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매거진 2013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1948년에 나온 포르쉐 356은 이후 1967년까지 생산되며 스포츠카 세계에 포르쉐의 이름을 각인했다. 폭스바겐 비틀을 활용해 만들었지만, 스포츠카로 손색없는 성능을 낸 356은 1955년에 첫 업그레이드와 더불어 356 A이 되었다. 356 A에서 뚜렷해진 ‘일상적으로 쓰기에도 무리 없는 스포츠카’라는 개념은 지금도 포르쉐 양산 스포츠카에 이어지고 있다.

독일이 낳은 천재 자동차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들 페리 포르쉐와 함께 전범혐의로 프랑스에 투옥되었다. 먼저 풀려난 페리는 가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주차 설계와 함께 포르쉐 가문의 이름을 살린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 있던 포르쉐의 설계회사는 아직 전쟁의 포화를 피해 이사했던 오스트리아 그뮌트(Gmünd)에 남아 있었고, 그곳에서 페리는 아버지 페르디난트와 동고동락한 기술자들과 함께 가문의 이름을 딴 첫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별다른 생산설비도 없이 사람이 일일이 작업해 만든 시제차는 1948년에 완성되었다. 시제차는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었던 타입 64 경주차의 경험을 살려, 파이프를 용접해 만든 스페이스 프레임에 폭스바겐 비틀의 1.1ℓ 40마력 엔진을 좌석과 뒤 차축 사이에 둔 미드십 형태였다. 엔진 성능이 탁월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스페이스 프레임과 알루미늄 판재를 두드려 만든 가벼운 보디 덕분에 무게가 650kg에 불과해 충분히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이 시제차에는 356-1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폭스바겐 비틀 설계와 부품 활용한 스포츠카

직접 차를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한 페리는 이 차의 양산에 나섰다. 양산 단계에서는 생산성을 고려해 폭스바겐 비틀의 설계와 부품을 대부분 활용했다.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섀시, 브레이크 모두 비틀의 것이었다. 구동계도 시제차와 달리 4기통 공랭식 수평대향 엔진을 뒤 차축 뒤에 얹었고 뒷바퀴를 굴렸다. 그러나 스포츠카라는 성격을 고려해 포르쉐 기술자들은 성능에 초점을 맞춰 여러 부분을 개선하고 새롭게 만들었다. 꾸준한 개선으로 점차 포르쉐 고유의 부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늘어났다.

보디는 시제차와 마찬가지로 엘빈 코멘다(Erwin Komenda)에 의해 만들어졌다. 코멘다는 폭스바겐, 치시탈리아, 아우토 우니온 경주차 등 당대의 유명한 차들을 디자인한 바 있는 실력자로, 슈타이어와 다임러-벤츠를 거쳐 1931년부터 포르쉐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단순하면서도 낮고 날렵한 모습을 지닌 이 차에는 356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이어졌다.

1949년이 되어 포르쉐는 원래 근거지였던 슈투트가르트로 귀향했다. 귀향과 함께 포르쉐는 슈투트가르트의 코치빌더인 로이터와 계약을 맺었다. 첫 양산차인 356에 쓸 500대 분량의 차체를 주문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페리 포르쉐는 500대 이상 팔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고, 당시의 회사 재정 상태로는 그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밖에는 지급할 여유가 없었다. 로이터는 그뮌트에서 생산된 차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살려 철제 보디를 만들었다. 엔진은 1.1ℓ 급 경주 출전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비틀 엔진의 배기량을 약간 줄인 것을 기본으로 얹었다. 보디는 쿠페와 카브리올레가 먼저 선보였고, 1954년에는 스피드스터가 추가되었다.

356은 초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 탁월한 핸들링 특성과 뛰어난 품질이 인정받아 미국과 유럽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쿠페를 바탕으로 더 간결하게 만든 오픈 모델인 스피드스터는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여러 자동차 경주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356은 포르쉐의 이름을 높였다. 356은 방패 모양의 포르쉐 엠블럼이 처음 쓰인 차이기도 하다. 포르쉐를 미국에서 수입해 판매하던 맥스 호프먼의 제안으로 페리 포르쉐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엘빈 코멘다가 완성한 이 엠블럼은 1952년 말부터 356에 쓰이기 시작했다. 

356의 기본 설계는 생산이 끝날 때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1965년에 생산이 끝날 때까지 세 차례의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큰 변화는 1955년에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데뷔한 부분 변경 모델은 기본 설계는 이전과 같지만, 차체 형태가 조금 달라지고 안팎으로 세부적인 변화가 있어 훨씬 더 편한 차가 되었다. 엔진은 1951년부터 기본이 된 1.3ℓ 엔진과 더불어, 1952년에 추가된 1.5ℓ 엔진을 대신하는 새 1.6ℓ 엔진이 올라갔다. 1.6ℓ 엔진의 기본 출력은 60마력이었지만, 수퍼 버전의 고성능 엔진은 75마력을 냈다. 

1955년에는 스피드스터와 쿠페에 고성능 카레라(Carrera) 버전이 추가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쓰인 이 이름은 포르쉐 경주차가 우수한 성적을 거둔 멕시코의 카레라 파나메리카나(Carrera Panamericana) 경주에서 비롯되었고, 나중에는 여러 포르쉐 모델의 고성능 버전에도 쓰였다.

356 A 카레라에는 고성능 1.5ℓ 엔진이 쓰였다. 원래 550 경주차에 쓰인 것을 손질한 이 엔진은 크랭크샤프트에 롤러 베어링을 쓰고 4개의 캠샤프트를 갖춘 것이 특징으로, 나중에 포르쉐 회장이 되는 에른스트 푸어만(Ernst Fuhrmann)이 설계해 ‘푸어만 엔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경주차 엔진에 뿌리를 둔만큼 최고출력도 100~110마력에 이르러, 356 A 카레라는 당시 포르쉐 차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빠른 차로 자리매김했다.

356 A는 이후에도 꾸준히 개선되었다. 1957년에는 경량화한 GT 버전이 나와, 여러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기도 했다. 1957년에는 세부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T2 버전이 나와 1959년에 조금 더 개량된 356 B가 나올 때까지 생산되었다.

처음 페리 포르쉐는 356이 500대 이상 만들어질지 반신반의했지만 생산 대수는 이미 1954년에 5,000대를, 1954년에 1만 대를 넘어섰다. 356은 1950년대 독일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차였을 뿐 아니라 포르쉐의 기틀을 다진 차다. 특히 356 A에서 뚜렷해진 ‘일상적으로 쓰기에도 무리 없는 스포츠카’라는 개념은 지금까지도 911, 복스터와 카이맨 등 포르쉐 양산 스포츠카에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