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토카 한국판 200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얼마 전, 한동안 일 때문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집에서 성남 분당으로 출퇴근을 했다. 일하는 곳에 주차가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출퇴근 시간대에 차를 몰고 다니기에는 그 사이의 정체구간이 너무 길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주로 이용하게 된 것은 광역직행버스. 승용차로 다니려면 해 떠 있는 시간의 절반 정도는 정체에 허덕였겠지만, 최근 시행되고 있는 경부고속도로 평일 전일제 버스전용차로 제도 덕분(?)에 서울역에서 분당 서현역까지 30~4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같은 길을 다니면서 든 의문점 중의 하나는 ‘왜 하필 1차로를 버스전용차로로 만들었을까’하는 것이었다. 경부고속도로 한남대교에서 판교 IC에 이르는 구간에서 승용차가 가장 많이 막히는 곳은 한남대교에서 반포 IC 구간과 판교 IC 직전 구간이다. 필자가 느낀 이들 구간의 정체 원인은 버스였다. 부산방향의 예를 들어보자. 반포 IC 부근에서는 고속버스들이 가장 바깥쪽 차선에서 버스전용차로로 진입하기 위해, 판교 IC에서는 광역직행버스들이 버스전용차로에서 판교 IC로 진출하기 위해 승용차가 다니는 바깥쪽 차로를 가로지른다. 서울방향 역시 비슷한 곳에서 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당연히 승용차들은 속도를 줄이게 되고, 교통량이 많을수록 이 여파는 뒤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갈수록 길이 넓어지는 부산방향은 조금 낫지만, 반대로 길이 점점 좁아지는 서울방향은 퇴근시간에 문자 그대로 주차장이 되어버린다.
이런 문제는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관련 정책, 엄밀히 말하자면 급하게 만들어지고 급하게 처리되어 급하게 시행되는 ‘초특급’ 교통정책의 산물이다. 지금의 평일 전일제 버스전용차로 제도는 단순히 주말용으로 쓰이던 버스전용차로를 그대로 평일로 이어온 것뿐이다. 정부야 돈 적게 들이고 ‘대중교통 편의성을 높였다’며 대중교통 이용하라고 떠들면 그만이지만,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모르긴 해도 필자가 이야기한 경부속도로 수도권 구간의 비 대중교통 이용자들이 겪는 불편은 아마도 판교 신도시 입주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끔찍한 수준이 될 것이다. 비 대중교통 이용자도 늘겠지만,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는 버스들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근시안적이고 깊이 있는 고민 없이 만들어지는 이런 부류의 교통 및 자동차 관련 정책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 때문에 자동차 업계가 정부에 어려움을 호소하자, 정부는 신차판매에 도움을 주겠다고 이른바 ‘자동차산업 활성화방안’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정책 역시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 내용만 놓고 살펴보면, 등록한 지 9년 이상 된 차를 새 차로 바꿀 때에만 처음 구입해 등록할 때 세제혜택을 주게 되어 있는데, 세제상 중소형차보다 대형차에 혜택이 많이 돌아간다.
이런 논리라면 이번 방안은 소비자들의 큰 차 구입을 독려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차를 한 번 구입해 9년 이상 굴리는 사람들은 보편적 기준으로 보면 ‘짠돌이’다. 절실하게 새 차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거나 구매력이 높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또한 새 차를 사기 위해 그만큼 굴린 차를 처분해야 한다면, 9년이나 탄 차를 팔고 받은 돈은 새 차 살 때 별로 도움이 될 만한 금액은 아니다. 게다가 경제위기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루겠다는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지만 경차나 하이브리드 차 구매를 지원하는 내용은 없다.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조삼모사’ 수준에 불과하고, 세제상 혜택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새 차 판매가 늘어나면 세수도 차가 팔리는 만큼 늘어나게 되니 정부는 별로 손해 볼 일이 없다. 그리고 정부가 뭔가 했다는 생색은 낼 수 있겠지만, 소비흐름을 친환경적으로 돌려놓겠다는 정부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 정책을 만들 수 없나? 어떤 정책으로 누군가가 편리해지는 것은 좋지만, 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해 불편한 사람이 적지 않다면 그 정책의 가치는 결코 높게 평가할 수 없다. 불평등과 비합리가 누구에겐들 정당하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앞뒤도 맞지 않는 정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정부는 자신할 것이다. 어떤 국민도 이런 자동차와 교통에 관련된 불편과 불이익의 근원인 국가를 상대로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촛불시위 강경대응, 미네르바 구속, PD수첩 제작진 조사 등 정부(혹은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에 대해 초반부터 기선을 잘 잡아온 이 정부는 그런 일이 벌어질 걱정은 아예 하지도 않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