이 조금 지날 무렵인 9월 초에 이미 파리 외곽까지 다다르며 프랑스 수도를 위협했다. 프랑스 군은 파리 동북쪽을 지나며 흐르는 마른(Marne)강을 교두보 삼아 독일군을 저지하려 했지만, 병력 부족으로 전세가 불리했다. 대규모 군 병력 수송은 철도에 의존해야 했지만, 한시가 급했던 프랑스 군은 급히 파리에 있는 모든 택시를 동원해 병력을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파리 택시의 대부분은 르노의 타입 AG였다. 1905년부터 생산된 타입 AG는 실용성과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는 한편 당시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고려해 튼튼하게 설계되었다. 그 결과, 뛰어난 내구성과 높은 신뢰성을 갖출 수 있었기에 택시 업체들의 사랑을 받았고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군의 요청에 응한 택시 업체들이 동원한 대다수의 택시가 타입 AG였기에, 병력을 태우고 전선으로 이동하는 행렬 역시 타입 AG로 가득했다. 이틀에 걸쳐 600여 대의 택시가 파리와 마른을 오가며 6,000여 명의 군인을 전선으로 보냈다.

Renault Type AG1 'Marne Taxi' / 르노 타입 AG1 '마른 택시'

신속한 병력 보강에 힘입어, 프랑스 군은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함락 위기에 처한 수도 파리를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민군 합동 작전은 전쟁 속에서 프랑스 국민들의 애국심과 결속력을 키웠고, 나라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운 택시를 만든 르노 브랜드의 이미지도 함께 높아졌다. 아울러 기동성 있는 자동차를 이용한 병력 수송의 장점과 잠재력을 입증함으로써 군의 동력화 속도를 높이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 이 때의 활약으로 타입 AG에는 ‘마른 택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02. FT 전차 (1917)

Renault FT Tank / 르노 FT 전차
CC-BY-4.0 | Jean-Paul Grandmont

전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차대전이 한창이었던 1916년의 일이다. 영국이 황폐해진 유럽 전장에서 벌어지던 참호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성’의 개념으로 포와 무한궤도를 갖춘 장갑차를 만들어 투입한 것이 시작이었다. 같은 전장에서 전투를 치르는 다른 참전국도 비슷한 개념의 전차들을 만들었지만, 대부분 지나치게 큰 차체와 육중한 장갑으로 전선 돌파와 공격 등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르노는 프랑스 육군의 의뢰로 창의적인 설계의 새 전차를 개발했다. 차체 위쪽에 주포가 설치된 회전식 포탑을 달고, 차체 뒤쪽에 엔진을 배치하고 승무원이 타는 공간은 앞쪽에 있는 구성은 다른 전차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나온 크고 무거워 움직임이 둔했던 다른 전차들보다 작고 가벼워 기동성이 뛰어났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군대의 전차 운용방식을 바꾸는 데도 큰 영향을 주었다. 전차를 대량으로 투입해 빠르게 적진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Renault FT Tank / 르노 FT 전차
Public Domain

르노의 혁신적 설계는 여러 나라 군의 주목을 받았고, 여러 나라에 수출된 것은 물론 면허 생산이나 복제를 통해 비슷한 구조의 전차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1차대전 중 르노가 생산한 FT 전차는 3,000대가 넘고, 이후로 제2차 세계대전은 물론 21세기 초반까지 여러 전장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쓰였다. 즉 르노 FT는 전차의 개념을 현대화하고 대중화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아울러 전차를 활용한 전투의 형태도 크게 바꿈으로써, 전쟁의 모습 전반이 달라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FT 전차의 개발을 비롯해 1차대전 중 다양한 군용장비의 개발을 이끈 르노 창업자 루이 르노는 1918년에 승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명예훈장)를 받기도 했다.


#03. 에트왈 필랑트 (1956)

1956 Renault Etoile Filante / 1956 르노 에트왈 필랑

제트 엔진 항공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2차대전 이후, 자동차 업계도 ‘제트 시대’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다. 1950년대 들어 공기역학적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자동차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물론, 항공기 기술을 자동차에 접목하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르노 역시 그런 흐름에 동참했고, 새로운 기술을 통해 자동차의 성능과 효율을 높이려는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1956년에 선보인 속도기록용 차인 에트왈 필랑트(Étoile Filante)는 그와 같은 도전을 상징하는 모델이다. 에트왈 필랑트는 별똥별을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시작은 프랑스의 항공 가스 터빈 업체인 터보메카(Turbomeca)의 제안이었다. 1954년, 터보메카는 가스 터빈 기술의 장점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르노에 속도기록용 자동차 개발을 위한 협업을 제안했다. 르노는 이에 화답해, 2년여에 걸친 풍동 시험을 거쳐 날렵한 모습의 미래지향적 차체를 완성했다. 속도기록이 공인받을 수 있도록 무게를 1,000kg 이하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차체는 가볍고 튼튼한 폴리에스터 소재로 만들었다. 르노와 터보메카가 공동 개발한 가스 터빈은 270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1956 Renault Etoile Filante / 1956 르노 에트왈 필랑트

프랑스에서 시험주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르노는 1956년에 미국 유타주 보네빌 소금 평원에서 공인 속도기록 도전에 나섰다. 이 도전에서 에트왈 필랑트는 1km 구간 시속 306.902km, 1마일 구간 시속 307.707km으로 1,000kg 미만 부문에서 속도 기록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가스 터빈을 시판용 자동차의 동력원으로 쓰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에 결국 실용화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에트왈 필랑트가 세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2025 르노 필랑트 레코드 2025 / 2025 르노 필랑트 레코드 2025

르노는 이 차의 도전정신을 기념해, 2025년 초에 전기차의 성능과 주행거리 극대화를 향한 의지를 담아 선보인 데모카에 ‘르노 필랑트 레코드 2025(Renault Filante Record 2025)’라는 이름을 붙였다.


#04. 16 (1965)

Renault 16 / 르노 16

2차대전 이후 소형차 생산에 집중했던 르노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경제 성장에 발맞춰 좀 더 크고 실용적인 가족용 차 개발에 나섰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을 반영해 개발되어 1965년에 출시된 16은 여러 면에서 혁신적인 개념과 기술적 특징을 담은 것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16은 당시 중형 승용차에서 드물었던 앞 엔진 앞바퀴 굴림 방식 동력계 및 구동계 배치를 채택해, 넉넉한 실내 공간과 더불어 높은 수준의 주행 안정성을 갖출 수 있었다. 앞뒤 바퀴 사이의 거리(휠베이스)가 좌우 비대칭인 것은 앞서 선보인 소형차 4와의 공통점이었는데, 이는 단순한 구조로 승차감을 좋게 만들기 위한 뒤 서스펜션 설계 때문이었다.

여유로운 실내 공간을 한층 더 실용적으로 만든 것은 해치백 디자인을 반영한 것이었다. 세단과 왜건의 장점을 결합한 디자인은 뒷좌석을 접거나 떼어낼 수 있도록 한 설계와 어우러져, 필요에 따라 좌석을 여러 방식으로 조절함으로써 차의 쓰임새를 넓히는 바탕이 되었다. 또한, 뒷좌석과 적재공간을 통하게 만든 구조와 넓게 열리는 해치는 세단에는 싣지 못했던 크기의 짐도 넣고 꺼낼 수 있게 해, 차의 다목적성을 키웠다.

Renault 16 / 르노 16

16은 그 혁신성을 인정받아 1966년에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되었다. 이는 프랑스 차로서는 첫 수상이었다. 나아가 1980년까지 15년에 걸쳐 1,845,959대가 생산되며 많은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고, 실용성과 편안함, 다목적성을 고루 구현한 현대적 패밀리 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16의 성공은 그 뒤에 르노가 20, 25, 사프란 등 중대형 승용차를 내놓으며 실용적 해치백 스타일을 유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05. 5 (1972)

1972 Renault 5 / 1972 르노 5

르노가 1972년에 내놓은 5는 르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르노 소형차의 전통을 이어 작고 실용적인 차로 개발된 5는 여러 면에서 비슷한 시기에 나온 여러 경쟁차와 차별화되는 요소들을 고루 담아 ‘좋은 소형차’의 개념을 새로 정의한 차였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디자인이었다. 당시 동급 차들은 대부분 1960년대 유행하던 곡선과 곡면 위주의 차체에 범퍼와 램프 등 기능적 요소를 중심으로 크롬 도금 장식을 더한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5는 직선적이고 각을 강조한 차체 형태와 더불어 장식적 요소를 최소화한 스타일로 현대적 느낌을 주었다. 그 정점에는 차체 앞뒤를 감싸는 형태로 디자인한 플라스틱 범퍼가 있었다. 충격에 쉽게 찌그러지는 이전의 금속제 범퍼와 달리, 플라스틱 범퍼는 생산성을 높일뿐 아니라 작은 충격에는 손상되지 않아 실용적이었다. 이는 오래지 않아 업계의 유행이 되었다.

1976 Renault 5 / 1976 르노 5

16에서 입증된 해치백 형태의 장점도 이어받아, 크기가 작으면서도 폭넓은 용도로 쓰기에도 알맞았다. 그러면서 인기 모델 4의 설계를 한층 발전시켜, 간단한 구조로 높은 수준의 승차감을 구현함으로써 저렴하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차라는 평을 얻을 수 있었다.

5는 여러 차례 개선을 거치고 미드엔진 고성능 모델인 5 터보를 비롯해 다양한 파생 모델로 발전하며 소비자들의 요구에 응했고, 1986년에 생산을 마무리할 때까지 550만 대 이상이 판매되며 르노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특히 석유파동의 여파 속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어, 다른 업체들의 현대적 소형차 개발을 자극하기도 했다. 즉 지금까지도 유럽 시장의 주류 장르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이른바 ‘슈퍼 미니’ 차급의 성장 촉진제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2023 Renault 5 E-Tech electric / 2023 르노 5 E-Tech 일렉트릭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에 들어서며 르노가 순수 전기차 5 E-Tech 일렉트릭으로 5를 부활시킨 것도 그 상징성과 인기를 반영한 결과인 셈이다.


#06. RS01 (1977)

1977 Renault RS01 F1 / 1977 르노 RS01 F1

1970년대 르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했다. 소형차 5와 12를 비롯해 중형차 18, 대형차 20 등이 잇따라 인기를 얻으며 연간 판매량 100만 대를 넘겨 세계적 규모의 업체로 올라섰다. 나아가 동유럽과 중남미, 동남아시아는 물론 북미로도 영역을 넓히며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해 나가고 있었다. 이에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기술 선도 업체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세계 정상급 모터스포츠인 포뮬러 원(F1)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F1은 영국과 이탈리아 팀들이 주름잡고 있었고, 대다수 팀의 경주차는 8기통 및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얹고 있었다. 르노는 그들과 차별화된 기술을 강조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당시 승용차는 물론 경주차에도 흔치 않았던 터보차저를 엔진에 결합한 것이다. 엔진 오일 협력사인 엘프(Elf)와 협력해 만든 V6 1.5L 터보 엔진은 RS01 경주차의 심장으로 쓰여, 1977년 영국 그랑프리에 첫 출전함으로써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RS01은 가볍고 견고한 알루미늄 모노코크 섀시를 바탕으로 개발되었고, 미쉐린(Michelin)이 개발한 래디얼 타이어를 F1 역사상 처음으로 썼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1977 Renault RS01 F1 / 1977 르노 RS01 F1

RS01과 F1 첫 터보 엔진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새로운 기술은 충분한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고장으로 완주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노란색 경주차의 엔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RS01 경주차에 ‘노란 주전자’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2년 남짓 고전했던 RS01은 1979년에 후속 경주차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RS01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층 개선된 RS10은 1979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해 터보 엔진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이후 다른 팀도 경주차에 차례로 터보 엔진을 개발해 얹기 시작함으로써 1980년대 F1 경주차 기술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르노는 오랫동안 F1에서 활약하며 첨단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는 다양한 방식으로 양산차에 적용되어 성능과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07. 에스파스 (1984)

1984 Renault Espace / 1984 르노 에스파스

16으로 실용적인 가족용 승용차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르노는 1984년에 다시금 혁신적인 새 차를 선보이며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가족용 차의 개념을 제시했다. 유럽형 MPV(다목적 차), 즉 미니밴의 역사를 새롭게 쓴 에스파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에스파스는 원래 프랑스 자동차 업체 마트라(Matra)가 개발한 차다. 작은 규모의 업체였던 마트라는 승용차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어 레저 활동을 비롯해 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고 안락하고 편리한 실내 공간을 갖춘 차를 개발했다. 다만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기에는 경쟁력이 낮아 규모가 큰 브랜드를 통해 판매할 수 있도록 다른 업체들에 제안했는데, 당시로는 급진적이었던 제품 개념을 받아들인 업체는 르노 뿐이었다.

1984 Renault Espace / 1984 르노 에스파스

앞 부분이 날렵한 상자 형태의 차체를 갖춘 에스파스는 크기가 중형 세단 정도였음에도 실내 공간은 훨씬 더 넓었다. 실내는 바닥이 평평해 차에 탄 사람들이 움직이기 편했고, 뒷좌석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앞좌석을 뒤를 향하도록 회전시킬 수도 있었다. 게다가 좌석 위치가 높고 창이 넓어 개방감도 뛰어났다. 이와 같은 특징은 자동차에 생활공간 개념이 반영된 것으로, 당시로서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시도였다.

Renault Espace - all generations / 르노 에스파스 - 전 세대

처음에는 소비자들에게도 낯설게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인기를 얻어 새로운 유행을 이끌게 되었다. 프랑스적 실용주의를 잘 구현한 에스파스는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르노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모델이 되었다.


#08. 클리오 (1990)

1990 Renault Clio / 1990 르노 클리오

1990년 이전까지 르노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5였다면, 이후 르노의 정체성과 강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모델로는 단연 클리오를 꼽을 수 있다. 5의 정신적 후계자라 할 클리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소비자들의 요구를 세대 교체 과정에서 꾸준히 반영하며 그 시대에 어울리는 슈퍼 미니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온 모델이기도 하다.

1990년에 선보인 1세대 클리오는 균형잡힌 5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에 좀 더 부드러운 곡선을 더해 세련된 분위기를 냈다. 세련미는 스타일에 그치지 않고 품질과 장비에도 반영되었다. 충실하게 갖춘 편의 사항과 넓은 파워트레인 선택의 폭 등은 소비자들에게 소형차가 저렴한 값과 높은 경제성 이상의 매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93 Renault Clio Williams / 1993 르노 클리오 윌리엄즈

특히 F1 파트너인 윌리엄즈(Wiliams) 팀과 협업해 1993년에 만든 클리오 윌리엄즈는 찬사를 받으며 이후 고성능 라인업인 RS(Renault Sport)가 르노 주요 모델에 자리를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미드엔진 구조로 마개조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5 터보의 개념을 이어받아 2세대 모델을 바탕으로 만든 클리오 V6는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그와 같은 특별 모델들은 소형차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재미와 즐거움으로 클리오의 가치를 높였다.

Renault Clio - Saga / 르노 클리오 - 5세대

클리오는 5세대까지 전 세계 120여개 국에서 1,700만 대 이상 판매되었고, 르노 브랜드 127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판매된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올해 선보인 6세대 모델과 함께 계속해서 새로 쓰여지고 있다. 좋은 차의 기준이 판매량이라고 한다면, 클리오는 르노 역사를 통틀어 가장 좋은 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세대 모델이 1991년에, 3세대 2006년에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된 것은 실제로도 좋은 차임을 입증하는 예다.


#09. 조에 (2012)

Renault ZOE - Early version / 르노 조에 (초기형)

조에는 전기차 시장에 대한 르노의 선견지명과 앞선 투자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많은 자동차 업체가 2015년에 일어난 이른바 디젤게이트를 계기로 전기차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데 비해, 르노는 이미 여러 차례 콘셉트카를 통해 제시했던 전기차에 대한 비전을 2012년부터 조에를 양산함으로써 현실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핵심 시장인 유럽의 전기차 환경과 수요의 특성을 고려해 만들어진 모델로서, 알맞은 크기와 성능은 물론 가격 접근성까지 갖춘 조에는 조용한 성공을 거두었다. 고향인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2015년부터 2년 연속으로 유럽 전기차 시장을 석권한 것은 물론, 2020년까지의 유럽 시장 누적 판매량도 전기차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2024년까지 약 12년 동안 생산된 조에는 40만 대 전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Renault ZOE - Early version / 르노 조에 (초기형)

또한, 기술 발전과 더불어 꾸준히 성능이 개선되었다. 특히 배터리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초기에 22 kWh에 머물렀던 충전 전력량은 후기에는 최대 55 kWh까지 늘어났고,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도 두 배 가까이 길어지며 기술 변화의 산증인 역할을 톡톡이 했다.

조에는 2020년부터 약 2년간 우리나라에서도 판매된 바 있다. 르노가 우리나라에 판매한 전기차 가운데 국내 전기차 충전기 표준인 CCS 콤보 1을 지원한 첫 모델로, 시장에서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하는 역할을 했다.


#10. 메간 R.S. 트로피-R (2019)

2019 Renault Megane R.S. Trophy-R / 2019 르노 메간 R.S. 트로피-R

모터스포츠와 스포츠카 팬들에게는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퍼 랩 타임이 꾸준한 화제거리다. 현존하는 가장 가혹한 테스트 코스 중 하나로 여겨지는 노르트슐라이퍼에서의 랩 타임은 차의 종합적인 성능을 짐작할 수 있는 척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르노는 여러 세대에 걸쳐 메간의 고성능 모델인 메간 R.S로 뉘르부르크링 랩타임 기록에 도전한 바 있다. 특히 3세대 메간을 바탕으로 만든 메간 R.S. 275 트로피-R은 2014년에 7분 54초 36의 기록을 내며 앞바퀴굴림 승용차 처음으로 랩타임 8분의 벽을 깨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9년에는 4세대 메간 기반의 메간 R.S. 트로피-R이 7분 40초 10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 기록은 이후 4년 남짓 깨지지 않았다.

2019 Renault Megane R.S. Trophy-R / 2019 르노 메간 R.S. 트로피-R

그 덕분에, 메간 R.S. 트로피-R은 실용적인 승용차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성능을 추구하는 르노 R.S.의 탁월한 성능을 입증함은 물론, 끊임없는 도전으로 한계를 높여나가는 르노의 의지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 * 이 콘텐츠는 르노코리아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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