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매거진 2011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일본 메이커에게 처음으로 르망 24시간 레이스 우승을 가져다 준 르망 유일의 로터리 엔진 우승차인 마쓰다 787B가 우승 20주년을 기념해 다시금 사르트 서킷을 달렸다. 세심한 복원 작업으로 부활한 787B 경주차는 많은 이들에게 뿌듯한 추억을 회상하게 해 주었다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잘 알려져 있는 내구 레이스다. 오랜 세월 동안 르망 레이스는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는 무대로 인정받았고, 르망에서의 우승은 차의 성능과 내구성, 그리고 드라이버의 투지와 정신력을 입증하는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동차 강국으로서 여러 일본 메이커들이 세계적인 모터스포츠에서 우승하기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F1과 마찬가지로 르망 레이스는 좀처럼 일본 메이커들에게 시상대의 맨 꼭대기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1923년 이후 지금까지 79번 열린 르망 레이스 역사에서 일본 메이커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역대 유일한 르망 우승의 주역은 1991년 59회 경주에 출전한 마쓰다 787B로, 로터리 엔진을 얹은 경주차로서 르망에서 우승한 유일한 차라는 기록도 남겼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마쓰다는 로터리 엔진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모터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74년 이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지속적인 투자가 이어지면서 점차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경주차의 성능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 상위권 진입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르망 레이스 규정이 바뀌면서 마쓰다의 성장은 위협을 받게 되었다. 당시 르망 규정상 참가할 수 있는 클래스는 카테고리 1과 카테고리 2로 나뉘었다. 카테고리 1은 자연흡기 3.5L 엔진에 연료 사용량에 제한이 없었고, 카테고리 2는 엔진 형식과 배기량에는 제한이 없지만 연료 사용량이 2천550L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조직위원회는 1992년부터 카테고리 2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카테고리 2에 경주차를 투입했던 마쓰다는 1991년이 로터리 엔진 경주차로 출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되었다. 

1991년, 세 대가 제작된 787B 가운데 두 대와 1990년 경주에 출전했던 787 한 대가 르망 레이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차 모두 R26B 4로터 자연흡기 로터리 엔진을 얹었지만, 787B의 엔진은 성능이 한층 향상된 것이었다. 특히 연료 사용량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연비를 높이면서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만들어졌다. 예선 기록에서 중상위권에 오른 787B 경주차는 메르세데스-벤츠 C11, 재규어 XJR-12와 경쟁을 벌여야 했다. 

결승에서 경주 초반부터 상위권의 문을 두드린 787B 경주차는 카테고리 1 경주차들이 잇단 트러블로 리타이어하며 기회를 잡았고, 경주가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55번 787B 경주차가 단독 1위로 올라서 이내 결승선을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략과 내구성이 가져다 준 승리였다. 이 55번 787B 경주차는 당시 경주에 투입되었던 3대의 경주차 가운데 유일하게 메인 스폰서인 의류 업체 레나운의 화려한 도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마쓰다 르망 우승의 상징이 되었다.

르망 우승을 차지한 지 20년이 지난 올해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이 기념비적인 경주차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우승 20주년 기념으로 그동안 전시상태에 있던 55번 경주차가 완벽한 상태로 복원되어 레이스 개막 이벤트에서 데모 주행을 위해 사르트 서킷을 달린 것이다. 6월 9일과 11일의 데모 주행에서 787B 경주차는 15만 여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4로터 로터리 엔진 특유의 소리를 뿜어냈다. 또한 6월 10일 르망 시 중심에서 있었던 드라이버 퍼레이드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 다시 사르트 서킷을 달린 55번 787B 경주차는 히로시마의 마쓰다 박물관에 영구 보존되고 있던 차로, 한동안 특별 이벤트 등에서 시범주행을 하기도 했지만 지난 5년 동안은 한 번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 우승 2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주행이 가능하도록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7명의 복원 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작업을 통해 문제가 있는 부품들은 교체되고 재조립 되었는데, 몇몇 부품은 부품공급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다시 제작되기도 했다.

이번 기념 이벤트에는 직접 경주에 출전하는 것은 물론 미국 그랜드 앰 시리즈 경주 팀을 직접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자동차 매니아인 배우 패트릭 뎀시가 참여해 관심을 끌었고, 20년 전 경주에 참여했던 드라이버와 팀 크루, 관계자들이 함께 다시 달리는 787B의 모습을 즐기며 환영했다. 특히 경주 전의 웜업 주행에서는 1991년 당시 결승선을 통과할 때 787B를 몰고 있었던 조니 허버트(전 F1 레이서)가 직접 차를 몰아 화제가 되었다. 그는 우승 경주차를 몰았으면서도 계획에 없던 장시간 운전으로 탈수 증세가 심해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의 아쉬움을 달래는 차원으로 조직위원회는 그에게 시상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마쓰다 이외에도 닛산, 도요타 등이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도전했지만 단 한 차례도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우승 20주년을 기념해 다시 르망 레이스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마쓰다 787B 경주차는 일본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뿌듯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