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의 뿌리를 찾아서

[ GM대우 사보 ‘New Ways, Always’ 2008년 7~8월호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

지난 2005년 개봉한 ‘트랜스포터 2’는 프랑스의 뤽 베송(‘니키타’, ‘레옹’, ‘제5원소’ 등 감독)이 기획한 액션 영화로 국내에서도 전작에 이어 제법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이 영화는 특수부대출신의 전문 운전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프랭크(제이슨 스태덤)가 펼치는 화려한 액션이 볼만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초반부에 잠깐 지나가는 장면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프랭크가 보호해야 하는 유명인사의 아들인 잭을 차에 태우면서 나누는 대화가 그것인데, 프랭크가 잭에게 일러주는 차에 탈 때의 규칙 세 가지는 누구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영화 ‘트랜스포터 2’의 스틸 사진. 주인공 프랭크(왼쪽)는 잭(오른쪽)의 자동차 문화 선생님 역할도 한다.

첫째는 ‘누군가의 차를 존중하면 그 사람에게 존중 받는다’는 것. 둘째는 ‘차에 탄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안전벨트를 채운다’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교훈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안전벨트를 채우는 것만큼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처럼 자동차로 추격전을 펼치는 상황에서야 당연히 안전벨트를 채워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안전벨트는 만약에 일어날 지도 모르는 교통사고에서 사람을 지켜주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안전벨트는 어떻게 보면 최소한의 안전장비이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확실한 안전장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안전벨트를 채우는 것이 법적으로 의무화되었을 뿐 아니라 차에 타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안전벨트와 친숙해진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안전벨트가 중요한 장비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100년이 넘는 자동차 역사가 절반 정도 흐른 뒤부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2001년형 도요타 하이랜더의 안전벨트 구성. 국내 판매되는 국산차들은 대부분 뒷좌석 가운데에는 2점식 안전벨트가 쓰인다. 안전이 중요하다면 전좌석 3점식 안전벨트 탑재가 의무화되어야 한다. ©Toyota

안전벨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끝부분은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 그리고 군대라는 조금 어색한 배경과 만나게 된다. 비행기가 처음 본격적인 무기로 쓰이기 시작한 제1차 세계대전 무렵의 비행기가 낼 수 있는 속도가 요즘의 웬만한 자동차만도 못했다. 하지만 공중전의 형태는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 적을 쫓고 피하는 와중에 비행기 바닥이 하늘을 향한 채로 뒤집어 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했다. 비행기의 속도가 빠르다면 원심력이 충분히 생겨 별 일이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시속 수십km의 ‘느린’ 비행기에 탄 조종사들은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피하기 위해 조종사들은 궁여지책으로 가죽으로 만든 띠를 조종석에 고정시키고 허리에 묶는 방법을 썼는데, 이것이 안전벨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자동차가 전 세계에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고, 자동차의 대중화와 더불어 자동차 경주도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경주에 쓰이는 차들은 예나 지금이나 일반인들이 타는 차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냈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 때 요철을 만나면 운전자가 차에서 튕겨져 나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경주차 운전자들은 전쟁 때 쓰인 비행기에서 힌트를 얻어 자신의 차에 안전벨트를 달기 시작했고, 이것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면서 요즘으로 말하면 DIY를 통해 자신의 차에 직접 안전벨트를 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20년대 들어서는 의사들을 중심으로 안전벨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때만 해도 자동차 메이커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안전벨트의 존재를 모르거나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예는 매우 드물었다.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서 자동차 사고의 위험성이 심각해지자 자동차 메이커에서도 안전벨트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구입할 수 있는 승용차에 안전벨트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의 일이다. 흔히 허리 벨트, 2점식 안전벨트 등으로 알려진 초기의 안전벨트는 허리 아랫부분에 바지용 혁대처럼 가죽 띠를 두르도록 한 것이 많았고, 지금과는 달리 안전벨트는 별도의 비용을 내야 달 수 있는 선택장비였다. 그래서 안전벨트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거나 쓸 데 없는 비용 지출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다.

볼보에서 자동차용 3점식 안전벨트를 개발한 닐스 볼린 선생과 그가 개발한 초기의 3점식 안전벨트. 38세에 자동차용 3점식 안전벨트를 발명한 볼린 선생은 지난 2002년에 작고하셨다. ©Volvo Cars

그러다가 1958년에 이르러 안전벨트에 획기적인 진보가 이루어졌다. 스웨덴의 기술자 닐스 볼린이 새로운 개념의 안전벨트를 개발해 특허를 얻은 것이었다. 항공기 회사에서 전투기의 비상탈출좌석을 개발했던 그는 1958년 볼보의 안전설계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충돌사고 때 사람의 몸이 입는 손상을 연구하던 가운데, 당시에 나와 있던 안전벨트들이 쓰기 어려운 것은 물론 몸에도 편하지 않다는 단점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안전벨트는 자동차가 다른 물체와 충돌했을 때 자동차 안에 탄 사람이 차 안의 다른 물체와 부딪히지 않도록 몸을 좌석에 고정해주는 것이다. 차를 타고 달리면 사람은 가만히 정지해 있고 차가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차가 달리는 속도만큼 사람도 같은 속도로 움직일 뿐이다.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차에 고정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차가 물체와 부딪히면 차는 관성을 잃지만 차에 탄 사람은 고유의 관성 때문에 차가 움직이던 방향을 향해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 이전까지 쓰이던 2점식 안전벨트는 허리를 중심으로 몸을 어느 정도 고정시킬 수는 있지만, 고정되지 않는 부분은 보호할 수 없다. 특히 충격에 치명적인 머리와 내장기관들은 안전벨트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한다. 볼린은 이런 사실을 고려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연구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안전벨트를 만들어냈다.

사람의 몸에서 충격을 널리 분산시킬 수 있는 골격은 골반과 가슴뼈다. 골반은 상체를 버티는 한편 다리로부터 전달되는 충격도 흡수하는 기능을 한다. 가슴뼈는 여러 개의 갈비뼈와 새장 모양으로 결합되어 외부의 충격을 분산시킴으로써 중요한 내장기관을 보호하게 되어 있다. 볼린의 안전벨트는 하체를 고정하기 위한 허리 벨트와 상체를 고정하기 위한 어깨에서 허리 아래쪽을 대각선으로 잇는 벨트를 결합한 것이었다. 허리 벨트는 하체에 가해지는 힘을 골반으로, 어깨에서 허리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벨트는 상체에 가해지는 힘을 가슴뼈로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반드시 채웁시다. 안전벨트. ©Volvo Cars

그는 여기에 가볍게 잡아당겨 벨트를 고정하고 간단히 풀 수 있는 장치를 더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가장 일반적인 안전벨트의 형식으로 자리 잡은 이른바 3점식 안전벨트가 발명되었다. 볼린이 일하던 볼보는 이 새로운 안전설계를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공개해, 3점식 안전벨트는 전 세계 자동차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 들어 안전벨트를 의무적으로 차에 달도록 하는 법이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졌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차에 탄 사람은 반드시 안전벨트를 채우도록 하는 법이 생기기 시작했다. 안전벨트의 발명 이후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시작은 매우 허술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낸 것은 아주 간단한 ‘띠’ 하나였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그동안 발명된 여러 안전장치들 가운데 가장 값진 것으로 단연 안전벨트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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