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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카 한국판 2009년 4월호에 쓴 글입니다 ]

대학 졸업과 함께 닥친 IMF 경제위기로 사회생활을 취업난과 함께 시작했던 이른바 IMF 세대에 대해 들어본 독자들이 적지 않으리라. 1993년 대학에 입학해 1997년 졸업한 필자 역시 IMF 세대의 한 사람으로 경제위기의 파급효과를 뼈저리게 체험했다. 졸업하면 자동차 전문기자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살았지만 쉽게 그 꿈이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그래도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어렵사리 취업한 회사는 경영난으로 급여를 제대로 주지 못했다. 돈을 모아 최소한 작은 중고차라도 사겠다는 소박한 희망조차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닥친 현실이었다.

조금이나마 경제가 회복세로 들어선 후,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필자 명의의 첫 차를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9년 가을이다. 그 후로 2년 정도는 별 볼일 없는 경제여건을 생각하면 과분할 만큼 차와 더불어 재미있게 생활할 수 있었다.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지 정해놓은 목적지 없이 떠날 수 있었고, 뛰어난 연비와 반값인 고속도로 통행료 덕분에 부담 없이 기분전환을 즐길 수 있었다. 늘상 꿈꿔온 멋지고 잘 달리는 차와는 거리가 먼, 작고 보잘 것 없는 경차였지만 나만의 방식대로 즐길 수 있는 내 차가 생겼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이런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자동차 마니아가 되려면 자신의 차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줄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차는 끊임없이 돈을 필요로 하는 물건이다. 연료비, 각종 세금, 유지보수비 등등 각종 비용은 폐차될 때까지 지출되기 마련. 특히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연료비다. 세워놓고 보아도 좋을 정도의 예술적 가치가 없다면 달리지 않는 차는 의미가 없다. 차를 좋아하는 이에게 있어 차가 의미를 잃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별 볼 일 없는 경차가 자타가 공인하는 자동차 마니아인 필자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차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차를 즐기는 관점을 바꿔 별 볼 일 없는 차를 의미 있는 차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의 어려움을 딛고 이제는 가정도 꾸리고 조금은 안정적인 생활이 시작되나보다 싶을 무렵, 이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된 새로운 경제위기가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도 아무런 경제적 지식이나 밑바탕 없이 어려움을 당해야 했던 그때와 달리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갈 수는 있게 되었다. 덕분에 ‘88만원 세대’라는 우울한 별칭을 얻은 요즘의 사회 초년병들을 돌아볼 수도 있다. 그들 가운데에도 자동차 사진과 동영상에 군침을 흘리며 자동차에 대한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여 년 전의 필자처럼 자동차와 관련된 꿈이 갑작스러운 경제위기에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주 드문 몇몇 사람들을 빼면, 지금의 경제위기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겪는 어려움이다. 나와 남이 다를 바 없는 우울한 형편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젊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을 때 재미있게 타고 즐길 수 있는 차들이 있지만, 그런 차들은 나이가 들고 넉넉해지면 재미도, 즐길 수도 없다. 멋진 차, 잘 달리는 차가 아니라면 차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 차들도 경험해 보고 애정을 가진다면 나이 들어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동차를 대하고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동차 마니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어려운 형편에도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