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M대우 사외보 고객사랑 2008년 6월호에 쓴 글입니다 ]

1950년대 후반, 유럽은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유가급등과 견줄만한 석유공급 불안으로 몸살을 겪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와 그에 따른 제2차 중동전쟁 때문에 중동에서의 석유공급이 차질을 빚었던 것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후복구와 경제재건에 열을 올리고 있던 터라, 유럽의 석유위기는 작고 경제적인 차에 대한 수요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자동차 메이커들이 제대로 된 소형차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틈을 타, 독일에서는 모터사이클 엔진과 부품을 이용해 만든 초소형차인 이른바 ‘버블카’(Bubble car)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바퀴가 세 개였던 이들 버블카는 서민들의 간단한 탈것 역할을 했지만, 성능은 물론 안전성 면에서도 일반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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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였던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BMC)의 회장인 레오나드 로드는 버블카가 인기를 끄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그는 아무리 사람들이 작고 경제적인 차를 원한다고 해도, 갖출 것들은 제대로 갖춘 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새로운 소형차를 개발하기 위해, 과거 그의 밑에서 여러 종류의 성공적인 차를 개발했다가 1952년에 독립한 기술자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를 불러들였다. 로드는 이시고니스에게 그가 갖고 있던 소형차에 대한 아이디어를 짤막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우선 당시 BMC가 만들고 있던 다른 소형차들보다 크기가 작아야 하고, 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미 개발되어 있는 엔진을 써야 하고, 그러면서도 차에는 네 명의 어른이 탈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시고니스는 로드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BMC 기술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이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내 로드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소형차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차를 만드는 것은 이시고니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제한된 조건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특히 길이 3m, 높이와 너비가 각각 1.2m에 불과한 차체 크기에 네 명의 어른이 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유는 엔진과 변속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승용차는 차 앞쪽에 엔진을 얹고 긴 동력전달축을 통해 뒷바퀴로 힘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식으로 차를 설계하면 엔진과 변속기가 세로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기 때문에 크기가 정해진 차체에서 실내공간을 넓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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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초의 어느 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그는 불현듯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생각나는 즉시 스케치를 통해 표현하는 습관이 있었던 그는 곧바로 연필을 꺼내어 식탁에 덮인 테이블보에 아이디어를 스케치로 옮겨 놓았다. 스케치에는 엔진을 세로 방향이 아닌 가로 방향으로 놓는 구조가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해서 엔진이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실내공간을 넓힌 새로운 개념의 차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개념은 현대적인 소형차 설계의 바탕이 된 선구적인 설계였다. 아울러 이시고니스는 차의 주행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차의 앞쪽에 대부분의 무게가 실리도록 설계했고, 서스펜션 전문가인 동료 알렉스 멀튼의 힘을 빌어 고무 소재로 만든 간단한 서스펜션을 이 차에 집어넣었다. 덕분에 가볍고도 민첩한 차가 만들어졌다.

천재적이고 열정적인 기술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개발에 매달려, 불과 8개월 만에 실제로 달릴 수 있는 테스트용 차가 완성되었다. 이시고니스 역시 테스트를 위해 직접 차를 몰고 밤길을 달리기도 했다. 새로 만들어진 차의 모습이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테스트와 보완의 반복 끝에 이윽고 1958년 7월에 이르러, 이시고니스는 개발을 맡긴 로드에게 테스트가 거의 마무리된 차를 직접 타볼 것을 권했다. 5분 남짓 직접 차를 몰아본 로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시고니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렉, 바로 이 차요. 이 차를 12개월 내에 생산하고 싶소.” 일반적인 다른 차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의 몇 분의 1에 불과한 초라한 비용으로 차를 개발한 이시고니스는 짐짓 걱정스러워져, “이 차를 생산하려면 수백만 파운드의 돈이 필요할텐데요”라고 이야기 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하고도 분명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수표에 사인을 할테니 당신은 일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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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년 남짓한 시간이 더 흐른 1959년 8월. 영국 롱브릿지의 BMC 공장에서는 이시고니스의 스케치가 구체화된 새로운 소형차가 완성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모리스 미니 마이너와 오스틴 세븐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두 차는 이내 미니(Mini)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동차 전문 언론들은 미니를 몰아보고 작은 차에서 볼 수 없었던 스포티한 주행특성과 탁월한 공간효율성에 찬사를 보냈다.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 많이 쓰였으면서도 싼 값에 나온 것도 좋은 평을 얻었다. 하지만 언론의 호평과 달리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과 설계가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미니는 혁신적인 차였다.

오래지 않아 미니의 잠재력은 색다른 곳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F1 경주차를 설계했던 존 쿠퍼가 미니의 놀라운 핸들링에 감명을 받아 만든 고성능 모델 미니 쿠퍼가 자동차 경주선수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미니는 1960년대 들어 세계적인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세 차례 우승한 것을 비롯해, 영국과 유럽의 여러 자동차 경주를 휩쓸었다. 또한 비틀즈를 비롯해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 영화배우 피터 셀러스와 데이빗 니븐 등 유명인들이 앞 다투어 구입하면서 미니는 뒤늦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영국의 도로가 미니로 수놓아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인기는 세계 여러 나라로 이어져 이태리, 스페인,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등에서도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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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지나며 영국 자동차 산업은 급속도로 위축되었다. 그래서 미니의 뒤를 이을 모델의 개발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미니를 전설적인 명차로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두 차례 있었던 석유파동 때 반짝 인기를 맛보았던 미니는 이후 판매가 뚝 떨어졌지만, 귀여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디자인과 민첩한 운동성능에 매료된 세계 여러 나라의 매니아들은 꾸준히 미니를 구입했다. BMW가 미니 브랜드를 인수하고 21세기에 어울리는 새 미니를 내놓을 때까지 41년 동안 미니는 기본적인 설계가 거의 바뀌지 않은 채로 538만7,862대가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미니는 영국이 만든 차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차로 손꼽힐 뿐 아니라, 현대적인 소형차의 설계와 개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차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