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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매거진 2014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아우디의 전신인 호르히가 아우토 우니온 시절에 마이바흐,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스포츠 모델에 맞서기 위해 만든 모델이 853 스포트 카브리올레다. 참신한 기술과 탁월한 고속주행 능력, 그리고 고급차로는 비교적 저렴한 값으로 당시 독일 부유층과 유명인사에게 인기를 얻었다. 호르히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 중 하나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호르히는 1899년에 독일 기술자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만든 회사다. 그는 경영관련 분쟁으로 1909년에 자신의 이름을 따른 회사를 떠나 아우디라는 새 회사를 만들었다. 이후 경제공황의 여파로 1932년에 그가 만든 두 회사와 DKW, 반더러가 아우토 우니온이라는 이름으로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우토 우니온은 아담 오펠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자동차 회사였다. 합병 이후에도 네 회사가 힘을 합친 것은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께 ‘은빛 화살’의 전설을 만든 경주차 분야가 유일했다. 승용차 부문에서는 각자 브랜드 이름을 살려 생산했다. 그 가운데 호르히는 고성능 고급차로 이름을 날렸다.

고성능 고급 스포츠 컨버터블로 개발되어

호르히는 1926년에 유럽 자동차 메이커 중 처음으로 8기통 엔진을 대량 생산한 것을 비롯해, 당대 기준으로 매우 진보적인 설계를 선보이며 호평을 얻었다. 1927년에 등장한 호르히 8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러 종류의 8기통 엔진 모델이 나왔다. 호르히의 8기통 엔진은 3.2L로 시작해 점차 배기량이 커졌고, 새로운 설계와 더불어 배기량이 4.9L로 커진 직렬 8기통 엔진이 1935년에 등장했다.

호르히는 이 새 엔진으로 마이바흐, 메르세데스-벤츠 등 당대 독일 최고의 고급차에 견줄 모델을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호르히 8의 후속 모델인 850 시리즈였다. 850 시리즈는 세단, 쿠페, 로드스터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850 시리즈 중 하나인 타입 853은 호르히가 만든 차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차로 여겨지고 있다.

타입 853은 다른 850 시리즈보다 휠베이스가 짧고 차체가 넓은 스포츠 컨버터블 모델이었다. 호르히의 8기통 스포츠 모델은 1927년에 나온 호르히 8 스포트 카브리올레에서 시작해 1932년에는 타입 780으로 발전했고, 이어 853이 뒤를 이었다. 1935년 4월에 열린 베를린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의 값은 14만 제국 마르크였다. 대중차 몇 대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쌌지만 당시 독일에서 가장 고급 스포츠 모델이었던 마이바흐 SW 38이나 메르세데스-벤츠 500K 및 540K에 견줄 정도로 호화로우면서도 값은 훨씬 저렴했다. 덕분에 독일 부유층과 유명인사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853이 큰 인기를 얻은 비결 중 하나는 세련된 8기통 엔진이었다. 다임러 출신인 프리츠 피들러(Fritz Fiedler)가 설계한 직렬 8기통 4.9L 엔진은 OHC 밸브구조를 사용했다. 이 엔진의 OHC 구조는 크랭크샤프트의 회전력을 캠샤프트로 전달할 때 요즘처럼 체인이나 벨트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베벨기어와 회전축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크랭크케이스에 10개의 베어링을 설치해 회전을 매끄럽게 하는 등 진동과 소음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 엔진 크기가 엄청났음에도 최고출력은 100마력에 불과했지만 성능은 뛰어났다. 

1937년에 등장한 고성능 모델 853 A에서는 최고출력이 120마력으로 올라갔다. 이 차는 동기식 4단 수동변속기에 따로 마련된 레버로 오버드라이브 기어를 결합할 수 있는 기술을 사용해 훨씬 쾌적하게 고속으로 달릴 수 있었다. 당시 아우토반을 시속 120~130km로 정속 주행할 수 있는 차는 무척 드물었고, 853 A가 그런 드문 차들 중 하나였다. 최고속도는 시속 140km에 육박했다. 853 A에서는 변속기의 변화와 더불어 전기 시스템이 바뀌었고, A 필러에 방향지시 막대가 추가되었다.

참신한 기술과 화려한 꾸밈새로 인기 얻어

853에는 당시 보편적인 독일 자동차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한 기술이 많이 쓰였다. 진공 배력식 유압 브레이크가 기본으로 쓰였고, 유압으로 차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기술도 쓰였다. 뒤 차축에 스윙 액슬(swing axle) 구조의 단점을 보완한 드 디옹 액슬(de Dion axle) 구조를 사용해 승차감과 주행안정성을 높인 것도 특징 중 하나였다. 853의 드 디옹 액슬은 아우토 우니온의 경주차 개발 노하우가 양산차에 반영된 사례로 꼽힌다.

다만 차체가 매우 무거운 것이 흠이었다. 모델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공차중량은 2.5톤을 웃돌았고 전비중량이 3톤에 약간 못미치는 정도였다. 연비도 4.5km/L로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대 고급차로서는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휘발유 값이 저렴했던 시절이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당대 고급차가 대부분 그랬듯, 차체는 여러 코치빌더가 만들었다. 에르드만 & 로시(Erdmann & Rossi), 글래저(Gläser), 폴 & 루어벡(Voll & Ruhrbeck) 등 당대 독일 유명 코치빌더들이 각자 개성을 살린 모델을 만들어, 같은 모습을 한 차체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실내도 쾌적한 좌석, 공들여 만든 목제 대시보드와 크롬 장식 등이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당시 아우토 우니온 경주차를 몬 아킬레 바르치(Achille Varzi), 베른트 로제마이어(Bernd Rosemeyer) 등도 잘 알려진 853 오너들이다. 특히 로제마이어가 개인적으로 구입한 모델은 에르드만 & 로시가 특별히 만든 유선형 쿠페 보디가 특징으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유럽에서 열리는 콩쿠르 델레강스 행사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853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 생산되었고, 전쟁 중에는 장교용 차로 널리 쓰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만들어진 약 950대의 853 가운데 680여 대가 853 A였다. 853이 생산되었던 호르히의 츠비카우(Zwickau) 공장은 2차대전 이후 공산치하에 놓여, 나중에 동독의 국민차인 트라반트를 생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