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6월 GM대우 사보 ‘Driving Innovation’에 실린 글입니다]

ABS와 함께 요즘 널리 쓰이고 능동적 안전장치로는 TCS와 ESC – 컴퓨터의 ‘이스케이프 키’가 아님 – 가 있다. ESC는 ESP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포크레인’이 특정 굴삭기 상표이고 ‘클랙슨’이 특정 경적 상표인 것처럼 ESP도 특정 회사의 상표다. 그래서 같은 기능을 하는 장치를 일반적으로 ESC라고 부르고 있다. 어쨌든 이들 장치는 원리와 작동방식 등에서 비슷한 점이 많지만, 사실은 ABS에서 TCS, ESC로 갈수록 구성요소들은 훨씬 복잡해진다.

TCS는 구동력 제어장치(Traction Control System)의 영어 머리글자다. ABS와 마찬가지로 TCS도 바퀴가 헛도는 것을 막아, 미끄러운 노면에서 차가 운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한다. 다만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작동하는 ABS와는 달리, TCS는 기본적으로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아 속도를 낼 때 작동한다.

2011 Ford Mustang GT
© Ford Motor Company

구동력을 제어하는 장치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TCS는 차의 바퀴가 헛도는 원인을 바퀴에 지나치게 많은 구동력이 전달되는 것, 즉 운전자가 필요 이상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많이 밟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럴 때 TCS는 바퀴의 회전속도를 떨어뜨려 정상적으로 회전하도록 돕는다. 바퀴의 회전속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에는 엔진 출력을 조절하는 것과 브레이크를 조절하는 것이 있는데, 두 방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들 방식을 함께 쓰는 TCS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ABS는 있는데 TCS는 없는 차는 있지만 TCS는 있는데 ABS는 없는 차는 거의 없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TCS는 ABS에 쓰이는 주요 장치를 함께 쓰면서 별도의 장치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를 이용해 바퀴의 회전속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의 TCS는 바퀴의 회전속도를 감지하는 센서와 브레이크 작동을 조절하는 장치를 ABS와 함께 쓴다. 특정한 바퀴의 회전속도를 다른 바퀴와 비교해 차이가 날 때에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회전속도의 균형을 맞추는 원리가 ABS와 같기 때문이다. 단, ABS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유압에 의해 제동력이 생기지만, TCS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상태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생기는 유압을 활용할 수 없다. 따라서 TCS에는 브레이크를 작동시킬 수 있는 유압발생장치가 따로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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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ert Bosch GmbH

ESC는 ABS, TCS보다 조금 더 복잡한 장치다. ESC는 Electronic Stability Control의 머리글자로, 우리말로는 ‘전자식 안정성 제어장치(필자는 대개 ‘전자제어 주행안정장치’라고 쓴다)’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자동차 메이커에서는 이를 ‘자세제어장치’라고 번역하지만 ‘자세제어’라는 말은 ESC의 개념과 목적을 충분히 담지 못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표현은 아니다. 다만 운전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차가 움직이는 것을 돕는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뜻이 통한다고도 볼 수 있다.

ESC는 간단히 말하면 ABS와 TCS를 결합하고, 차가 정상적인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는지를 감지하고 조절하는 장치를 더한 것이다. 즉 제동과 가속할 때뿐 아니라 커브를 돌 때에도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ESC의 근본 목적은 운전자가 의도하는 주행방향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운전자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먼저 필요할 때 바퀴의 회전을 조절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ABS 및 TCS에 쓰이는 장치들이 모두 필요하다. 여기에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얼마만큼 꺾는 지 감지하는 장치, 차가 회전할 때 차체 바깥쪽으로 실리는 힘(가속도)이 어느 정도인지 감지하는 장치, 차체가 옆으로 얼마나 기우는 지를 감지하는 장치가 더해진다.

Ultimate Track Chevrolet Camaro SS concept
© GM Corp.

차가 회전하기 위해서는 스티어링 휠을 필요한 만큼 꺾어야 한다. 정상적으로 달리는 상황이라면 속도에 따라 스티어링 휠이 꺾이는 각도와 원심력 때문에 차체가 밖으로 밀려나가려는 힘, 그리고 밖으로 밀려나가려는 힘을 타이어와 서스펜션이 상쇄시키면서 차체가 기울어지는 각도가 일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차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거나 너무 빠르게 스티어링 휠을 꺾으면 차체의 움직임에 균형이 깨진다.

ESC는 이럴 때 차가 정상적인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필요한 바퀴에 제동력을 가하거나 엔진출력을 떨어뜨린다. 흔히 앞바퀴굴림 차가 코너를 돌 때 생기는 ‘언더스티어’ 현상을 줄이고, 커브에서 제때 스티어링 휠을 꺾지 못해 바깥쪽으로 미끄러져 나는 사고를 막아주는 것이다. 다른 장치들과 비교하면 미끄러운 노면에서 생길 수 있는 사고의 위험성을 줄여주는 동시에, 정상적인 노면에서 잘못된 도로설계나 운전자의 실수로 생길 수 있는 사고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2009 Cadillac CTS-V
© GM Corp.

그러나 TCS와 ESC 역시 만능 장치는 아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은 TCS가 눈밭이나 진흙탕에 빠지는 것을 막아 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TCS는 구동력을 높여주는 장치가 아니라 그저 바퀴가 헛도는 것을 막아줄 뿐이다. 일단 빠지고 나면? 아주 괴롭다. ESC 역시 커브에서 기계가 조절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차가 정상궤도를 벗어나면 대책이 없다. 이럴 때에 할 수 있는 조치라고는 브레이크를 최대한 밟는 것 밖에는 없다. 사고가 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최대한 속도를 줄이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필자도 ESC를 과신했다가 난처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시승기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경치 좋은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차를 끌고 들어갔다가 바퀴가 모래에 빠져버린 것이다. ESC가 기본으로 달려있는 차라서 멈추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래가 워낙 부드러워 손쓸 새도 없이 차가 멈춰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일단 차가 – 엄밀히 말하면 굴림바퀴가 – 멈추고 나면 아무리 훌륭한 전자장비라도 소용이 없다. 전자장치는 차가 모래에 빠져 멈춰있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모래 위의 바퀴는 헛돌 수밖에 없고, 일단 바퀴가 돌고 있기 때문에 ESC는 끊임없이 좌우 바퀴를 같은 속도로 회전하도록 조절한다. 결국 차는 양쪽 바퀴가 똑같은 속도로 돌면서 똑바른 자세로 점점 더 깊이 모래 속으로 파고든다.

Stability Control Plus Choice
© Ford Motor Company

모래사장 뿐 아니라 빙판길도 마찬가지다. 내린 눈이 다져진 언덕길을 오르다가 차가 멈춘 상황을 가정해 보자. ESC가 달린 차와 달리지 않은 차의 차이는 똑바른 자세로 헛바퀴를 도느냐, 이리저리 휘청거리면서 헛바퀴를 도느냐 정도일 뿐이다. 이럴 때에는 장사가 없다. 견인차로 끌어내거나, 굴림바퀴에 버틸 것을 괴고 사람이 미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몇몇 자동차의 사용설명서를 꺼내어 ABS, TCS, ESC에 대한 설명이 있는 부분을 찾아보면 설명 끝부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떠한 안전장비도 물리학 법칙을 거스르거나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최고의 안전장비는 역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