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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2003년 3월 1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미국 1위의 고급차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캐딜락과 링컨. 오늘날 각각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를 대표하는 고급차 브랜드이지만 두 브랜드의 역사를 살펴보면 단 한 명의 창업자 헨리 릴랜드(Henry Leland)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젊은 시절 미국 총기제작회사 콜트에서 정밀가공기술을 배웠던 릴랜드는 자신이 세운 기계가공회사를 통해 뛰어난 성능의 엔진을 만들어왔다. 그가 자동차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 대량생산회사인 올즈모빌에 엔진을 공급하면서부터. 그러나 그는 사업상의 문제로 올즈모빌과 불화가 생겼고 독자적인 자동차 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때마침 헨리 포드가 세운 디트로이트 오토모빌이 경영난에 빠지자 그는 1902년 이 회사를 인수했다. 회사의 이름은 디트로이트를 개척한 프랑스 탐험가의 이름을 따서 캐딜락이라고 지었다. 이때 그의 나이 60세. 캐딜락은 세계 최초로 주요부품이 완벽하게 호환되는 차로 명성을 높이며 미국 상류층에 큰 인기를 끌었다.

평생 기술자로 남고 싶어했던 그는 1909년 캐딜락을 GM의 대표차종으로 만든다는 조건을 내세워 GM 창업자인 윌리엄 듀런트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캐딜락 담당 부사장으로 물러앉은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엔진개발 문제, GM의 문어발식 확장 등과 관련해 경영진과 충돌했다. 릴랜드는 1917년 아들 윌프레드와 함께 GM을 떠나 새로운 자동차 회사를 다시 세웠다. 새 회사의 이름은 그가 평소 존경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이름을 땄다. 릴랜드가 75세였던 1920년 링컨의 첫 자동차가 생산됐다.

이후 링컨은 캐딜락, 패커드와 함께 미국 고급차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곧 고급차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링컨은 경영난에 빠졌고 1922년 포드로 흡수됐다. 1932년 릴랜드가 세상을 떠난 후 지금까지 캐딜락과 링컨은 미국 대통령 전용차로 번갈아 사용되는 등 미국 최고급차로서의 자존심 다툼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