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매거진 2013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미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차를 만들겠다는 캐딜락의 야심에서 태어난 차가 V-16이다. 초대형 엔진에 어울리는 크고 화려한 차체는 수요층을 고려해 다양하게 맞춤 제작되었다. 출시 직전에 대공황이 일어나 출시 첫 해 이후로 판매는 지극히 소수에 그쳤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 최고급 차 경쟁이 만들어낸 결실로 자동차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20년대 후반에 캐딜락은 패커드, 피어스-애로, 어번과 같은 고급차 메이커와의 경쟁에서 뚜렷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실린더 수가 많은 엔진을 새로 개발해 대형차에 얹기로 결정했다. 당시 대중차에는 4기통이나 6기통 엔진이 주로 쓰였고, 고급차에는 직렬 또는 V형 8기통 이상의 엔진이 올라가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여러 메이커가 먼저 시도한 것은 V12 엔진이었지만, 캐딜락은 그보다 더 큰 V16 엔진을 만든다면 경쟁자들을 확실히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캐딜락의 V16 엔진은 1927년경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경쟁을 의식해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었다. 아울러 새 엔진을 얹을 새로운 섀시와 차체도 함께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국 최고급 차 경쟁의 정점을 보여주다

당시의 승용차 엔진은 지금의 것과 비교하면 정밀성과 기계적 완성도가 낮은 편이어서,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배기량을 키우고 진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실린더 수를 늘리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고급차 메이커라면 누구든 큰 배기량의 다기통 엔진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이미 V8 엔진이 널리 쓰이고 있는 상황에서 V12 엔진이나 V16 엔진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생산과는 별개로, 구조적으로는 직렬 6기통 엔진 두 개를 결합하면 V12 엔진을, V8 엔진 두 개를 결합하면 V16 엔진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완성된 엔진을 내놓느냐는 것이었고, 그래서 캐딜락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

당시 고급차들은 주로 섀시와 구동계는 자동차 회사에서 만들고 보디는 코치빌더가 제작해 얹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캐딜락은 모든 생산과정을 내부에서 진행하기 위해 유명한 코치빌더들을 인수했다. 이때 캐딜락이 인수한 코치빌더가 플리트우드(Fleetwood)와 피셔(Fisher)로, 플리트우드는 나중에 캐딜락의 차체 제작 전문 부문으로 완전히 통합되어 고급 모델에 쓰이는 브랜드로 굳어지게 된다. 그리고 최고급 차에 어울리는 차체를 디자인할 수 있도록, 캐딜락은 디자인 책임자인 할리 얼(Harley Earl)을 유럽으로 보내 유명한 코치빌더들을 견학시켰다.

완성된 엔진은 배기량 7.4L로 최고출력 177마력, 최대토크 44.2kg·m의 힘을 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보잘 것 없는 수치이지만, 당시 캐딜락 V8 엔진보다 60퍼센트 이상 높은 토크를 1,200~1,500rpm이라는 낮은 회전수에서 내어 캐딜락 가운데 가장 크고 무거운 차체를 편안하게 가속할 수 있었다.

설계 역시 진동을 줄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부품 단계에서부터 많은 공을 들였다. 커다란 엔진은 진동을 줄이기 위해 크랭크케이스를 실리콘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고, 고무로 만든 다섯 개의 엔진 마운트로 프레임에 결합해 당시로서는 놀랄 만큼 진동이 적었다. 미적인 면도 소홀하지 않았다. 엔진의 바깥 부분은 고광택 페인트와 알루미늄, 도자기와 크롬으로 치장되었고 배선은 대부분 숨겨져 있어 보닛을 들어 올리면 화려하게 빛나는 엔진을 볼 수 있었다.

차를 구입할 사람의 취향에 맞춰 보디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세단과 페이턴처럼 보편적인 스타일은 물론이고 스포티하고 세련된 쿠페와 카브리올레, 로드스터도 나왔다. 한층 넉넉하고 호화로운 차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임페리얼 세단과 리무진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보디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변형 모델들이 만들어졌다. 차체 제작 전문가인 플리트우드와 피셔의 손에서 만들어진 보디는 70가지가 넘었고, 단 하나만 만들어진 보디도 적지 않았다. 휠베이스가 3.6m에 이르는 긴 차체에는 보디 형태에 따라 최소 2명에서 최대 7명까지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놓였다.

대공황 여파 속에서도 상징성 이어나가

캐딜락의 야심찬 계획이 꾸준히 진행되어 개발이 막바지에 이른 1929년에 예상치 못한 악재가 터졌다. 주식 시장이 붕괴되며 대공황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개발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던 차를 사장시킬 수 없었던 캐딜락은 1930년 1월에 열린 뉴욕 오토쇼에 모델 452 식스틴(Model 452 Sixteen)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 차를 내놓았다. 대공황으로 인한 혼란과 침체 속에서도 반향은 매우 컸다. 초기에는 예상을 웃도는 주문이 밀려들어 고객 인도가 시작된 1930년 4월에만 576대가 출고되었다. 그러나 이런 호황은 오래 가지 못했다. 판매대수는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실제로도 역대 캐딜락 가운데 가장 값비싼 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판매는 급감했지만 여전히 V-16은 캐딜락의 상징적인 모델이었고, 1933년에 선보인 에어로다이내믹 쿠페는 이후 캐딜락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특징적인 디자인 요소를 보여주었다. 개발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의 영향으로, V-16은 당시 GM이 내놓은 차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생산이 이어졌다. V-16은 1936년의 마이너 체인지와 1938년의 엔진 및 디자인 변경을 거치며 명맥을 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 전체가 군수물자 생산체제로 바뀐 1940년까지 적지만 꾸준히 생산되고 팔려 나갔다.

11년 동안 생산된 4,400여 대의 V-16 가운데 3/4는 1930년 한 해 동안 팔렸고, 나머지 기간의 대부분은 판매대수가 연간 100대를 넘기지 못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V-16의 호화로움과 가치는 더욱 빛이 날 수밖에 없었고, 이 차를 손에 넣은 이들은 미국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크고 고급스러운 차의 주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