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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카 2011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지금은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지만, 종종 온 가족이 함께 이동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럴 때면 대개 뒷좌석에 어머니, 동반석에 아버지를 모시고 필자가 운전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20년 가까이 운전을 하시면서 각종 법규위반으로 과태료를 낸 것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인 매너 드라이버이시다. 한적한 도로에서 제한속도를 조금 넘기시는 것을 빼면 거의 정석에 가까운 운전을 하신다. 당연히 그렇게 운전을 해야 한다고 믿는 분이다.

운전석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뒷좌석에 앉으시면 어머니의 입에서는 주변을 달리는 다른 차들의 주행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교통흐름을 따르지 못하는 차들에 대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거칠고 난폭하게 운전하는, 정석대로 운전하지 않는 차들에 대한 불평이다. “저 차는 도대체 깜빡이를 켤 줄을 모르는구나.” “뭐가 급하다고 저렇게 쏜살같이 달리나 몰라. 죽으려고 환장을 했지.” 대개 이런 식이다.

이런 얘기들과 함께 자주 하시는 말씀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좋은 차를 타면 좀 점잖게 몰아야지. 차가 아깝다.” 난폭운전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하지만 비판의 화살이 향하는 목표와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이런 말씀의 밑바탕에는 ‘좋은 차는 차의 격에 맞게 몰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어머니 기준의 ‘좋은 차’는 준대형급 이상의 국산 세단이나 수입 세단이다. 즉, 비싼 차가 좋은 차다.

넓게 보면 어머니의 말씀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싼 차, 즉 좋은 차를 타는 사람이라면 남들 보기에도 모범이 되는 운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주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운전을 거칠고 매너 없이 하는 사람의 절대적인 수는 보통 국산차를 모는 쪽이 훨씬 많다. 전체 운전자 가운데 10%가 난폭운전자라고 치자.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국산차를 모는 쪽이 많겠는가, 여전히 상대적 소수인 국산 대형차나 수입차를 모는 쪽이 많겠는가. 그럼에도 유독 ‘좋은 차’를 모는 사람이 비판의 직격탄을 맞는 이유는 그들이 묻혀버리는 소수가 아니라 눈에 뜨이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산 대형차나 수입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이 소수의 특권층으로 한정되었던 시기에는 그런 생각이 옳았다. 하지만 지난 20여년 사이에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이미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대 차이는 이전만큼 뚜렷하지 않다. 또한 국산차를 살 수 있으면서도 수입차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경제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수입차를 구입해 유지할 수 있지만, 경제력이 사회적 지위와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평범한 사람도 돈만 있으면 국산 대형차나 수입차를 사서 굴릴 수 있는 것이 요즘의 자동차 시장이다.

차가 비싸고 좋은 만큼 차를 모는 사람의 인격이 훌륭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하지만 차를 모는 사람의 인격이 차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것은 차의 크기와 값, 차의 원산지와 브랜드에 좌우되지 않는다. 비싸고 좋은 차를 험하게 모는 것이 차가 아까운 일이라면, 싸고 허름한 차를 험하게 모는 것도 차가 아까운 일이다. 모든 차, 모든 사람은 법이 다스리는 도로 위에서 평등하다. 민주공화정을 채택한 법치국가에서는 원래 그렇다. ‘좋은 차’를 타는 사람에게 다른 잣대를 갖다 대는 것도 민주적이지 못한 일이다. 그런 사람도 그저 평범한 난폭운전자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차는 차일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이댈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와 차를 모는 사람은 다르기 때문이다. 무슨 차를 타든, 중요한 것은 일반 도로 위에서 남들에게 욕먹을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