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GM대우 사내보 ‘고객사랑’에 실린 글입니다]

자동차 문화의 뿌리가 깊은 나라일수록 모터스포츠, 즉 자동차 경주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운데에서 유럽은 국제적인 규모의 모터스포츠가 일찍 자리 잡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전용 자동차 경주장에서 치러지는 자동차 경주의 최고봉이라 할 포뮬러 원(F1)과 함께 비포장도로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경주인 랠리의 인기가 가장 높은 지역도 유럽이다. 요즘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세계 랠리 선수권(WRC)도 유럽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저변을 넓힌 것이다.

랠리가 유럽인들의 인기를 끈 데에는 일반인들이 살 수 있는 승용차가 경주차로 쓰인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되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들어진 요즘 자동차 경주들과 달리, 과거의 자동차 경주는 평범한 승용차들이 경주차로 개조되어 출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차 판매에도 영향을 끼치곤 했다. ‘일요일에 우승하고, 월요일에 판매한다’는 이야기가 이런 모터스포츠의 인기를 반영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랠리가 한창 유럽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시절, 많은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이 랠리를 비롯한 모터스포츠에서 우승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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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란치아의 주력 랠리카였던 풀비아 HF ©FCA Italy S.p.A.

1960년대 이태리 자동차 메이커인 란치아 역시 여러 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명성을 얻었다. 특히 란치아의 대표적인 소형차 풀비아는 1960년대 후반 여러 랠리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면서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메이커 차들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점점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이에 란치아는 풀비아의 뒤를 이어 랠리 무대에서 란치아의 명성을 이어갈 새 모델이 절실해졌다.

때 마침 란치아 자동차 경주 팀을 이끌고 있던 세자레 피오리오(Cesare Fiorio)의 눈에 1970년 이태리의 디자인 회사 베르토네가 란치아를 위해 만든 콘셉트카인 스트라토스(Stratos)가 들어왔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쐐기형 차체를 갖춘 이 차는 스타일만으로도 강력한 성능을 짐작할 만큼 멋진 모습을 자랑했다. 게다가 주행성능을 최대한 고려한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경주차로 쓰기에도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라토스 콘셉트카는 란치아의 요청이나 도움 없이 베르토네가 독자적으로 디자인한 것이었지만, 피오리오는 이 차를 란치아의 차세대 경주차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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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토네가 디자인한 스트라토스 제로 콘셉트 카 ©Bertone Design S.r.l.

당시 랠리에 출전할 수 있는 차는 일반인들이 구입할 수 있도록 최소한 500대 이상 생산된 양산차로 한정되어 있었다. 평범한 승용차라면 적게는 몇 천 대에서 많게는 몇 십만 대 이상 생산되기 때문에 경주차로 인증을 받아 랠리에 출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피오리오는 강력한 경주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범한 승용차를 개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경주차 인증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산대수인 500대만 겨우 채우는 전용 경주차를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반적인 자동차 메이커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다행히 이태리는 특별한 차를 소량생산하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런 차를 만드는 것은 어렵기는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피오리오는 물론 란치아에게 있어 랠리에서 이길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이루어야 할 절대적인 목표였다. 이렇게 해서 란치아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깨고, 처음으로 랠리 전용 경주차를 만드는 어려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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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치아가 양산한 시판형 스트라토스 ©FCA Italy S.p.A.

일단 결정은 내려졌지만 대량생산 메이커인 란치아가 직접 이런 경주차를 만들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스트라토스 콘셉트카를 만들었던 베르토네의 소량생산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차의 디자인은 콘셉트카를 디자인했던 베르토네 수석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가 맡았는데, 그는 람보르기니 미우라를 비롯해 여러 멋진 스포츠카를 디자인한 천재적인 디자이너였다. 또한 차의 뼈대를 설계하는 데에는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이태리 최고의 스포츠카들을 설계했던 기술자들이 참여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엔진이었는데, 당시 란치아는 경주차에 얹을 만큼 강력한 엔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경영난을 겪고 있던 란치아가 피아트 그룹에게 인수된 것이 전화위복의 결과를 낳았다. 비슷한 시기에 피아트 그룹이 페라리의 경영권을 손에 넣었던 덕분에, 단종을 앞둔 페라리 스포츠카의 엔진을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란치아는 천재 디자이너가 빚어낸 미래적인 디자인과 람보르기니 출신 기술자가 설계한 뼈대, 페라리 스포츠카의 엔진을 모두 담은 파격적인 경주차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경주차의 이름은 콘셉트카와 같은 스트라토스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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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C에 출전한 스트라토스 랠리카는 알리탈리아 항공사 리버리가 돋보였다 ©FCA Italy S.p.A.

처음부터 경주차로 설계된만큼 스트라토스의 실내는 승용차라기보다 비행기에 가까웠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차의 특성을 고려해 앞 유리는 둥글고 넓게 만든 반면 뒤쪽은 거의 보이지 않게 만들어졌고, 빠르게 코너를 달리기 위해 차체가 비정상적으로 넓고 짧아져 실내공간은 두 명이 겨우 탈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엔진이 좌석 바로 뒤에 놓여 있어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엄청난 열기와 소음이 운전자를 괴롭혔다. 이처럼 실용적인 면은 전혀 찾을 수 없는 차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구입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란치아와 개인 자격으로 경주에 출전하기 위한 경주팀이 경주차로 쓰기 위해 쓴 40여 대의 차를 빼면, 나머지 차들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사실상 손해를 무릅쓰고 만든 차였던 것이다.

그러나 스트라토스는 원래 목적인 랠리 경주에서 빛을 발했다. 1974년 공식적으로 경주차 인증을 받기 이전부터 몇몇 경주에 출전해 우승하기 시작한 스트라토스는 이내 세계 랠리 선수권 경주에서 줄줄이 우승컵을 차지해 나갔다. 1974년을 시작으로 스트라토스는 랠리 무대를 평정해 1975년과 1976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계 랠리 선수권 챔피언의 영광을 란치아에게 안겨주었다. 스트라토스 덕분에 란치아는 랠리의 강자로 다시 한 번 우뚝 설 수 있었고, 스트라토스의 후광을 입어 란치아 차들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스트라토스에 자극을 받은 다른 메이커들은 란치아의 뒤를 이어 랠리 전용 경주차 개발에 앞 다투어 뛰어들었고, 세계 랠리의 흐름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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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카 이벤트에서 달리고 있는 스트라토스의 모습

이렇게 해서 자동차 경주의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스트라토스는 짧은 시간 사이에 자동차 경주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차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