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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터매거진 2011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4륜구동 오프로더의 대명사인 짚의 탄생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육군의 소형 정찰용 차 발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유럽 전장에서 전쟁이 격화되고 있던 1940년에 미국 육군은 미국 내의 135개 자동차 회사에 새로운 소형 정찰용 차를 제안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요구조건이 무척 까다로웠고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입찰에 참여한 것은 윌리스-오버랜드(Willys-Overland)와 아메리칸 밴텀(American Bantam) 뿐이었다. 게다가 두 회사 모두 육군의 요구조건을 100%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미국 육군은 조건을 바꾸어, 윌리스-오버랜드와 아메리칸 밴텀, 그리고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포드로부터 각각 70대 씩 시제차를 받아 평가하기로 결정했다. 철저한 시험과 평가를 마친 후에 최종적으로 육군의 제식 정찰용 차로 확정된 것은 윌리스-오버랜드의 모델이었다. 전장에서의 급박한 요구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차를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육군은 윌리스-오버랜드의 설계를 바탕으로 만든 차를 포드도 함께 생산하도록 했다.

이 차들은 세부적인 개선을 거쳐 윌리스-오버랜드 MB와 포드 GPW라는 모델명으로 1941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군인은 물론 민간인도 이 차를 정식 모델명이 아닌 짚이라는 이름으로 즐겨 불렀다. 짚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범용차라는 뜻의 General Purpose에서 유래한 GP를 읽히는 대로 표현했다는 것과 인기 만화 ‘뽀빠이(Popeye)’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유진 더 지프(Eugene the Jeep)에서 유래했다는 의견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군인들에게 애칭처럼 불리던 짚이라는 이름은 이후 미군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미군, 나아가 미국의 상징처럼 각인되기 시작했다.

짚이 널리 쓰이게 된 데에는 분해조립이 편리한 단순한 구조로 빠르게 많이 생산할 수 있었고, 선박이나 수송기를 통해 빠르게 전장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원래 목적인 정찰용으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전장의 상황에 따라 구급차, 작전지휘차, 소방차 등 다양한 용도로 개조되어 활용되었고, 가벼운 차체와 4륜구동 시스템에 힘입어 거친 지형을 자유롭게 주파하면서 큰 활약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윌리스-오버랜드와 포드가 생산한 짚은 무려 65만여 대로, 비슷한 개념으로 독일군에 의해 쓰인 퀴벨바겐 생산대수의 10배가 넘었다.

짚의 뛰어난 능력을 새삼 확인한 윌리스는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민수 시장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민수용 모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5년에 군용 MB 모델을 부분적으로 개선한 첫 민수용 모델인 CJ가 선보였고, 상업용으로 활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스테이션 왜건과 배달용 모델도 출시했다. 도로포장율이 높지 않은 미국에서 험로주행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짚은 농장과 건설현장 등에서 애용되며 고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고, 점차 파생 모델들이 등장하며 고객층도 함께 넓어졌다.

그러나 짚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과 달리, 브랜드 소유자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짚을 탄생시킨 윌리스는 1953년에 6천만 달러에 카이저로 매각되었다. 소형차를 주로 생산하던 카이저는 짚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고자 했고,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기 위해 철저한 연구와 개발을 시작해 다양한 모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픽업 모델과 함께 대형 SUV인 왜거니어를 출시해 폭넓은 소비자들을 끌어안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것도 이 때였다. 특히 카이저는 수출과 해외 생산에 많은 공을 들여, 대표차종인 CJ 시리즈는 30여 나라에서 생산되고 150여 나라에 판매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1970년에 아메리칸 모터스(AMC)가 카이저의 짚 사업부를 인수하며 다시 주인이 바뀌게 된다. AMC는 이미 갖고 있던 승용차 사업부와 짚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승용차의 부품을 공유하고 생산효율을 높였고, 늘어나는 민수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민수용 모델과 군용 모델 생산을 분리했다. 특히 미국인들의 레저활동이 늘어나면서 짚의 인기도 더욱 커져갔는데, 이는 오히려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새롭게 SUV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꼴이 되었다.

석유파동의 여파로 AMC가 위기에 빠지자 1979년에는 르노가 AMC에 투자하면서 짚은 프랑스 자본의 도움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르노의 참여로 AMC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고,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짚이었다. 이때 태어난 것이 승용 개념의 혁신적인 설계로 태어난 체로키였다. 짚 고유의 견고함과 탁월한 험로주행능력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설계와 편의성을 갖춘 체로키는 큰 인기를 얻었다. 뒤이어 오랫동안 짚의 대표적인 모델로 자리잡았던 CJ 시리즈도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한층 현대화된 랭글러(YJ)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경영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랭글러 데뷔 1년 뒤인 1987년에 AMC는 크라이슬러에 의해 인수된다. 이후 짚은 다임러크라이슬러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크라이슬러의 핵심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짚은 다른 나라의 4륜구동차 개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은 연합국의 전력증강을 위해 많은 전쟁물자를 공여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윌리스 MB와 포드 GPW도 포함되어 있었다. 연합국 가운데에서는 짚의 설계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4륜구동차를 개발한 곳도 있었는데, 영국의 랜드로버와 구 소련의 GAZ-67이 대표적인 예다. 두 차종은 이후로 진화를 거듭하며 각국 주력 군용차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여러 나라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면허생산하거나 모방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전쟁 중 미군에 군용차를 납품한 일본 메이커들은 짚을 모방 생산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도요타는 랜드크루저, 닛산은 패트롤 등의 독자적인 모델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미쓰비시는 유일하게 정식 면허를 얻어 1953년부터 CJ-3B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터득한 기술은 미쓰비시의 대표적 SUV인 파제로 개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인도의 마힌드라, 스페인 EBRO 등은 지금까지도 초기형 CJ의 변형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1984년부터 베이징 자동차와의 합작회사를 통해 체로키가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해외 자동차 메이커가 중국에 진출한 첫 사례였다.

짚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1969년에 신진자동차가 AMC와 계약을 맺고 CJ-5를 신진 지프라는 이름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8년에 신진이 미국의 적성국가인 리비아에 수출한 것이 문제가 되어 짚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신진의 짚 부문이 거화에 인수된 후인 1983년부터는 코란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생산되기 시작했고, 이후 동아자동차와 쌍용자동차로 생산주체가 바뀌면서 1996년까지 오리지널 짚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생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