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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RV 차량의 인기에 밀려 상대적으로 승용차 부문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는 기아에서 새로 내놓은 스펙트라를 시승했다. 이 차는 세피아 II를 기초로 만들어져 완벽한 신차는 아니지만 “속속들이 섬세한 차”라는 광고카피처럼 많은 부분이 개선돼 세피아 와는 격이 달랐다. 시승차는 1.5 DOHC 엔진에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고급형 모델이었다.

외관상으로는 이전 모델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선의 처리가 강렬해졌다. 전반적으로 많이 날렵해졌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특히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뒷모습은 소형차인 리오처럼 패밀리룩을 지향했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세피아 II의 금형을 크게 손보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변화를 줬다. 전체적인 스타일 흐름을 거스르는 대형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도 아쉽고 도어 아랫부분의 사이드 스커트도 좀 더 깔끔하게 마무리할 필요가 있겠다.

실내 레이아웃도 큰 변화는 없지만 세심한 손질이 가해졌다. 이전 기아차들과는 달리 다양한 편의장비들을 많이 채용해 폭넓은 고객층에게 어필할 것으로 보여진다. 실외공기의 오염도에 따라 자동으로 공기를 차단해주는 AQS 장치나 선글래스 보관함이 마련된 실내등, 도어 핸들 등은 현대차와의 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2단으로 열리는 콘솔박스는 사용하기 편리하고 여성운전자를 위해 운전석 선바이저 안쪽에도 화장거울이 부착됐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히팅장치도 선택할 수 있다.

트렁크 내에 트렁크를 열 수 있는 레버가 달려있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사람이 갇혔을 때를 대비한 장치로 실용성은 의문이지만 안전을 배려했다는 측면에서 가치있게 보여진다. 또 뒷좌석을 6:4 비율로 나누어 접을 수 있게 해 화물 적재능력도 뛰어나다. 시트의 착석감도 기존 기아차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특히 뒷좌석의 경우 등받이 각도를 크게 하여 앉은 키가 큰 사람도 머리 위 여유공간이 충분하다.

엔진은 리오에 얹힌 것과 동일한 MITECH엔진으로 1백8마력의 힘을 낸다. 리오보다 큰 차체여서 상대적으로 무거워 성능면에 있어서 탁월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엔진룸은 대형 엔진커버를 채용하는 등 정리가 잘 되어있어 깔끔해 보인다. 자동변속기는 약간 반응이 느린 편이지만 전반적으로 정숙한 편이다. 다만 급가속시 들리는 엔진소음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승차감은 상당히 부드러워 다른 준중형차들의 유럽감각과는 대조적이다. 부드러운 승차감때문에 코너링이 취약할 것으로 보였지만 예상외로 안정적이었다. 서스펜션의 지지력에 순정 타이어의 접지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감각도 한결 세련되어져 동적 측면에 있어서는 기존 기아차들의 성격을 완전히 탈피했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스펙트라는 날카로운 겉모습과는 달리 부드러운 성격으로 조율되어있다. 편안한 운전환경과 넉넉한 느낌의 동적 성능, 세심한 편의장비 등으로 특히 여성 운전자들에게 인기를 얻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