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과 르노삼성에 바란다

[ 모터 트렌드 한국판 2014년 4월호 ‘Critic’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국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외국 자본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자동차 회사라는 점 외에도,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작아진 시장 몫이 좀처럼 커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CEO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절절한 호소를 내뱉지만, 소비자들에게 그들의 제품이 더 많이 선택받으려면 호소의 대상부터 바꿔야 한다

2012년에 반 년동안 자동차 매체에 복귀했을 때 맡은 출입처 가운데 국내 메이커는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이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 행사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러면서 두 회사 CEO들이 행사에서 기자들을 대할 때 나타나는 공통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뭔가를 발표할 때마다 공격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을 주어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들의 회사가 한국 회사이며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는 것, 그리고 기자회견 중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변할 때마다 ‘우리 심정 왜 몰라주느냐’는, 제발 우리의 진심을 알아달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당시 두 회사를 이끌고 있던 한국지엠의 세르지오 호샤, 르노삼성의 프랑수아 프로보 대표이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들이 지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CEO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국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외국 자본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자동차 회사다. 이것도 두 회사의 공통점이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두 회사 모두 한 번쯤은 국내 시장에서 호시절을 누린 적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지엠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엠과 결별하고 독자 노선을 걷던 대우 시절에 그랬고, 르노삼성은 닛산 차에 뿌리를 둔 SM5가 현대 쏘나타라는 아성을 위협하며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그랬다.

그럼에도 두 회사가 아직까지 내수 시장에서 현대기아차가 불안감을 느낄 정도의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물론 최근 들어 현대기아차의 내수 시장 점유율이 약간 낮아지고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의 점유율이 약간 높아지고는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과거 그들이 누렸던 호시절로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제품과 서비스 등 여러 측면에서 그들이 현대기아차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불만을 완벽하게 해소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두 회사가 호시절을 누릴 때에도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에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한편으로는 1980년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에 따른 업계의 불균형 발전, 다른 한편으로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자동차 산업의 고속성장 과정에서 생긴 거품이 IMF 구제금융 시기를 겪으며 터진 것이 근본적인 이유였다.

옛 대우자동차에 뿌리를 둔 한국지엠은 전자와 후자로부터 모두 영향을 받았고, 국내 자동차 산업 최후발주자였던 삼성자동차에 뿌리를 둔 르노삼성은 후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해외 자본에게 넘어가는 과정과 그 이후의 전개 과정에서도 공통적인 점을 찾아낼 수 있다. 호시절에 갖췄던 내수 시장을 위한 시스템과 전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채 내수 시장에 걸맞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약해졌다는 점이다.

먼저 두 회사가 겪어온 과정부터 짚어보자. 부도로 몰락하기 전까지 대우차는 인수합병 이전의 현대와 기아에 버금가는 풀 라인업을 갖춰 나가는 과정이었다. 적어도 대우는 시장에서 제품 포트폴리오를 탄탄히 갖추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큰 틀을 갖추는 데 서두른 나머지 한 모델에서 다양한 수요를 흡수하는 데에는 소홀했다. 한정된 자금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부실 경영으로 회사가 무너지며 라인업을 늘리는 데 실패하면서 어느 한 쪽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는 GM의 참여로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후 비슷한 전략을 이어나가면서도 서투르게 접근했다는 점이다. 스테이츠맨이나 베리타스가 대표적인 예다.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모델의 변화가 더뎠던 것도 영향이 컸다. 라세티와 매그너스-토스카의 롱런은 내수 시장에서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SM5라는 단일 차종으로 시작한 삼성차는 프리미엄 전략을 택함으로써 빈약한 포트폴리오라는 약점을 강점으로 활용하려고 했고, 라인업을 SM3과 SM7로 늘릴 때까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르노삼성 역시 회사가 안정을 찾기까지 너무 오랜 기간동안 주력 모델에 큰 변화가 없었고, 기본 모델을 닛산에서 르노 것으로 바꾸면서 달라진 디자인은 그동안 르노삼성이 쌓아온 보수적 이미지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브랜드 차원에서는 프리미엄 전략을 이어나갔지만 제품 특성은 더 이상 프리미엄을 내세우기가 어려워졌다. 

토대와 방향은 달랐지만, 이들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몫을 획기적으로 키우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닮아 있다. 근본 원인은 과거 부실경영으로 회사가 외국 자본에 넘어간 데에 있지만, 경영권을 손에 쥔 외국 자본이 한국 시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자원을 활용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한국 소비자의 성향에 맞춰 제품을 충분히 현지화하지 못했고 현지화한 새 제품을 내놓기에 알맞은 시기도 놓쳐버렸다. 그리고 외국 자본이 인수하기 전에 지니고 있던 브랜드 이미지와 정책과 전략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변화할 시기를 놓치면서 재도약 기회도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 자동차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만드는 제품인 자동차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값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제품이 살아남아 성공할 수 있다. 시장에서 밀리는 제품은 시장을 이끄는 제품에 비해 폭 넓은 소비자를 만족시킬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아무리 자동차 업계의 기술이 평준화되어간다고는 해도, 자동차 회사가 가진 기술이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표현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는 손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도 한국지엠이나 르노삼성은 우리나라 여건을 많이 반영한 차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용물의 변화는 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부분만 한국적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 흐름은 물론 변화가 더디기로 소문난 정부 정책조차도 따라잡지 못하는 파워트레인, 폭넓은 소비자를 끌어당길 수 있는 라인업 구성 등은 이들이 현대기아차에 비해 분명히 열세인 부분이다. 최근들어 미약하게나마 이들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가고 있는 것은 품질 향상의 영향도 있지만, 마케팅이나 서비스 등 제품 외적인 부분에서 전력을 기울인 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제품 자체의 매력을 높여야 할 순서다. 현대기아차가 그간 많이 발전했고 내수 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해서 세계 모든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릴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지엠이나 르노삼성 차들의 플랫폼 경쟁력이 뚜렷하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큰 틀은 그대로 이어지더라도 시장 몫을 키울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 시장은 결코 작지 않다. 성장률이 정체 상태이기는 해도, 연간 판매대수가 120만 대로  여전히 프랑스와 캐나다 다음으로 규모가 큰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지금 내수 시장 점유율이 낮다고 충분히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점유율이 커지기는 어렵다. 현대기아차가 아무리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80%에 육박하는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과점 상태를 해소하려면 경쟁 업체들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두 회사 모두 글로벌 자동차 그룹의 일부로서, 치열한 경쟁 속에 그룹이 살아남기 위해 경영진이 내리는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한계는 있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이라는 한 회사의 CEO라 하더라도, 그룹 차원에서 보면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대기업에 속한 한 부서의 부서장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한국 자동차 업계의 큰 축을 이끄는 사람들이다. 시장에서 브랜드 입지를 바꾸려면 한국 시장의 불합리성과도 싸워야 하지만, 본사와도 싸워야 한다. 적은 비용으로 융통성 있게 새 모델을 개발생산할 권한과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 주류 핵심 차종으로 정면승부가 어렵다면 현대기아차가 놓치고 있는 영역을 채우는 모델이라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야 규모를 키울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CEO들이 아무리 ‘우리도 한국에서 차를 만드는 한국 회사이니 우리 차를 많이 사달라’고 힘주어 호소해도 국내 언론과 소비자가 끊임없이 불신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제품에서 그들의 의지가 읽히지 않아서다. 세월이 흘러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과거 잘 나가던 시기의 시장 몫을 다시 챙기려면 한국적인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승부가 너무 늦어지면 어쩔 수 없이 소비자와 언론의 우려처럼 본사의 하청공장이 되거나 한국 시장에서 손을 떼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에게는 CEO와 경영진의 방향 전환이 절실하다.

실패가 이야기하는 교훈

GM이 대우를 인수한 이후 제품 포트폴리오 확립 과정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를 내놓은 것이다. 라인업에 대형 고급 세단이 있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에 분명히 필요한 모델이기는 했다.

문제는 스테이츠맨은 홀덴으로부터 들여올 당시부터 경쟁력과 카리스마가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제원이나 개념에서는 쌍용 체어맨과 견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 모르지만, 이미 플랫폼과 꾸밈새 모두 신선함을 느낄 수 없는 구식이었고 엔진 라인업과 편의장비도 빈약했다.

나아가 매그너스나 토스카와 스테이츠맨을 이어줄 다리 역할을 할 모델도 없었고 동급 경쟁차를 고려하던 사람들을 끌어올 만큼 제품과 브랜드의 흡인력도 부족했다. 판매부진으로 조용히 재고 처분 후 GM대우 라인업에서 사라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GM대우 경영진이 스테이츠맨의 실패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베리타스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 데에서 드러났다. 뼈대부터 다시 만든 새 모델이면서도 스테이츠맨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부분들이 완벽하게 개선되지도 않았고, 이미 경쟁 모델은 V8 엔진을 갖춘 상황에서 V6 엔진만으로 최고급 모델임을 강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소비자들이 중간 단계에서 거쳐갈 모델은 없었다.

이처럼 제품 자체도 부족했지만, 모델을 지속적으로 운영하지 않은 것이 더 큰 실책이었다. 판매가 부진하더라도 베리타스가 나올 때까지 스테이츠맨을 브랜드 기함으로 남겨두었어야 했다. 그래야 그 차급 모델이 그 브랜드에서 꾸준히 나온다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베리타스도 불과 2년여 만에 판매가 중단되었으니 중고차 값은 바닥을 치고 그 차급에서 소비자의 신뢰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사실 GM대우에게 급했던 것은 대형 고급 세단보다 토스카 윗급 모델이었다. 그래야 토스카를 샀던 사람들이 한 차급씩 더 큰 모델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수 있고, 스테이츠맨이나 베리타스가 최고급 모델로서의 존재감이 부족하더라도 어느 정도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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