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2년 4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내용이 길어 10년 단위로다섯 개 포스트로 나누어 올립니다. ]

* 일본 스포츠카, 이렇게 달려왔다(3) – 1980년대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1990년대

버블경기가 한창일 때에는 만들기만 하면 팔렸기 때문에, 1990년대로 접어들자마자 거의 모든 일본 메이커들이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본 스포츠카는 황금기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1990년 사상 최대의 호황이 정점을 찍은 직후인 1991년부터 일본의 경기가 빠르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버블경기가 붕괴된 것이다. 이후로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 불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은퇴세대 사용자와 여성 사용자가 증가하면서 이들을 위한 차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운전하기 쉽고 실용성이 뛰어난 RV와 SUV, 그리고 경차의 인기에 밀려 사치스럽고 즐기기 위한 차였던 스포츠카는 점차 발을 붙이기 어려워졌다. 갑작스러운 시장 흐름의 변화와 불경기로 인한 내수 판매 감소를 맞닥뜨린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실적악화로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나날이 강화되어가는 환경규제는 고성능과 친환경의 양립을 위해 많은 투자를 요구했다. 해외 메이커에 경영권을 넘기거나 제휴관계를 강화하는 등 생존에 급급했던 메이커들은 차츰 스포츠카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일본 자동차 메이커와 소비자 모두에게 스포츠카의 빙하기가 시작된 것이다.

마쓰다 RX-7(1991년)

1세대와 2세대의 스타일 논쟁에서 벗어나, 마쓰다의 독자적인 유기적 디자인이 돋보인 차. 2세대에서 발전한 인터쿨러 트윈 터보 로터리 엔진의 고성능 버전은 255~280마력의 출력을 냈다. 가벼운 차체와 날카로운 핸들링으로 훨씬 높은 배기량의 일반 엔진 경쟁차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1992년)

WRC 인증용으로 만든 랜서 GSR 에볼루션 I를 시작으로 시즌마다 개선이 이루어진 고성능 스포츠 세단이다. 형식명 4G63인 2.0L 터보 엔진과 전자제어 AWD를 갖추고 고속 코너링의 강자로 널리 알려졌다. 스바루 임프레자 WRX와 나란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WRC를 장악했다.

스바루 임프레자 WRX(1992년)

레거시에 이어 WRC 출전을 위해 소형차 임프레자를 개조해 만든 고성능 모델. 수평대향 터보 엔진과 전자제어 AWD를 갖춰 뛰어난 성능과 주행안정성을 확보했다. 1994년에는 한층 고성능인 WRX STI가 추가되었다. 1990년대 중반 WRC 우승컵을 여러 차례 거머쥐며 스바루의 이미지를 높였다.

도요타 셀리카(1993년)

5세대 셀리카는 1985에 나온 4세대 모델에 이어 WRC에 출전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2.0L 터보 엔진에 4륜구동 시스템을 갖춘 최상위 모델인 GT-FOUR가 WRC 출전차의 바탕이 되었고, 카를로스 사인츠와 같은 쟁쟁한 드라이버들이 몰아 도요타를 1994~1995년 시즌 챔피언 자리에 올려 놓았다.

도요타 수프라(1993년)

셀리카의 상위 모델에서 갈라져 나온 수프라는 3세대부터 소아러와 함께 도요타의 대표적인 고성능 스포츠 모델로 자리잡았다. 직렬 6기통 터보 엔진, 일본 최초의 6단 수동변속기를 갖추고 0->시속 100km가속 4초대의 성능을 낸 4세대 모델은 특유의 존재감을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다시 보여주었다.

스바루 알시오네 SVX(1993년)

알시오네/XT의 뒤를 이어 쾌적한 주행 감각의 고급 GT를 지향한 알시오네 SVX는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독특한 실내외 스타일이 눈길을 끌었다. 수평대향 3.3L DOHC 엔진의 높은 토크, ACT-4 전자제어 AWD 시스템의 주행안정성 등이 돋보였다. 거품 경기 붕괴로 판매가 예상을 밑돌아 스바루는 큰 손해를 입었다.

미쓰비시 FTO(1994년)

거품 경기가 막바지로 치달을 때 개발이 시작되어 거품 경기 붕괴와 함께 등장한 미쓰비시의 마지막 내수용 앞바퀴 굴림 스포츠카. 작은 차체에 세련된 스타일, MIVEC 가변 밸브 기술이 쓰인 V6 2.0L 엔진에 학습 및 수동기능이 있는 INVECS-II 전자제어 자동변속기 등 신기술이 많이 쓰였다.

혼다 인테그라 타입 R(1995년)

1993년에 나온 3세대 인테그라의 스페셜 버전으로, 혼다의 고성능 라인업인 타입 R 시리즈의 첫 모델. 최고출력이 200~210마력에 이르는 1.8L VTEC 엔진을 얹었다. 자연흡기 방식으로 리터당 출력이 100마력이 넘는 양산차용 엔진은 지금도 흔치 않다. 앞바퀴 굴림 차로서는 핸들링도 뛰어나 많은 팬을 낳았다.

혼다 S2000(1999년)

혼다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2인승 컨버터블로, 첫 네바퀴 차였던 S500의 개념을 계승했다. NSX와 더불어 혼다의 스포츠 이미지를 가장 빛낸 차이기도 하다. 고회전형 자연흡기 2.0L 엔진은 리터당 120~125마력의 출력을 냈고, 뛰어난 균형감각과 달리기 성능이 좋은 평가를 얻었다. 

도요타 소아러/렉서스 SC430(2000년)

도요타가 렉서스 출시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차. 이전까지 럭셔리 GT 지향의 2도어 쿠페였던 스타일에서 탈피해 메르세데스-벤츠 SL과 비슷한 접이식 하드톱을 갖춘 대형 컨버터블이 되었다. 다분히 렉서스 브랜드 이미지를 의식한 시도였고, V8 4.3L 엔진을 얹었지만 수요가 적어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 일본 스포츠카, 이렇게 달려왔다(5) – 2000년대~현재(2012년)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