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의 마술, 변속기

[ GM대우 사보 ‘New Ways, Always’ 2008년 3/4월호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 세대만 해도 호기심 때문에 집에 있는 탁상시계나 벽걸이시계를 뜯어보았다가 제대로 조립하지 못해 부모님께 야단을 맞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솔직히 필자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태엽을 감아주면, 또는 건전지만 갈아 끼워주면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계는 어린 마음에 신기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던 어린 시절, 고사리 손으로 뜯어본 시계 안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톱니바퀴들이 이리저리 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멀쩡히 잘 돌아가던 시계가 필자의 손을 거치고 난 뒤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 탓에 야단을 맞으면서도, 이 작은 기계가 바늘을 돌리기 위해 여러 개의 톱니바퀴들이 일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이런 기어…아니 톱니바퀴 말이다

사실 톱니바퀴는 회전과 관련된 기계라면 거의 모든 곳에 쓰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계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다. 자동차처럼 복잡한 기계도 예외는 아닌데, 자동차의 여러 구성요소 가운데에서도 변속기는 이 톱니바퀴의 성질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변속기 속에는 다양한 크기의 여러 톱니바퀴들이 이리저리 서로 물려 있다.

흔히 변속기나 변속 단수를 이야기 할 때 기어(gear)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나시는지. 너무 흔하게 쓰는 영어 단어라 원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영어사전을 살짝 찾아보면 기어가 바로 톱니바퀴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하!’하는 감탄을 내뱉게 될 것이다.

자동차가 평지만 달린다면, 그리고 항상 똑같은 정도로 속도를 높이고 줄이며 정해진 속도까지만 달려야 한다면 변속기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자동차가 맞닥뜨리는 도로환경이 늘 똑같을 수는 없다.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도 있고, 빨리 달려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천천히 달려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엔진만으로는 이런 다양한 조건에 맞게 힘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 빠르게 가속하거나 언덕을 오르려면 엔진이 큰 힘을 내야 하는데, 큰 힘을 내기 위해 엔진을 크게 만들면 차가 무거워질 뿐 아니라 연료도 많이 소비한다.

게다가 엔진의 회전만으로는 차를 움직이기에 충분한 힘을 얻을 수 없다. 엔진에서 연료를 태워 얻은 에너지가 회전력으로 바뀌어 나오는 축을 크랭크축이라고 하는데, 크랭크축이 1분 동안 도는 횟수(분당 회전수, 줄여서 rpm)를 엔진 회전수라고 한다. 일반적인 승용차용 엔진은 시동을 걸고 난 후 적게는 1분에 700번, 많게는 1분에 7,000번 정도 돈다. 이 정도 빠르기로 도는 축에 바퀴를 달아 돌리면 엄청나게 빨리 달릴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엔진의 크랭크축은 몇 kg에서 수십 kg 정도 무게의 물건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만큼의 힘 밖에 내지 못한다. 크고 무거운 자동차를 출발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힘이다. 그래서 엔진의 한정된 힘을 폭넓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차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 만큼 엔진에서 나온 힘을 키워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바로 그런 장치가 변속기인 것이다.

GM의 하이드라매틱 5단 자동변속기. ©General Motors

변속기의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엔진에서 나오는 회전력을 톱니바퀴에 연결시키고, 톱니의 수가 다른 몇 개의 톱니바퀴를 조합해 연결할 수 있도록 하여 바퀴로 전달되는 회전력을 조절하는 것이다. 톱니바퀴는 기본적으로 도르래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크기 또는 톱니의 수가 서로 다른 톱니바퀴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가장 마지막 톱니바퀴가 도는 속도와 걸리는 힘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즉 변속기는 기본적으로 톱니바퀴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톱니의 수가 10개인 톱니바퀴(A)와 20개인 톱니바퀴(B)가 서로 맞물려 있다고 생각해 보자. 두 톱니바퀴는 물려 있는 톱니 때문에 한 쪽을 돌리면 다른 쪽도 맞물려 돌아가지만, 톱니바퀴가 도는 속도는 톱니 수에 반비례한다. 즉, 톱니바퀴 A가 두 바퀴 돌면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 B는 한 바퀴 돌게 된다. 하지만 함께 물려 있는 톱니바퀴가 하는 일의 양은 똑같기 때문에, 1이라는 힘으로 톱니바퀴 A를 한 바퀴 돌리면 A보다 톱니 수가 두 배 더 많은 톱니바퀴 B는 반 바퀴밖에 돌지 않지만 A의 두 배인 2만큼의 일을 할 수 있다.

왼쪽의 작은 기어가 오른쪽의 큰 기어보다 천천히 돌지만, 실제로 하는 일의 양은 같다.

특별한 조건이 아닌 이상, 지구상에 있는 물건들은 정지상태에서 처음 움직이도록 만들 때에 큰 힘이 든다. 그러나 어떤 물건이라도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훨씬 적은 힘으로도 수월하게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자동차도 처음 출발할 때에는 큰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출발할 때 쓰는 변속기의 1단 기어는 가장 톱니 수가 많은 톱니바퀴가 쓰인다. 그러면 엔진 크랭크축의 회전하려는 힘이 훨씬 커지기 때문에 바퀴를 쉽게 움직일 수 있다. 대신 바퀴가 도는 속도는 웬만큼 빨라지지 않는다.

이럴 때에 톱니 수가 1단 기어보다 적은 톱니바퀴를 크랭크축에 연결시키면 바퀴가 회전하는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 물론 회전하는 힘은 1단 기어를 연결시켰을 때보다 작아지겠지만, 일단 구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바퀴는 처음 정지해 있을 때보다는 훨씬 적은 힘으로도 계속 굴러갈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적은 힘을 내는 작은 엔진으로도 자동차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고, 빠른 속도에서도 엔진 회전을 낮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연료소비도 줄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톱니 수가 점점 더 적어지도록 톱니바퀴를 마련해 엔진 크랭크축과 연결된 톱니에 순서대로 바꾸어 연결시켜주면 차의 속도를 점점 더 높여 나갈 수 있다.

포드의 파워시프트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기어 구성. 그냥 봐도 온통 톱니바퀴다. ©Ford Motor Company

속도에 맞춰 톱니바퀴를 엔진 크랭크축과 바꾸어 맞물려주는 것을 사람이 직접 하게 만든 장치가 수동변속기, 기계부품이나 전자장치를 이용해 일정한 시기가 되면 맞물리는 톱니바퀴가 저절로 바뀌도록 만든 장치가 자동변속기이다. 그리고 크랭크축에서 바퀴에 이르기까지 바꿀 수 있도록 마련된 톱니바퀴의 단계가 변속기의 단수다. 톱니바퀴가 5단계로 마련되어 있으면 5단 변속기, 6단계로 마련되어 있으면 6단 변속기가 된다. 변속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톱니바퀴 갈아 끼우기’이고, 여러분이 모는 자동차가 정지상태에서 출발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속 100km까지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몇 개의 톱니바퀴가 부리는 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톱니바퀴를 이용한 수정시계도 사실은 전기를 가하면 빠르게 진동하는 결정체를 여러 개의 톱니바퀴를 맞물려 분침이 1시간에 1바퀴 돌도록 변속해 주는 기계였던 것이다. 어릴 적에 시계를 뜯어보았던 생각이 떠올라 ‘이번엔 변속기를 뜯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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