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4월 GM대우 사보 ‘Driving Innovation’에 실린 글입니다]

자동차가 달리기 위해서는 지면과 닿아있는 타이어, 즉 바퀴가 굴러야 한다. 바퀴가 구른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바퀴로 전달된 엔진의 회전력(힘)이 타이어와 지면 사이의 마찰력과 균형을 이룬다는 뜻이다. 바퀴의 회전력과 타이어의 마찰력이 균형을 이루면 바퀴는 정상적으로 구르고, 균형이 깨지면 바퀴는 움직이지 않거나 헛돌게 된다. 바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엔진 회전력보다 타이어의 마찰력이 크다는 것을, 바퀴가 헛돈다는 것은 타이어의 마찰력보다 엔진 회전력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 바퀴와 회전력을 전달하는 동력전달축 사이에 자리 잡는 것이 브레이크다. 브레이크는 쉽게 말해 회전력이 바퀴로 전달되는 것을 강제로 제한하는 장치이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 브레이크가 바퀴의 회전을 제한하는 힘이 타이어의 마찰력보다 작고, 차가 계속해서 움직이려는 관성을 이길 수 있어야 바퀴의 회전이 느려진다. 그래서 브레이크의 제동력과 타이어의 마찰력이 같아지고, 관성이 점점 줄어들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에 차는 멈춘다. 맑은 날씨에 마른 상태로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천천히 밟아 차의 속도가 조금씩 줄어든다면 이런 일들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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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am Opel AG

문제는 모든 길이 다 잘 포장되어 있고 표면이 바짝 말라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비나 눈이 내린 길이나 비포장도로, 기름기나 먼지가 많은 길에서는 잘 포장된 마른 도로만큼 타이어의 마찰력이 크지 않다. 이런 길에서는 평소처럼 브레이크를 밟아도 쉽게 타이어가 미끄러진다. 평소 같으면 서서히 제동력과 마찰력이 균형을 이루겠지만, 제동력과 관성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마찰력만 낮기 때문에 바퀴는 회전을 멈춘 상태로 관성에 의해 길 위를 미끄러져 나간다.

또한 교통상황에 따라 갑자기 앞으로 끼어드는 차를 만날 상황도 생기고, 꼬불꼬불한 국도를 달리다가 갑자기 꺾이는 커브를 만날 때도 있다. 이런 여러 상황들을 맞닥뜨리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급제동을 하게 된다. 급제동을 할 때에는 브레이크의 제동력이 타이어의 마찰력을 넘어서버리는데 관성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이 때에도 바퀴가 돌지 않는 상태로 관성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차가 미끄러진다. 즉 바퀴가 돌지 않으면 차는 관성에 의해 움직이고, 이렇게 되면 운전자가 아무리 스티어링 휠을 돌려도 차는 자기가 움직이던 방향으로만 향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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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ert Bosch GmbH

이럴 때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ABS다. ABS는 ‘앤티-록 브레이크 시스템’(Anti-lock Brake System)의 머릿글자를 따온 것이다. ‘앤티-록’이란 잠기는 것, 즉 바퀴가 회전을 멈추는 것을 막는다는 뜻이다. ABS는 먼저 바퀴가 구르는 속도와 차의 진행속도를 감지한다. ABS의 핵심장치인 컴퓨터는 이들 정보를 계속 비교하고 계산한다.

어느 순간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를 생각해 보자. 차는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바퀴가 돌지 않는다는 것을 컴퓨터가 알아차리면 ‘아, 차가 미끄러지고 있구나’라고 판단을 내린다. 컴퓨터는 눈치가 아주 빨라서, 이런 상황이 시작되자마자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브레이크의 제동력을 순간적으로 풀어준다. 그러면 돌지 않던 바퀴는 다시 돌아간다. 바퀴가 돌면 엔진 회전력이 바퀴로 전달되기 때문에 안정된 상태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속도는 줄여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컴퓨터는 다시 브레이크의 제동력을 이어준다. 이런 동작을 차가 멈추거나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뗄 때까지 계속 반복되고, 그 속도는 1초에 수십 번에 이른다. 운전자는 브레이크 페달을 한 번 밟더라도, 컴퓨터는 보이지 않게 운전자 대신 브레이크 페달을 ‘다다다닥’하고 밟았다 떼는 일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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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ert Bosch GmbH

그렇다면 운전자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된다. 평소 달릴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ABS가 작동하는 상태에서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방향으로 차를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이 ABS가 원래 만들어진 목적이다.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ABS의 원래 기능은 이런 것’이라고 말해왔음에도 아직까지 ABS를 ‘제동거리를 줄여주는 장치’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ABS가 제동거리를 줄여줄 때도 있지만, 눈길이나 빗길 등 차가 미끄러지기 쉬운 곳에서는 제동거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 ABS가 작동할 만한 긴급상황이 벌어졌을 때 놀란 나머지 ‘어어’ 하다가 꼼짝도 못하고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ABS의 기능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필요할 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실생활에서는 거의 느끼기 힘들지만, 급제동 때 브레이크가 잠긴 상태에서 차가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것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ABS가 급한 상황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드라이빙 스쿨(운전‘면허’학원 말고) 등의 운전교육기관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차의 ABS가 언제, 어떻게 작동하는 지 느껴보고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경험을 통해 배운다면 사고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ABS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긴급한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아야 한다. ABS의 컴퓨터는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시원찮게 밟으면 ‘내가 일할 만큼 급한 상황이 아니구나’라고 판단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자고 있는 ABS를 깨우기 위해서는 화들짝 놀랄 정도로 브레이크 페달을 깊고 강하게 밟아야 한다. 일단 ABS가 놀래서 작동하기 시작하면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컴퓨터가 알아서 잘 해주기 때문에,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꽉 밟은 상태를 유지하고 차의 방향을 조절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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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ert Bosch GmbH

ABS가 제대로 작동하면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발에 ‘드드득’하는 진동이 소리와 함께 느껴진다. 마른 노면 위를 달릴 때라면 브레이크 페달을 힘껏 밟아야 그런 진동이 느껴지겠지만, 빙판이나 진흙탕처럼 미끄러운 노면 위를 달릴 때에는 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진동이 느껴질 것이다. 상황에 따라 대처방법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웬만한 경우에는 너무 일찍 ABS가 작동하는 느낌이 들더라도 굳이 페달에서 발을 뗄 필요는 없다.

ABS에 문제가 생기면 먼저 계기판에 ABS 경고등이 들어오지만, 경고등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ABS가 정상작동하지 않는다면 브레이크 페달을 너무 약하게 밟지는 않았는지 먼저 생각해보고, 그래도 이상하다면 정비를 받는 것이 좋다. 물론 ABS는 모든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해 주지는 않는다. 자기 운전에 대한 책임은 늘 운전자 스스로가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