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쌍용 체어맨 W V8 5000 VVIP

[ 월간 ‘자동차생활’ 2011년 8월호에 기고한 글을 손질한 것입니다 ]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국산 초대형 세단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현대 에쿠스와 쌍용 체어맨 W를 보면 그 해답은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권위적인 풍채와 풍요로운 실내, 그리고 쾌적한 주행감각은 두 차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들이다. 다만 그런 특징들을 표현하는 방법은 두 차가 각기 다르고, 특히 체어맨 W는 ‘벤츠 기술’이라는 프리미엄과 신뢰를 무기로 꾸준히 인기를 끌어 왔다.

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재기에 나선 쌍용이 최고급 모델인 체어맨 W를 페이스리프트했다. 새 체어맨 W는 그동안 다져온 이미지를 그대로 끌고 가면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에쿠스에 맞서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랫급 모델인 체어맨 H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한 후 곧바로 체어맨 W의 새 모델을 내놓은 데에서 쌍용의 비장한 각오도 어느 정도 엿보인다.

외부 디자인에서는 전체적인 틀을 그대로 둔 채 디테일의 변화로 분위기를 바꿨다. 페이스리프트의 전형적인 수순이다. 동급의 최신 해외 브랜드 모델들을 벤치마킹한 것은 쉽게 드러난다. 독특한 곡선의 LED를 담은 헤드램프와 더 커진 라디에이터 그릴, 가는 크롬 장식으로 인상을 강조한 앞 범퍼, 트렁크 리드 안쪽으로 파고든 테일램프 등은 벤치마킹 대상이 어떤 차종이었는지를 알려준다. 

이전 모델에 비하면 화려하면서 고급스러운 느낌과 함께 시각적인 안정감이 커졌다. 하지만 단순명쾌한 면과 선으로 구성된 차체에 비해 너무 많은 요소들이 담겨 있어 전체적인 조화가 부족해 보이는 것은 여전하다. 아직도 쌍용만의 뚜렷한 아이덴티티가 느껴지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내도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를 닮은 전반적인 구성과 디자인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대신 소재와 색상에서의 변화는 차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한층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승차에는 브라운과 베이지 투톤 내장재가 쓰였고, 그 경계에 밝은 톤의 무광택 우드 그레인이 놓인다. 촉감 좋은 가죽과 꼼꼼한 박음질이 돋보이는 천장의 알칸타라 마감재에서도 세련미가 느껴진다.

푹신하고 크기가 넉넉하면서도 몸을 잘 잡아주는 앞좌석과 뒷좌석 모두 한국인 체형을 잘 고려해 만든 듯 편안하다. 이 차급의 차에서 가장 중요한 뒷좌석의 편의성은 딱히 부족한 점을 찾기 힘들다. 공간도 충분히 넉넉하고, 리클라이닝 기능으로 몸을 최대한 눕혀도 허벅지가 부담스럽지 않다. 앞좌석과 마찬가지로 열선 및 통풍기능이 있는 것은 물론, 마사지 기능도 마련해 놓았다. 마사지 기능은 피로가 풀릴 만큼 강하게 작동되지만 소음이 큰 편이다. 통풍기능도 마찬가지다. 

국내 유일의 하만 카돈 로직7 오디오는 소리가 꽤 좋은 편이지만, 뒷좌석용 AV 시스템은 컨트롤러의 직관성이 떨어져 원하는 기능을 빠르게 찾아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앞좌석 스크린과 컨트롤러도 구성이 복잡하긴 마찬가지이지만 터치스크린 방식이어서 혼란은 덜하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와 같은 거시적이고 인체공학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아쉽다.

306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V8 5.0L 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 등 파워트레인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국내 최고 수준의 배기량을 자랑하는 엔진이지만 출력과 연비에서는 핵심 경쟁차에 비교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여전하다. 엔진과 변속기 모두 전반적으로 부드러움에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부드러움의 근원은 충분한 힘이다.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아 회전수를 올리면 V8 엔진 특유의 듬직한 배기음과 함께 힘 있게 달려 나간다. 자동변속기에는 수동 기능이 있지만 자동 모드가 훨씬 자연스럽다. 수동 변속은 기어 레버와 스티어링 휠의 스위치를 이용해 할 수 있지만 조작도 쉽지 않고 변속도 더디기 때문이다. 게다가 5단 이상의 기어는 정속주행을 위한 것으로 기어비 차이가 적다. 7단 기어가 들어가 있을 때 시속 100km에서의 엔진 회전수는 1,300rpm에 머문다. 당연히 실내는 가는 엔진음이 들리는 것을 빼면 지극히 조용하다. 

스티어링 휠과 페달 등 운전과 관련된 장치들의 조작감은 묵직한 편. 하체는 고속에서도 붕 뜬 느낌 없이 듬직하다. 약간의 출렁임이 느껴지고 거친 노면에서는 다소 튀기도 하지만 차체가 흐트러지는 일은 거의 없다. 초기 느낌이 부드러운 서스펜션은 스티어링에도 영향을 미쳐, 반응은 고르지만 정교함이 조금 떨어진다. 그렇다고 뒷좌석에서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고속으로 올라가면 자동으로 차체를 낮추고, 반응 특성도 편안함(컴포트)과 안정감(스포트) 중심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모드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어느 모드라도 전체적인 안정감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새로운 체어맨 W는 실내의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서 동급의 세계적인 세단들과도 충분히 비교할 수 있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러나 주행특성을 비롯해 나머지 부분들은 ‘월드 클래스’를 내세우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른 세계적인 프리미엄 대형 세단에서 느껴지는 기술적 여유와 든든함을 갖추는 것이 체어맨 W의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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