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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터 트렌드 한국판 2011년 5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자동차 기업의 국적은 생산지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의 글로벌화는 상황에 따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경영자에게도 메이커나 브랜드의 현재와 미래를 맡기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예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다

로터스: 영국->미국->룩셈부르크->말레이시아

1952년 설립된 로터스 엔지니어링에 뿌리를 둔 로터스 카즈는 1959년에 만들어졌다. 창업자 콜린 채프먼 사후 어려움을 겪던 로터스는 1986년에 GM이 매입했다가 1993년에 매각했다. 새 주인은 룩셈부르크에 근거지를 둔 모 지주회사였지만, 이 회사의 주인은 당시 부가티도 소유하고 있던 이태리 출신의 로마노 아르티올리였다. 그러나 무리한 투자로 파산위기에 처한 그는 1996년 말레이시아의 자동차회사 프로톤에 로터스를 다시 매각했다.

사브: 스웨덴->미국->네덜란드(러시아)

1937년 항공기 회사에서 출발한 사브는 1989년 자동차 사업부문이 독립하면서 GM이 50% 지분을 갖게 되었다. GM은 10년 후인 2000년에 전체 지분을 매입해 자회사화 했지만 끝까지 사브라는 브랜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모델전략 실패와 신제품 개발부진, 그리고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직면한 사브는 2008년 말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2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2010년 러시아 자본의 네덜란드 회사인 스파이커 카즈에 매각되었다.

복스홀: 영국->미국

1857년에 설립되어 1903년부터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복스홀은 영국에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메이커다. 그러나 고성능 고급차가 호평을 얻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고급차에 치중하다가 시장 확보에 실패, 결국 1925년에 GM이 인수함으로써 대중차 메이커로 탈바꿈했다.

오펠: 독일->미국

1862년 설립되어 재봉틀 제작으로 명성을 얻은 오펠은 1899년부터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1914년에 독일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했고, 1920년대 초에 독일 메이커 처음으로 일관 생산공정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 대형 메이커에 눈독을 들인 것은 GM이었다. 1929년 오펠의 지분 80%를 매입한 GM은 1931년에 남은 지분을 모두 확보해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다. 

볼보: 스웨덴->미국->중국

현존하는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 된 승용차 메이커인 볼보는 1927년에 베어링 메이커인 SKF의 자회사로 시작했다. 1935년에 스웨덴 주식거래소에 상장되면서 독립한 볼보는 이후  승용차 부문이 1999년 포드에 매각될 때까지 볼보 그룹 소속이었다. 볼보 그룹이 승용차 부문을 매각한 이유는 상용차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은 포드는 2010년 중국 지리에 볼보를 넘겼다.

랜드로버: 영국->독일->미국->인도

1948년 로버의 SUV 모델 이름으로 시작된 랜드로버는 영국 자동차 산업의 부침에 따라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명맥을 이어갔다. 대중차와 SUV 시장 진출을 꿈꾸던 BMW가 랜드로버를 만들던 로버 그룹을 인수한 것은 1994년. 그러나 로버 그룹이 돈 퍼먹는 괴물임을 뒤늦게 깨달은 BMW는 2000년에 미니만 남기고 나머지를 시장에 내던졌는데, 이때 랜드로버를 넙죽 집어 삼킨 것은 포드였다. 이후 2008년 랜드로버는 재규어와 함께 인도 타타로 적을 옮기고 포드를 위기에서 구출해 냈다.

재규어: 영국->미국->인도

모터사이클 사이드카 제작으로 1922년에 역사가 시작된 재규어는 1989년에 포드 가족이 되었다. 2000년에 포드가 인수한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들과 함께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의 중핵 브랜드로 부유한 소비자들을 맡아 왔던 재규어는 포드가 경영위기를 맞은 2008년에 랜드로버와 함께 인도 타타의 손에 넘어 갔다.

롤스로이스/벤틀리: 영국->독일

영국의 대표적인 고성능 고급차 메이커 중 하나로 꼽히던 벤틀리는 세계 경제공황 이후 경쟁관계에 있던 롤스로이스에 흡수되어 오랫동안 롤스로이스의 스포티 버전 역할에 머물렀다. 1998년 롤스로이스가 시장에 나오며 두 브랜드를 둘러싸고 BMW와 폭스바겐이 상표권과 관련해 애매한 분쟁이 일어나, 5년여 동안의 실랑이 끝에 결국 롤스로이스는 BMW의 손에, 벤틀리는 폭스바겐의 손에 넘어갔다.

부가티: 이태리->독일

근거지가 프랑스(프랑스-독일 접경지역인 알사스)이기는 해도, 창업자 에토레 부가티가 이태리 출신이었기 때문에 부가티는 이태리 브랜드로 취급된다. 빼어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을 겸비한 ‘원조 수퍼카’ 메이커인 부가티는 제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붕괴되었지만, 1987년 로마노 아르티올리에 의해 부활했다가 1995년에 사업이 중단되었고, 1998년 폭스바겐이 브랜드를 사들이면서 독일 소유 브랜드가 되었다.

람보르기니: 이태리->미국->인도네시아->독일

페라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1963년에 첫 발을 내디딘 람보르기니는 자동차에서 경쟁의 진수를 보여준 멋진 메이커다. 그러나 소수를 위한 차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어서 경영은 늘 어려웠다. 석유파동 이후 파산에 이어 이태리 내에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1987년 크라이슬러 산하 회사가 되었지만 끝내 수익을 내지 못했다. 1994년 인도네시아 자본의 지주회사인 메가테크에게 매각되었다가 구조조정과 함께 6:4 비율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자본이 회사를 나누어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던 1998년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주도로 아우디 AG 산하 브랜드로 편입되었다.

세아트: 스페인->이태리->독일

스페인 정부와 주요 은행이 출자해 만든 국영기업에서 시작된 세아트는 공업육성과 고용확대가 목적이었다. 자동차 생산경험이 적었던 만큼 자동차 생산 파트너가 필요했던 세아트는 이태리 피아트와 손을 잡았다. 1970년대 이후 산업활동이 활발해지며 다른 해외 메이커들의 진출로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에 따라 세아트의 수익성이 떨어지게 되자 1981년에 피아트는 세아트에서 손을 떼었고, 세아트가 처음 설립될 때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폭스바겐은 1986년에 지배지분을 확보한 후 1990년에 자회사로 만들었다.

슈코다: 체코->독일

구 체코슬로바키아는 동유럽에서 몇 되지 않는 성공한 공업국가 중 하나로, 1890년대부터 자동차를 생산한 슈코다는 체코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2차대전 이후 공산화로 국영기업이 되었지만 다른 공산권 차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경쟁력이 뛰어났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지며 이 알짜 회사에 손길을 뻗은 것은 폭스바겐이었다. 폭스바겐은 1991년 지분 30%를 확보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 완전 자회사로 만들 때까지 야금야금 지분을 확보해 나갔다.

다치아: 루마니아->프랑스

루마니아의 UAP는 공산 독재치하에 있던 1968년부터 르노 차를 면허생산하기 시작했다. 다치아 1100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며 1300, 1301, 1310 등의 변형 모델들을 꾸준히 내놓았다. 공산권 몰락 후 민영화와 함께 회사 이름을 다치아로 바꾸며 1990년대 들어서는 100% 독자적으로 개발한 모델을 만들기도 했지만, 옛 르노 설계를 바탕으로 만든 차들을 생산한 경험 덕분에 1999년 르노 그룹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한국GM: 한국->한국/미국->한국->미국

1955년 설립된 신진자동차는 1965년부터 일본 도요타의 승용 및 상용차를 국내에서 조립생산하며 국내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떠올랐다. 그러나 1971년 돌연 도요타가 철수하자 새로운 합작선을 찾게 되었는데, 여기에 응한 것은 GM이었다. 두 회사는 각각 1:1 비율로 지분을 투자한 GM코리아를 설립했는데, 1973년 석유파동의 여파로 신진이 부도를 맞자 신진 지분을 산업은행이 인수, 새한자동차가 된다. 1978년에 산업은행 지분을 대우그룹이 인수하고 1983년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GM의 50% 지분은 남아 있었다. 대우는 1992년 GM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독자 노선을 걷지만 1999년 부도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1년 GM에 지배지분이 매각되었다.

르노삼성: 한국->프랑스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의 의지로 1995년 본격 출범한 삼성자동차는 일본 닛산과 제휴를 맺고 1998년부터 승용차 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매립지에 공장을 건설하면서 예상 밖의 많은 비용이 들어갔고, 때마침 IMF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경영과 판매에 모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첫 차 출시 1년 3개월여 만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2000년에 합작선인 닛산과 연합을 맺은 르노가 지분 80.1%를 인수하며 르노의 계열사가 되었다.

쌍용: 한국->중국->인도

신진자동차가 도요타 철수로 랜드크루저 생산을 할 수 없게 되자 미국 AMC와 손잡고 짚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쌍용의 시작이었다. 신진의 와해로 짚 생산을 이어받은 거화는 경영권 분쟁으로 흑자도산하며 동아자동차로 자동차 생산을 넘기고, 이는 다시 쌍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영난으로 1997년에 대우에 인수되었던 쌍용은 IMF 경제위기 이후 줄곧 허덕이던 쌍용은 2000년에 분리되었다가 2004년 말 상하이자동차가 51% 지분을 확보하며 중국 회사가 되었다가 다시 한 번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상하이자동차에게 버림받았다. 그리고 2011년 인도 마힌드라가 쌍용을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