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변속기 레버의 P-R-N-D 구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 GM대우 사보 ‘New Ways, Always’ 2008년 9~10월호에 기고한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

필자는 변속기를 조작하는 것도 운전의 즐거움 중 하나로 여기기 때문에 수동변속기를 고집하고 있지만, 요즘 국내에 팔리고 있는 승용차는 대부분 자동변속기를 달고 있다. 차가 가고 서기 위해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페달만 조작하면 되는 자동변속기는 수동변속기보다 운전을 빠르고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직까지 수동변속기의 절도 있는 변속감이나 운전자의 의도에 맞는 변속을 하기는 어렵고, 연료도 수동변속기보다 많이 소비하지만 기술의 발달과 함께 자동변속기의 단점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GM의 앞바퀴굴림 구동계용 6단 자동변속기의 모습. ©General Motors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천가지 자동차가 나오고 있지만, 메이커나 차종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해도 자동변속기의 기어 레버 조작위치는 거의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앞좌석 사이의 바닥 쪽에 기어 레버가 있는 차라면 가장 위쪽에 P(Parking, 주차) 위치가 있고, 그 아래로 R(Reverse, 후진), N(Neutral, 중립), D(Drive, 전진) 순서대로 표시되어 있다. 그 아래로는 두세 단계의 기어 단수가 표시되어 있거나 레버를 옆쪽으로 빼어 수동변속기처럼 기어를 한 단씩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해놓는 등 변속기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반 운전자들이 자동변속기 차에서 다른 위치로 기어 레버를 움직일 일은 많지 않기 때문에, 차를 움직이기 위해 기어 레버를 움직이는 일은 P-R-N-D 위치로 조작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자동변속기 차에서 볼 수 있는 P-R-N-D 순서의 기어 레버 조작방식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가장 무난한 형태의 자동변속기 기어 레버 구성(사진은 GM대우 매그너스의 것). P-R-N-D 순서로 되어있고 그 아래로 3-L 모드가 있다. 3은 3단까지, L은 1~2단까지만 변속이 이루어진다. 언뜻 4단 변속기 같지만 실제로는 5단 구성. ©General Motors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 조작방식은 ‘법규’에서 정해놓았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안전과 관련해 가장 기본적으로 만들어 놓은 법규인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13조에 따르면, 중립위치는 전진위치와 후진위치 사이에 있어야 하고, 주차위치는 후진위치에 가까운 끝부분에 있어야 한다. 말로 풀어 놓은 것이라 조금 헷갈리는데, 위치를 정리하면 전진-중립-후진-주차 순서가 되고, 이것을 뒤집으면 P-R-N-D 순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순서를 법규에서 정하려면 관계기관에서 자동변속기 설계나 운전자의 조작습관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검토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법규는 그런 과정 없이 미국의 연방자동차안전기준(FMVSS)을 거의 그대로 옮겨 오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관계기관에서는 긍정도 부정도 않겠지만, 자동변속기 기어 위치에 대한 내용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은 적지 않은 부분이 미국 FMVSS를 거의 그대로 번역해 재구성해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안전기준을 독자적인 방법으로 세우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동차안전기준을 법제화하고 있는 미국의 것을 가져온 것은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 FMVSS는 오랜 시간 실험과 연구, 사고관련 사례를 검토해 이런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검증된 안전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캐딜락에 처음 도입된 하이드라매틱 자동변속기의 홍보물 그림. 기어 조작위치가 N-HI-Lo-R 구성으로 되어 있다. HI은 지금의 D 위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진 고단 기어를 뜻한다. 마찬가지로 Lo는 전진 저단 기어. ©General Motors

사실 자동변속기가 처음 등장할 무렵만 해도 기어 위치는 자동차 메이커마다 달랐다. 지금의 기준으로도 혁신적인 버튼 방식으로 기어 위치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전진과 후진, 중립 위치만 구분해 놓았을 뿐 기어 레버에 주차(P) 위치가 따로 없는 것도 있었다. 즉 기어 레버 위치가 N-D-R인 변속기들이 많았다. 자동변속기는 말 그대로 변속만 자동으로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동변속기처럼 따로 P 위치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P 위치가 따로 없는 차는 주차할 때 기어 레버를 후진(R) 위치에 놓고 시동을 꺼야 했다. 그런데 이런 차들은 운전자가 차를 출발시키기 위해 시동을 걸었을 때 기어가 후진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그대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후진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리고 시동을 건 채 운전자가 차에서 내릴 수가 없어 불편했다. 이런 점을 보완해 1950년대 중반에 시동이 걸려 있어도 바퀴가 움직이지 않는 P 위치 기능이 더해진 변속기가 나왔다. 이러면서 기어 레버의 순서는 P-N-D-R이 되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와 같은 구성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운전자들이 조작을 잘못해 사고가 자주 일어난 것이다. 전진하기 위해 레버를 움직이다가 후진 위치에 들어가거나 후진하기 위해 레버를 움직이다가 전진 위치에 들어가면서 운전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차가 달려 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운전자가 한 메이커의 차를 몰다가 다른 메이커의 차를 몰게 될 때에는 변속기 조작방법이 달라 혼란을 겪는 일도 종종 생기곤 했다. 

GM대우 라세티의 중국 버전인 뷰익 엑셀르의 4단 자동변속기 기어 레버. 오조작을 줄이는 계단식 시프트게이트가 마련되어 있지만 기능은 그냥 평범한 4단 구성. ©General Motors

이런 문제점들이 안전에 영향을 미치게 되자, 미국 정부와 미국 자동차공학회(SAE)는 변속기 조작방법을 안전하게 개선하는 것과 함께 모든 메이커들이 표준화된 조작방식을 갖도록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운전자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어 레버 구성을 찾아낸 것이 P-R-N-D 구성이었다. 이와 같은 자동변속기 조작방식이 표준화된 것은 1965년의 일이다. 이후 미국에서 차를 팔기 위해서는 이 기준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 메이커들이 P-R-N-D 구성으로 설계된 자동변속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보편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동차에서 운전자의 조작과 관련된 부분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자동변속기 뿐 아니라 수동변속기의 기어 위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클러치 등 페달 위치 같은 기본적인 조작요소들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배치와 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동차 대중화에 가장 큰 공을 세운 포드 모델 T도 전진용 액셀러레이터와 후진용 액셀러레이터가 따로 달려 있었다(주 – 설명처럼 전후진용 액셀러레이터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후진, 전진 저속과 고속 변속용 페달이 있었다. 즉 변속기 조절을 레버가 아닌 페달로 했다. 가속은 스티어링 컬럼 옆으로 뻗어나온 레버로 조절했다.). 페달 위치가 지금처럼 정해진 것도 20세기 초 서구의 군대에서 군인들에게 쉽고 빠르게 운전을 가르치기 위해 자동차 메이커로 하여금 페달 위치를 통일시키도록 요구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기계와 제품들이 그렇듯, 자동차 자체는 물론 자동차에 달려 있는 여러 장치들도 사람이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자동변속기는 처음부터 편리한 운전을 위해 개발된 것이지만 세월이 흐르며 안전성과 편의성이 더 커지는 쪽으로 발전한 것에서 자동차의 진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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