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200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유행이 지나 한물간 화두라는 느낌이 들지만, 한동안 우리 주변을 크게 울렸던 화두는 ‘소통’이었다. 굳이 사전적 정의를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소통이 무엇인지 개념적으로 잘 알고 있다. 말이든, 마음이든, 함께 부대끼는 것이든 서로 무언가를 주고 받으며 통하는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흔히 쓰는 영어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표현과 같은 것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도 소통은 중요하지만,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아닌 사물과의 소통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사람이 만들어낸 사물, 어떤 행위를 하면 그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사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음료수 자동판매기의 예를 들어보자. 동전 투입구에 동전을 넣고, 마시고 싶은 음료수의 버튼을 누르면 캔에 담긴 음료수가 나온다.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자판기와의 소통’이다. 그런데 자판기처럼 간단한 상대가 있는가 하면, 훨씬 더 복잡한 상대도 우리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여러분이 짐작하듯, 이제부터 이어지는 것은 자동차와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다.

차에 담기는 장비가 많아질수록, 소통은 복잡해진다. 운전자는 운전이라는 주된 기능을 계속 수행하면서 부수적인(관점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것들을 조작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친다. 이렇게 되면 운전자의 주의는 산만해지고, 사고로 이어질 확률은 높아진다. 복잡한 소통을 단순화시키는 것은 운전자에게 편리하기도 할 뿐 아니라 안전한 이동을 돕기 때문에, 차와 사람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접점인 인터페이스(interface)는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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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좋은 인터페이스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자동차 메이커 누구나 하는 고민의 주제다. 그리고 지금 나오는 차들에서 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인터페이스 역시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 가운데 과거의 틀을 뛰어넘는 통합 인터페이스의 사례로 흔히 일컬어지는 것이 메르세데스 벤츠의 COMAND 시스템과 BMW의 i드라이브, 그리고 아우디의 MMI이다. 요즘에는 각 브랜드의 차급에 관계 없이 같은 이름의 시스템들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가장 복잡한 소통이 필요한 최고급 모델에 쓰인 시스템들이야말로 그들이 고민 해결을 위해 극한의 노력을 쏟아 부어 나온 결과물이다.

필자는 현재 나와있는 시스템들, S클래스의 COMAND, 7시리즈의 i드라이브, A8의 MMI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들의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은 인터페이스이고,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방식을 통해 메이커가 갖고 있는 차와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한 개념이나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들 시스템의 개념이나 실체가 드러난 지 짧게는 8년, 길게는 10년 정도 흘렀고, 그 기간 동안 있었던 변화가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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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용 통합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것은 2002년 데뷔한 BMW E65 7시리즈의 i드라이브다. 하지만 통합 인터페이스의 선발주자는 W220 S클래스를 통해 선보인 벤츠의 COMAND이고, 세 시스템 중에 가장 늦게 등장한 것이 D3 A8에서 첫선을 보인 아우디 MMI다. 등장시기로 보면 COMAND-i드라이브-MMI 순이지만, i드라이브가 가장 많은 업그레이드를 거쳤고 COMAND도 S클래스가 W221로 바뀌면서 대대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지만 조만간 새 모델이 나올 A8의 MMI는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먼저 항상 통합 인터페이스와 관련된 비교와 논란의 중심이었던 i드라이브를 살펴보자. 등장하자마자 각종 언론의 혹평을 받은 i드라이브이지만, i드라이브가 처음 쓰인 E65 7시리즈가 역대 7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것을 보면 소비자들은 이 시스템을 그리 나쁘게 보지는 않는 듯하다. 물론 쇼퍼 드리븐 카의 성격이 있어 운전사에게 조작의 대부분을 맡기는 뒷좌석 오너의 입장에서는 별로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의 심리상 잘못된 구매를 하더라도 많은 비용을 치렀을 때에는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곤 한다. 하지만 직접 조작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얘기가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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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1세대와 1.5세대 i드라이브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운전에 집중하기 힘든 장치였다. 장치의 단순화에는 성공했지만 조작은 그렇지 못했고, 시각적인 고려가 섬세하지 못했다. 가장 불만스러웠던 것은 불친절함이었다. 원형 콘트롤러 하나에 대형 컬러 디스플레이만 놓고 공기조절장치를 제외한 모든 장비들을 알아서 조절하라고 던져놓았다. 사실 화면을 보면서 콘트롤러를 조작하면 별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화면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내가 지금 어떤 메뉴의 어떤 항목을 조작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니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조작방식에 익숙해지더라도 뭔가 한 가지 기능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를 살펴보며 콘트롤러를 돌리고, 밀고, 당기고, 누르는 조작을 반복하는 과정에 계속 신경을 써야 했다. 게다가 금속 재질 콘트롤러가 주는 차가운 느낌과 회전동작에서 더 이상 넘어갈 항목이 없을 때 콘트롤러에 전해지는 강한 반발력도 거부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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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든 언론이든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BMW는 1.5세대로의 업그레이드에서 i드라이브에 마법의 버튼을 하나 더했다. ‘메뉴(MENU)’라고 쓰여진 그 버튼 하나로 적지 않은 번거로움이 해결되었다. 몇 단계 하위 메뉴로 내려갔다가 다시 주 메뉴로 복귀하기 위해 하위 메뉴로 들어갔던 과정을 다시 반복해 빠져 나왔던 것을 ‘메뉴’ 버튼으로 빠르게 주 메뉴로 복귀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i드라이브 조작에 필요한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한계는 있었다. 주 메뉴에서 가지를 치는 하위 메뉴는 여전히 복잡했기 때문이다.

i드라이브의 더 큰 문제는 여러 기능이 표시되는 디스플레이의 꾸밈새였다. 처음 i드라이브가 쓰인 7시리즈에 올라 대시보드가 눈 앞에 펼쳐졌을 때, 스티어링 휠 뒤와 대시보드 한 가운데에 나란히 두 개의 계기판이 놓여 있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계기판과 디스플레이 위의 햇빛을 가려주는 부분의 모양이 무척 닮았고 차지하는 영역의 크기도 비슷해, 마치 디스플레이도 계기판과 같은 비중으로 신경 써야 하는 중요한 장비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운전 중에도 디스플레이 쪽으로 자꾸 눈길이 쏠렸다.

최근 출시된 F01 7시리즈에는 이전 버전들에 비해 친절한 인터페이스와 콘트롤러, 디스플레이 배치를 겸비한 2세대 i드라이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형 콘트롤러의 화살표시나 주변에 주요 메뉴 버튼들이 추가된 것은 처음 대하는 운전자들이 장치에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훨씬 줄일 것이다. 다만 이런 방식의 접근은 이미 MMI나 2세대 COMAND 시스템에서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 것을 볼 수 있다. i드라이브는 혁신적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벤츠와 아우디의 시스템에서 배울 것이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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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COMAND와 MMI의 어떤 점을 i드라이브보다 ‘좋은’ 인터페이스 요소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필자는 COMAND의 디스플레이 화면과 MMI의 콘트롤러 구성을 장점으로 꼽고 싶다. 솔직히 COMAND의 콘트롤러 구성은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메뉴 버튼 몇 개가 더해졌을 뿐, 그나마도 별로 합리적인 구성이 아니어서 i드라이브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게다가 원형 콘트롤러의 디자인과 조작감은 벤츠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 가볍고 뜬금없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화면은 컬러 디스플레이의 장점을 잘 활용해 이해력이 높다. 지금 하고 있는 조작이 어느 단계의 것인지, 어떤 부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가 분명히 표시된다. 한 눈으로 힐끔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그래픽과 편안한 색 구성도 지나치게 시선을 빼앗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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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아우디 MMI의 디스플레이는 아우디 고유의 색은 잘 살렸지만 ‘문자 표시장치’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콘트롤러의 조작과 연결시켜 보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해 놓았다. 무엇보다 좋게 평가할 수 있는 콘트롤러 구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적인 모습이다. 간단히 말해 단순화와 직관성을 모두 고려해 합리적으로 타협한 구성이다. 핵심 메뉴들을 일일이 모두 버튼화해 늘어놓고 로터리식 오디오 볼륨 조절 노브까지 달아 놓았다. 어수선해 보이기는 하지만 필요한 기능에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의 배치도 A8의 것은 7시리즈나 S클래스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쓰지 않을 때는 숨겨놓을 수도 있고, 펼친 상태에서는 돌출되어 있으면서도 계기판의 존재를 압도하지 않는다. 아래 급 다른 아우디 차의 MMI는 계기판과 이어진 배치로 되어 있지만 시선을 빼앗지 않는 배치라는 흐름은 이어받고 있다.

Audi A8 L W12 quattro/Standaufnahme

그렇다면 각각의 장점만 골라낸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다면 가장 뛰어난 인터페이스가 나온다고 말할 수 있을까?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운전 외적인 장비들의 조작은 직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들 모두 장비의 직관성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장비들 가운데 자신들이 개발한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없다. 문제는 그 핵심을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냈느냐 하는 것이다.

‘직관적’이라는 말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은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또는 그런 것’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같은 뜻의 영어 단어 ‘intuitive’에 대해서 Random House Webster’s 영영사전은 ‘어떠한 추론 과정에서도 독립된 진실, 사실 등의 직접적인 이해. 즉각적인 판단.(direct perception of truth, fact, etc., independent of any reasoning process. Immediate apprehension’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생각 없이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무엇이 바로 직관적인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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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장 직관적인 장비는 눈 감고도 쓸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운전하면서 한눈팔지 않아도 대부분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i드라이브의 시행착오는 이런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쓰는 이들의 입장을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소통의 중심을 사람이 아닌 차에 두고 시스템을 개발해 생긴 것이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는 만드는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계를 만들어 놓고 사람이 맞추길 바라지, 사람에 맞춰 기계를 만드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얘기다.

일반적인 소비자들은 상식이나 습관을 벗어나지 않는 편리한 변화를 원한다. 즉,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개발의 열쇠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사용자의 습관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정리해 다듬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쓰는 기계를 만든다면, 쓰는 사람이 편리하도록 만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통합 인터페이스를 통해 좀 더 편리하고 즐겁게 자동차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