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카 2011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자동차 메이커가 플랫폼 하나를 잘 만들어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다. 메이커 입장에서는 적은 돈으로 다양한 변형 모델을 만들 수 있어 좋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다. 푸조 RCZ는 잘 만든 플랫폼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창조해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체는 해치백인 308, MPV인 3008과 거의 같은 푸조·시트로엥의 플랫폼 2를 활용하고 있지만, 그들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신선한 발상의 즐거운 차가 나왔다.

언뜻 디자인 면에서는 푸조 308과 1세대 아우디 TT의 잡종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조형미에 집착한 아우디 TT와 달리, RCZ는 프랑스식 재치와 실용주의를 온 몸으로 표현한다. 이태리 카로체리아 자가토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던 더블 버블 루프를 절묘하게 변형한 지붕이나, 곡선과 직선이 오묘하게 만나는 측면 유리창 하단의 선은 생각이 굳은 사람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앞모습에서는 바탕이 된 308의 이미지가 뚜렷하지만, 308과 공유하는 보디 패널은 사방을 둘러봐도 찾을 수 없다. 바퀴 주변을 감싸는 부분까지 한꺼번에 열리는 보닛은 분명히 308과 차별화되고, 고정식 뒷 유리 뒤로 뚜껑만 열리는 형태의 트렁크 리드는 개념에 있어 아우디 TT와의 연관성을 완전히 부인하는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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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강조한 겉모습에 비하면 대시보드를 중심으로 한 실내는 308과 닮은 구석이 많아 보인다. 대신 대시보드 거의 전체를 스티칭이 돋보이는 가죽으로 덮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했고, 세 개의 원이 나란히 놓인 중앙의 공기배출구는 가운데 것을 아날로그 시계로 바꾸어 놓았다. 도어 트림과 헤드레스트 일체형 세미 버킷 시트, 그리고 림이 굵직한 D컷 스티어링 휠은 RCZ에서만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버킷 시트는 207 RC의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쿠션이 더 탄탄하고 지지력도 뛰어나다. 허리 받침만 수동으로 조절하는 전동 조절식이어서 편리하고, 적당히 낮게 자리 잡고 있어 더블 버블 루프와 더불어 키 큰 사람에게도 머리 위 여유 공간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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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푸조 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라스 루프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 컵홀더만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길고 넓은 도어 포켓, 깊은 2단 글로브 박스를 비롯해 수납공간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뒷좌석은 어린이도 앉기 힘든 크기여서 보조 짐 공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필요할 때 등받이를 앞으로 접어 네모반듯해 쓰기 편리한 트렁크와 이어지게 만들면 그만이다. 트렁크 바닥 아래에는 스페어 타이어 자리를 펑크 수리 키트가 차지하고 있다. 좌우 개별 온도조절이 가능한 공기조절장치와 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오디오 등 편의장비도 아쉽지 않게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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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L 터보 엔진이 내는 156마력의 최고출력이 대단하지 않게 느껴진 것은 차를 몰아보기 전의 선입견일 뿐이었다. 낮은 회전수부터 꾸준히 토크를 뿜어내는 엔진은 속도계 바늘을 매끄럽게 오른쪽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0→시속 100km 가속이 9초에 약간 못 미치지만 고른 가속감이 운전을 즐겁게 한다. 6단 자동변속기는 전통적인 방식의 것으로는 다운시프트가 빠른 편이다. 스티어링 휠에 변속 패들이 없다는 것은 이 차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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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들링은 푸조 특유의 경쾌함이 살아있으면서 부드러움과 듬직함이 곁들여져 있다. 안정적인 움직임이 믿음직할뿐 아니라 스포티한 성격의 차 치곤 승차감도 편안해서, 도심 뒷골목의 거친 노면을 달릴 때에도 뒷골이 당길 만큼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고속도로에서는 물론이고, 시내주행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앞바퀴굴림 차로 뒤가 가벼운 편이지만 뒷바퀴가 튀는 느낌이 적고 거친 운전에도 움직임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확실한 제동감각도 매력적이다. 더 높은 출력도 감당할 수 있을만한 세팅이다. 배기음은 충분히 스포티하지만 묵직하게 조율했어도 4기통 엔진의 가벼움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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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활하고 상큼한 스타일만큼 발랄한 달리기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편하고 재미있게 운전을 즐길 수 있는 차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물론 가속의 상쾌함을 느끼고 싶다면 올해 안에 수입될 200마력 버전(다이내믹 모델)을 선택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운전의 즐거움이 꼭 뛰어난 가속력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스포티한 주행감각이 어떤 것인지 느끼기에는 아쉬울 것이 없다. 편안함과 경쾌함, 그리고 실용성에 있어서는 오히려 훨씬 높은 가격이 붙은 아우디 TT보다 나은 면도 있다. 그렇다고 값이 아주 싸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RCZ의 가장 아쉬운 점이다.

New Tech 

다운포스 메이커

고속에서 불안정해지는 뒷바퀴 접지력이 1세대 아우디 TT를 구설수에 오르게 했던 것을 푸조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차체 뒤쪽 형태가 비슷한 RCZ는 처음부터 조절식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가 달려 나온다. 트렁크 리드에 매끄럽게 숨어있는 이 스포일러는 차의 속도에 따라 2단계로 펼쳐진다. 1단계로 시속 85km를 넘으면 19도 각도로 펼쳐지고, 시속 55km 이하가 되면 자동으로 접힌다. 1단계로 펼쳐진 스포일러는 다시 시속 155km가 넘으면 34도까지 펼쳐졌다가 시속 145km 이하가 되면 1단계 위치로 돌아온다. 다만 운전자가 센터 콘솔의 스포일러 작동 스위치를 누르면 2단계 위치로 고정된다.

평점: 7.5 / 10

즐거운 스타일과 편안한 달리기가 어우러진 멋진 니치 카. 남들의 시선을 즐기기보다 부담 없이 운전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자질에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 장점: 개성이 뚜렷한 디자인, 경쾌함과 편안함이 조화를 이룬 주행감각, 충분한 수납공간
  • 단점: 개성이 부족한 실내, 다소 높게 느껴지는 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