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100년, 미국인의 대중차에서 세계인의 대중차로

[ 모터 매거진 2011년 7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가장 미국적인 자동차 브랜드로 꼽히는 쉐보레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미국 대표 자동차 브랜드에서 세계인의 대중차로 발돋움해 나가고 있는 쉐보레의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쉐보레 브랜드가 자동차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1년이었다. 레이서이자 엔지니어였던 루이 쉐보레와 GM 창업자인 윌리엄 C. 듀런트가 공동 창업한 쉐보레 모터 컴퍼니가 그 시발점이었다. 쉐보레 모터 컴퍼니가 세워졌을 때 자동차의 역사는 20년을 겨우 넘기고 있었다. 

루이 쉐보레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는 크고 호화로웠고, 이 개인적인 교통수단을 새로운 유행으로 여기는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 수 있었다. 앞서 뷰익과 제네럴 모터스(GM)의 번영을 일구었던 미국의 사업가 윌리엄 C. 듀런트는 스위스 태생의 레이서이자 탁월한 기술자였던 루이 쉐보레와 친분을 쌓았고, 고급 6기통 승용차를 만들기 위해 1911년에 그를 컨설턴트로 고용했다. 쉐보레는 1905년에 특수제작된 오픈 경주차로 시속 178.6km로 달려 지상 속도기록을 세운 바 있다. 두 거인의 만남으로 태어난 것은 쉐보레의 첫 차인 클래식 식스였다. 모터스포츠에서 명성을 쌓은 루이 쉐보레의 이름이 새겨진 첫 차였다. 1911년 11월 3일, 쉐보레 모터 컴퍼니가 미국 미시건주 플린트에서 문을 열었다. 클래식 식스의 생산은 이듬해부터 시작되었다. 대형 4.9L 6기통 엔진은 40마력의 출력을 냈고 약 105km의 최고시속을 낼 수 있었다. 이 차는 오늘날의 가치로 5만 달러에 가까운 2천150달러에 판매되었다.

양산된 1912년형 쉐보레 시리즈 C ‘클래식 식스’. 사진 윈쪽 흰색 코트를 입은 사람이 루이 쉐보레다

높은 값에도 불구하고 쉐보레는 스타일와 정교함, 그리고 편안함으로 좋은 평을 얻었다. 듀런트는 또한 리틀이라는 이름의 더 작고 저렴한 차를 만들었다. 두 차는 모두 잘 팔렸지만, 듀런트는 사업확장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 헨리 포드가 모델 T를 통해 입증한 것처럼 대량 생산되는 저가형 차에 집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듀런트는 한층 고가의 차들에 일반적으로 쓰였던 기술과 특징들을 적절한 값의 쉐보레 승용차와 트럭 라인업에 반영하고자 했다. 루이는 이에 반대했고 듀런트와 심각한 논쟁 끝에 1913년 10월에 회사를 떠났다. 회사에 남은 듀런트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를 밀어붙였다. 

이렇게 해서 1915년에 4기통 엔진을 얹은 현실적인 모델인 H 시리즈 승용차가 나왔다. 이 차가 쉐보레의 나비넥타이 엠블럼을 단 첫 차였다. 이 차의 성공은 쉐보레가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발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렇게 해서 1915년에 캐나다 공장이 세워졌다. 같은 해에 쉐보레는 경제적인 소형차 490 모델을 내놓아 포드 모델 T와 직접 경쟁을 시작했다. 490이라는 이름은 당시 모델 T의 가격인 490달러를 겨냥한 것이었다. 소비자들은 듀런트의 비전을 인정했고 쉐보레의 판매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이 성공으로 듀런트는 1916년에 GM의 지배지분을 매입할 수 있었다. 1917년까지 듀런트는 GM의 경영자로 다시 자리를 잡았고 쉐보레는 GM의 디비전이 되었다.

1927년 4월 제인스빌 공장에서 생산된 50만 대째 쉐보레

쉐보레는 1917년에 첫 V8 엔진을 선보였다. V8 엔진은 1950년대부터 쉐보레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이듬해에 쉐보레는 GM의 디비전이 되었고, 이와 함께 첫 경 트럭을 선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1919년까지 쉐보레가 미국 제2의 자동차 메이커 자리에 오르는 것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1922년에는 총 생산대수 100만 대를 넘어서게 되었다.

쉐보레는 1920년대에 유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배경에는 덴마크 출신의 사장인 윌리엄 S. 크너드센의 영향이 컸다. 덴마크가 1924년에 쉐보레의 유럽 첫 공장이 세워져 트럭 생산을 시작하는 곳으로 결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내 유럽에서의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어, 1925년에는 벨기에에 새로 세워진 공장에서 쉐보레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벨기에 공장은 실제로는 오래된 수도원에 세워져, 하루에 25대 밖에는 생산할 수 없었다. 또 다른 공장이 루이 쉐보레의 고향인 스위스와 폴란드, 독일과 영국에도 세워졌다. 남미와 호주의 다른 생산공장과 더불어 쉐보레는 1920년대를 거치며 세계 각지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927년에 쉐보레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한 해 동안 100만 대를 생산해 포드를 판매에서 앞질렀다. 만들어진 지 채 20년도 되지 않은 회사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쉐보레와 GM의 성장을 이끈 세 인물, 윌리엄 크너드센(왼쪽), 알프레드 슬론(가운데), 윌리엄 피셔(오른쪽)

1926년에는 귀한 인재가 GM의 품으로 들어왔다. 새로운 아트 & 컬러 스타일링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이끌게 된 할리 얼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1950년대 말까지 쉐보레의 디자인을 변화시켰고, 그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1930년대는 대공황의 여파로 자동차 업계는 물론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은 시기였다. 쉐보레는 경쟁자들의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거나 심지어 파산에 이르는 모습을 보며 역경을 헤쳐 나갔다. 그럼에도 쉐보레는 1934년에 앞 독립 서스펜션, 1935년에 첫 스테이션 왜건이자 SUV인 서버번 캐리올과 같은 여러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다. 1930년대 말까지 모든 쉐보레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유선형의 꾸밈새를 갖춤으로써 스타일 면에서 당대 다른 차들을 앞질렀다. 제2차 대전의 공백기 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져, 패스트백과 버슬백(대형 트렁크가 있는 스타일) 같은 스타일을 선보이며 세계 자동차 디자인을 이끌었다.

1939년형 쉐보레 서버번

1950년대의 획기적인 신기술 중의 하나는 자동변속기였다. 그러나 1950년대 쉐보레의 가장 뛰어난 걸작은 바로 콜벳이었다. 유럽 로드스터의 영향을 받아 할리 얼이 디자인한 콜벳은 미국의 메이저 자동차 메이커의 첫 진정한 스포츠카로, 스틸 보디 대신에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보디를 채용했다. 많은 장점들에도 콜벳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거의 단종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1955년에 V8 엔진이 올라가고, 1956년에 디자인에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콜벳은 여섯 세대동안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는 유일한 미국산 스포츠카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쉐보레의 스몰블록 V8 엔진은 이후 50년 동안 수백만 대의 승용차와 트럭에 올라갔고, 오늘날의 트럭과 SUV는 물론 카마로, 콜벳 등 고성능 차에도 쓰이는 신세대 스몰블록 V8로 그 혈통을 넘겨주었다. 이 엔진은 다른 쉐보레로 전파되어, 역사상 가장 돋보이면서 사랑받는 엔진 중 하나가 되었다. 스몰블록 V8 엔진은 아직까지도 생산되고 있어, 양산 엔진 가운데 가장 오랜 혈통을 지닌 엔진으로 남아 있다. 특히 이 엔진의 고성능 특성은 거의 모든 형태의 모터스포츠에서 쉐보레가 자리잡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쉐보레 엔진을 얹은 경주차들은 1950년대에 태동하기 시작한 스톡카 및 드래그 레이스 세계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이후로 레이스 무대를 독점해 나가기 시작했다. 쉐보레는 나스카(NASCAR) 경주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했고, 다른 어느 브랜드들보다 더 많이 NHRA 프로 스톡 경주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쉐보레의 대표적 스포츠카인 콜벳. 1세대부터 6세대까지 대표적 컨버터블이 모였다

1955년에 나온 스페셜 에디션 쉐보레 카메오 캐리어는 주류 픽업 가운데 처음으로 부드러운 리어 펜더를 선보였다. 이러한 스타일은 다른 현대적인 트럭의 전통적인 ‘스텝 사이드’ 디자인과 확연히 구분되는 유연하고 풍요로운 감각을 트럭에 부여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업계 전체가 변화했다. ‘플리트사이드’ 스타일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부드러운 적재공간 측면 디자인은 모든 트럭에 반영되었다.

디자인은 쉐보레의 초석이 되었고 많은 모델들이 미국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1957년형 쉐보레 벨 에어의 솟구치는 핀은 제트시대의 낙관주의를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쉐보레의 황금기는 1958년에 출시되어 쉐보레로 하여금 고급차 시장을 넘볼 수 있게 했던 임팔라가 상징하듯 테일핀과 크롬장식의 시대가 정점을 맞았던 1959년이었다. 접혀 올라가는 리어 윙이 돋보인 임팔라의 디자인은 독특함 그 자체였다. 이후로 10년 동안 이런 디자인의 흐름은 잦아들었지만, 쉐보레는 다시금 화려함에서 탈피하는 디자인의 선봉에 섰다.

1960년에 선보인 쉐보레 콜베어 세단

소형차를 통해 경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쉐보레의 제안은 1960년에 등장한 콜베어였다. 유럽 감각이 돋보인 이 차는 이전까지의 쉐보레 차들보다 훨씬 작았고 리어 엔진 구조가 특징이었다. 이 차는 쉐보레의 틀을 깬 혁신적인 모습으로 세계적인 흐름을 반영했다.

그러나 1963년에 나온 새로운 디자인의 콜벳 스팅레이는 날카로운 디자인과 더불어 이전 세대와 뚜렷이 구분되는 스타일로 여전히 화려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날렵한 1963년형 콜벳 스팅레이는 많은 자동차 역사가들에게 역사상 가장 멋진 모습의 자동차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이후 10년간을 풍미한 새로운 핵심 모델은 1967년에 등장한 카마로였다. 이 작고 저렴한 고성능 모델은 2002년 단종된 이후 쉐보레가 성공적으로 다시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상징적인 ‘포니카’의 하나가 되었다. 2010년에 선보인 5세대 카마로의 전통이 담겨 있는 디자인은 주요 경쟁차들 사이에서 금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75년형 쉐보레 베가

정부의 각종 규제와 석유파동, 경기 침체로 인해 1970년대는 자동차 메이커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기였다. 큰 차의 인기는 점점 떨어지고 작은 차가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쉐보레는 소형차인 베가를 통해 유행에 대응했다. 이와 반대되는 성격의 차로서 나온 카프리스는 프리미엄 모델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켰다. 쉐보레는 바야흐로 모든 이들을 위한 다양한 차를 내놓게 되었다. 1979년에는 쉐보레의 총 생산대수가 1억 대를 넘어서는 대 기록을 세우기에 이른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쉐보레는 전자장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미래지향적인 신세대 콜벳을 1983년에 선보였다. 콜벳은 1992년에 누적 생산 100만 대를 넘어섰고, 같은 해에 카마로는 탄생 25주년을 맞았다. 이후로 콜벳은 1997년에 수퍼카에 가까운 모습을 갖춘 5세대 모델이 등장하기까지 그 모습을 그대로 이어 나갔다.

GM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해 쉐보레 브랜드로 유럽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사진은 GM대우가 만든 쉐보레 라세티

21세기를 맞이하며 쉐보레는 유럽 시장에 다시금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가장 중요한 시장인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지속적인 판매가 이루어졌지만, 쉐보레의 판매는 항상 저조했다. 2001년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쉐보레는 유럽 판매망과 든든한 생산기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005년 초부터 쉐보레 브랜드는 다양한 종류의 소형차들을 유럽 시장에 다시 출시할 수 있었다. 이후로 새로운 모델들을 꾸준히 내놓으며 소비기반을 다져나갔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새로운 조립공장은 물론 동유럽 및 폴란드의 합작공장이 문을 열면서 생산기반도 다시 확보할 수 있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쉐보레는 든든한 기술적 기반과 고유의 디자인, 높은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제품을 계속해서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쉐보레 볼트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친환경 기술을 통해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는 브랜드로서 쉐보레의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볼트를 컨셉트카에서 양산차로 키워낸 진보적인 철학은 크루즈와 스파크 같은 제품에도 반영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마로와 콜벳은 첨단 기술을 매력적인 값의 스포츠카에 담아 고성능과 가치를 결합해 온 60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쉐보레의 주요 글로벌 모델 판매 라인업

특히 한국GM에서 개발을 주도한 크루즈와 아베오, 스파크는 쉐보레의 세계적 성장을 돋보이게 하는 새 차들이다. 쉐보레의 나비넥타이 엠블럼이 붙은 세계 130개 국가가 넘는 지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쉐보레는 각 지역의 취향과 요구에 맞게 조율된 제품을 개발하면서 쉐보레의 상징적인 스타일, 가치와 성능을 전달하기 위한 세계적인 연결고리를 움직이고 있다. 세계 각지의 기술 및 디자인 센터와 공유하는 개발 공정은 더 뛰어난 성능과 안전성, 더 효율적인 차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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