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4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경박단소한 엔진으로 고출력을 얻을 수 있다는 로터리 엔진의 특성에 주목해 실용화한 마즈다가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차가 코스모 스포츠다. 판매대수는 많지 않지만 세계 첫 2로터 로터리 엔진 승용차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마즈다의 이미지를 확립한 차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50년대에 NSU에서 일하던 펠릭스 반켈은 실용적인 로터리 엔진을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로터리 엔진은 타원형 하우징 안에서 삼각형에 가까운 로터가 회전하며 4행정을 반복해 힘을 내는 구조였다. 개발자의 이름을 따 반켈 엔진이라고 불린 이 엔진은 일반적인 피스톤 왕복형 엔진보다 단순한 구조에 힘입어 작고 가벼우며 진동이 적다는 특징이 있었다. 또한 크랭크샤프트를 더 빨리 회전시킬 수 있어 높은 출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마즈다는 이런 로터리 엔진의 특성에 주목한 여러 회사 중 하나였고, 이를 자동차에 활용하기 위해 1961년에 NSU 및 반켈과 기술제휴를 맺고 엔진 개발을 시작했다. 일본 내에서도 자동차 생산에 뒤늦게 뛰어든 마즈다는 새로운 기술로 선발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로터리 엔진 고질병 해결해 실용화의 문 열어

마즈다는 우선 NSU에 엔지니어를 파견해 로터리 엔진과 관련한 기술을 흡수하는 한편 야마모토 겐이치(山本健一)를 중심으로 로터리 엔진 연구부를 만들어 개발에 전념하도록 했다. 본격적으로 로터리 엔진 실용화에 나섰지만, 그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일정한 시간 이상 엔진을 사용하면 로터가 하우징 벽면을 긁는 마모 현상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마모 때문에 로터와 하우징 사이에 틈이 생기면 혼합기와 배기가스가 새는 것은 물론, 흡기와 폭발 행정 때 압력이 떨어져 엔진이 제 성능을 내지 못한다. 따라서 엔진의 성능과 내구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마즈다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도 로터리 엔진의 실용화 과정에서 똑같은 문제에 부딪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은 탓에, 이 마모 현상에는 ‘악마의 손톱 자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로터리 엔진에 사활을 건 마즈다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63년 도쿄 모터쇼에 시험 중인 엔진을 우선 선보였다. 그리고 로터리 엔진과 회사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도록 상징적인 차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유럽 스타일의 디자인과 작업 과정을 통해 날렵한 2도어 쿠페 보디가 만들어졌고, 1964년 도쿄 모터쇼에 코스모 스포츠라는 이름의 시제차가 공개되었다. 당시 일본 차에 흔치 않았던 스포츠카라는 장르에 로터리 엔진이라는 생소한 기술, 그리고 미래적인 디자인을 고루 갖추어 금세 화제가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 엔진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로터리 엔진 실용화 과정에서 ‘악마의 손톱 자국’ 문제에 부딪쳐 개발을 포기한 회사들이 속출했지만 마즈다는 꾸준히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로터의 꼭지점 부분에서 로터와 하우징의 밀폐 상태를 유지하는 에이펙스 실을 카본에 알루미늄을 함침해 만든 소재로 만들어 충분한 내구성과 윤활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비로소 악마의 손톱자국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로터리 엔진 실용화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완성도를 높이고 충분한 성능을 얻기 위해서는 이후로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마즈다는 시험 제작한 엔진을 80대의 코스모 스포츠 시제차에 얹어 2년 여에 걸쳐 철저한 시험을 했다. 그리고 1967년 5월에 드디어 코스모 스포츠의 양산 및 시판과 더불어 로터리 엔진의 완성을 선언했다.

유럽식 디자인의 프런트 미드십 스포츠카

코스모 스포츠에 쓰인 엔진은 양산차에 쓰인 첫 2로터 로터리 엔진이었다. 1964년에 로터리 엔진을 얹은 첫 양산차로 만들어진 NSU 스파이더에는 로터가 하나뿐인 로터리 엔진이 쓰였다. 마즈다의 1.0L 로터리 엔진은 491cc 유닛을 두 개 연결한 것으로 높은 압축비와 로터당 두 개의 스파크플러그 등에 힘입어 최고출력 110마력, 최대토크 13.3kg‧m의 비교적 뛰어난 성능을 내었다. 앞 차축 뒤에 놓인 작은 크기의 엔진에서 나온 힘은 4단 수동변속기를 거쳐 뒷바퀴로 전달되었다. 코스모 스포츠에서 시작된 이와 같은 프런트 미드십 엔진 배치는 이후 마즈다 스포츠 모델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련된 디자인의 차체 아래쪽에는 앞 더블 위시본, 뒤 드 디옹 액슬 방식 서스펜션이 자리를 잡았다. 전용 조립 라인에서 만들어진 길이 4.1m, 너비 1.6m 남짓한 낮은 차체는 무게가 940kg으로 비교적 가벼웠다. 정지 상태에서 400m 거리를 가속하는 데에는 16.3초가 걸렸고 최고속도는 시속 185km에 이르렀다. 

상징성이 큰 모델이었던 만큼 꾸밈새도 화려했다. 스티어링 휠 너머에는 계기판과 센터 페시아가 이어진 형태의 대시보드가 자리를 잡았고, 주행과 관련된 7개의 원형 계기가 나란히 놓여 스포츠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두 개의 좌석을 비롯해 주요 내장재는 가죽을 씌워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값은 출시 당시 148만 엔으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토요타 2000GT보다는 약간 낮았지만 그 시절에 일본 최고급차로 여겨지고 있던 토요타 크라운, 닛산 세드릭이 100만 엔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평범한 일본인에게는 꿈의 차나 다름 없었다.

마즈다는 성능과 경쟁력을 확인하는 한편 해외 시장에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1968년 8월에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마라톤 드 라 루트 경주에 두 대의 코스모 스포츠를 출전시켰다. 84시간 동안 이어진 이 경주에서 한 대는 종료 3시간을 앞두고 중도포기했지만, 나머지 한 대는 포르쉐, 란치아 등과 경쟁하며 종합 4위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모터스포츠 활동을 비롯해 수출을 위한 노력도 기울였지만, 일본 내에서는 워낙 비싼 값으로, 수출 시장에서는 낮은 인지도 때문에 많은 수가 팔리지는 않았다. 데뷔 후 1년 남짓 지난 뒤인 1968년에 마이너 체인지를 거친 코스모 스포츠는 1972년 9월까지 5년 5개월 동안 모두 1,176대가 생산되었다. 

판매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코스모 스포츠는 마즈다 역사뿐 아니라 자동차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차다. 코스모 스포츠 이후 로터리 엔진은 마쓰다의 상징이 되었고, 파밀리아와 루체 등 일반 승용차는 물론 RX-7과 RX-8 등 스포츠카에도 쓰여 최근까지 이어짐으로써 마즈다는 로터리 엔진 실용화에 앞장선 메이커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