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쓴 원고로, 어느 곳에 실린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가깝게는 지난 2006년 개봉한 디즈니 픽사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카즈'(Cars), 멀게는 1970년대 후반에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루팡 3세’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작고 귀여운 차의 이름은 무엇일까? 애니메이션과 자동차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의 정답을 쉽게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뤽 베송이 감독한 프랑스 영화 ‘그랑 블루’에서 장 르노가 타는 차로 등장하기도 했던 이 차의 이름은 피아트 500이다.

피아트 500은 1899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태리 피아트가 내놓았던 차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었던 모델로 손꼽힌다. 이 차는 본고장인 이태리뿐 아니라 다른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사랑받았다. 덕분에 독일의 폭스바겐 비틀, 프랑스의 시트로앵 2CV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거리를 장식하며 1960년대의 사회문화적 상징 역할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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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도 있듯, 피아트 500은 비슷한 시기의 여러 명차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상처 속에서 태어났다. 독일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태리는 전쟁이 끝난 뒤 전쟁 이전보다 훨씬 더 피폐한 경제상황을 겪어야 했다. 주요 산업시설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패전의 여파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 가운데 하나는 교통수단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이태리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였던 피아트는 서민들을 위한 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1950년대에 접어들도록 전쟁의 피해를 입은 피아트 공장은 정상화되지 못해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도 충분히 차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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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 없이 이태리 사람들은 스쿠터로 발길을 돌려, 스쿠터가 자동차를 대신하는 대중적인 탈것이 되었다. 스쿠터가 대중화된 당시의 이태리 모습은 오드리 헵번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스쿠터는 자동차에 비해 용도가 제한적이고 궂은 날씨에는 매우 불편했다. 게다가 안전성도 떨어져, 복잡한 교통상황에서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피아트 경영진은 스쿠터를 대신해 서민들이 탈 수 있는 작고 경제적인 소형차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단테 지아코사(Dante Giacosa)에게 설계를 지시했다.

지아코사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인기를 끌었던 1세대 500을 설계했던 사람으로, 자동차 설계는 물론 디자인에도 탁월한 재능을 가진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1세대 500은 작고 귀여운 생김새 덕분에 ‘토폴리노'(작은 생쥐)라는 별명을 얻으며 이태리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토폴리노의 인기를 되살리고픈 생각에, 피아트는 지아코사가 차의 설계를 끝내기도 전에 새차의 이름을 구형과 같은 500으로 정했다. 그러나 구형과 구별되도록 500의 앞에 ‘누오바'(Nuova)라는 이름을 더했다. 누오바는 ‘새로운’이라는 뜻의 이태리어로, 영어의 ‘New’에 해당되는 말이니 ‘신형 500’이라고 이름을 지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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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코사는 새차를 1세대 500과 비슷한 크기로 만들면서 훨씬 쓰임새가 뛰어나게 설계하고 싶었다. 그는 또한 “낭비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자”는 신조에 따라 불필요한 치장과 장식을 없앤 매우 간단한 차를 만들고자 했다. 때마침 유명세를 얻고 있던 폭스바겐 비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엔진을 뒷바퀴 뒤쪽에 얹고 차체 앞쪽에 연료탱크와 작은 짐공간을 배치해 크기에 비해 실내공간이 넓은 차를 만들었다.

차의 크기는 길이가 3m가 채 되지 않았고 높이와 너비는 1.3m 남짓 했지만, 실내는 어른 두 명이 타고 뒤쪽에 두 사람 몫의 짐을 싣기에 충분했다. 배기량 500cc도 되지 않는 작은 엔진은 최고출력이 겨우 13.5마력이었지만, 무게 500kg이 넘지 않는 작고 가벼운 차를 최고시속 85km까지 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연비는 22.2km/L로 스쿠터와 비교할 수 있을만큼 뛰어났다. 1957년 7월 4일에 첫선을 보인 피아트 500은 등장하자 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독일에서 폭스바겐 비틀이 국민차로 사랑받았다면, 피아트 500은 이태리의 국민차였다. 폭스바겐 비틀과 닮은 점이 많았지만, 생김새보다 견고함으로 인기를 얻은 비틀과 달리 피아트 500은 이태리차 특유의 디자인 감각이 돋보여 많은 유럽인들에게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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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한 차체는 장식 없이 둥근 헤드램프만 도드라진 앞모습이 귀여움을 더했다. 또한 뒷유리 대신 쓰인 투명 비닐까지 둘둘 말아놓을 수 있는 지붕 덕분에 서민들도 오픈카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도 인기를 더하는 원인이 되었다. 폭넓은 인기에 힘입어 피아트 500은 이태리 뿐 아니라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생산되었고, 설계자인 지아코사는 뛰어난 설계를 인정받아 1959년 산업 디자인 부문 ‘골든 컴파스'(Golden Compass) 상을 받았다.

500 덕분에 피아트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후복구가 마무리되지 않은 1950년에는 1년에 10만여 대밖에 생산할 수 없었지만, 500의 인기에 힘입어 1965년에는 1년에 100만 대가 넘는 차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500은 1960년대 초반 이태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였다. 1972년 후속 모델인 피아트 126이 나오기까지 18년 동안 389만3,294대의 피아트 500이 생산되었고,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태리와 유럽인들은 피아트 500과 더불어 새로운 자동차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처럼 많이 팔린 덕분에 지금까지도 유럽의 거리에서는 통통거리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달리는 피아트 500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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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 500은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장수한 차라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그 뒤에 나온 차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1972년에 나와 2000년까지 무려 28년동안 장수한 500의 후속 모델 피아트 126은 디자인만 각지게 바뀌었을 뿐, 기본 설계는 500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또한 뒷유리까지 함께 접히는 지붕은 1991년 일본 닛산이 내놓은 클래식한 분위기의 패션카 피가로에도 쓰였다. 피아트는 이런 500의 가치와 많은 유럽인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뜻에서, 지난해 새 누오바 500을 내놓았다. 새 누오바 500은 한층 크고 고급스러운 차로 태어났지만, 옛 500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아 많은 이들을 향수에 젖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