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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를 통해 일본의 여배우 스즈키 호나미(鈴木保奈美, 1966년생) 씨가 10여 년의 공백을 깨고 연예계에 복귀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일본 드라마 매니아는 아니어도 몇몇 일본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고, 그 가운데 유난히 깊게 기억에 남아 있는 드라마인 ‘도쿄 러브 스토리'(東京ラブストーリー, 1991년 후지 TV 방영)에서 주연을 맡은 것이 바로 스즈키 호나미 씨였다.

‘도쿄 러브 스토리’는 일본 문화에 관심있는 지금의 30대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당대 일본에서 가장 인기 높은 드라마 중 하나였고, 여러 일본어 학원에서 일본어 회화 수업의 단골 부교재로 쓰일만큼 인기가 높아 국내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2004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함께 케이블 TV인 MBC 드라마넷을 통해서도 방영되었는데, 필자는 본방때에는 보지 못하고 재방때 처음 이 드라마를 접하면서 스즈키 호나미 씨를 알게 되었다.

739057935_980cf54f_honami-tls스즈키 호나미 씨는 활달하면서 적극적이고, 그러면서도 많은 것을 포용하는 드라마 속 캐릭터(아카나 리카, 赤名リカ)와 건조한 듯 신선한 외모 모두 필자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져 특히 기억에 남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98년 두 번째 결혼 이후 연예계를 떠나 육아에 전념했다가 세 딸이 모두 학교에 들어가면서 여유가 생긴 것이 컴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녀의 컴백은 은퇴 이후 뒤늦게 팬이 된 사람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고 내가 그녀의 팬이 된 계기를 마련한 드라마 ‘도쿄 러브 스토리’를 다시 찾아 보는 것이었다. 어느덧 40대로 접어든 그녀의 20대 초반 풋풋한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지만, MBC 드라마넷에서 방송했을 때 11편 전편을 모두 다 보지 못한 것도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워낙 오래 전 드라마이기 때문인지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얼마간 검색 끝에 전편이 모두 있는 사이트를 찾아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다시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야 무척 가슴 벅찬 경험이지만 자동차와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사이트를 찾은 분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일 수도 있겠다 싶어 이런 저런 얘기는 여기서 그만.

이 드라마가 촬영된 것은 1990년이다. 우리나라야 88 올림픽이 끝나고 모터리제이션이 본격화되기 시작할 무렵이지만, 일본은 거품경기가 절정에 이르러 여러 자동차 메이커들이 다양한 장르의 차들을 쏟아내면서 최고의 호경기를 누리던 시절이다. 처음 이 드라마를 볼 때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야기 전개의 한 축이 되는 인물인 미카미 겐이치(三上健一, 에구치 요스케 분)가 모는 차로 토요타 수프라가 등장한다.

한동안 토요타의 간판 스포츠카로 활약한 수프라가 국내에 잘 알려진 것은 미국 영화 ‘분노의 질주'(The Fast and The Furious, 2001년)를 통해서였는데, ‘분노의 질주’에 나온 4세대 모델이 10여년 간 롱런한 덕분에 드라마에 나온 3세대 모델은 무척 오래 전 모델처럼 느껴진다. 사실 2세대 모델까지 수프라는 셀리카의 고성능 가지치기 모델로 ‘셀리카 XX 수프라’라는 이름으로 불려, 실질적인 독립 모델로서의 수프라는 3세대 모델이 처음이다.

1986년 2월부터 일본 판매가 시작된 3세대 수프라(A70형)는 드라마 촬영 당시에도 따끈따끈한 새 모델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드라마 촬영 때 스폰서였던 토요타가 촬영 직전에 추가된 2.5L 트윈터보 280마력 모델의 홍보 차원에서 수프라를 제공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재미있는 것은 인트로 부분에는 빨간색 모델이 나오지만, 드라마 내내 미카미의 차로 가끔씩 화면에 비추이는 차는 연하늘색이라는 점이다.

1989-Toyota_Supra_Turbo-01

성능만큼 스타일도 중요시되는 GT카의 성격을 갖고 있던 수프라는 극중에서 한 여자를 사랑하지만 넘치는 바람기를 잠재우지 못해 갈등하는 미카미의 캐릭터와 은근히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극중에서는 활용되는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탈착식 T톱을 갖추고 있는 것도 멋을 중요시한 설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도시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도 드라마가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는 만큼 교통수단의 등장은 거의 배제되어 있어서(주인공이 사는 동네의 야마노테(山手)선 전철이나 마지막회에 나오는 전철이 고작), 눈에 뜨일 만큼 부각되는 것은 미카미의 수프라와 함께 주인공 리카와 나가오 칸지(永尾完治, 오다 유지 분)가 근무하는 하트 스포츠의 업무용차인 토요타 라이트에이스(Liteace) 정도다. 이 정도면 토요타가 스폰서링한 티는 충분히 난 듯하다.

일본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트렌디 드라마’ 열풍을 불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고 하는 드라마인만큼 당시의 시대 분위기가 잘 묻어나 있는 대신, 등장인물들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지금의 시선으로는 영 촌스러운 모습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촌스러운 화면을 만드는 요소 중에는 지금 와서 촌스럽게 느껴지는 토요타 수프라도 한몫 한다.

하지만 오히려 ‘도쿄 러브 스토리’에서의 자동차 PPL은 당대의 드라마로서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 PPL은 드라마 전개나 인물의 성격과는 전혀 따로 노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어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지기 일쑤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