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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2014년 6월 3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

2015년이면 시간여행을 소재로 세계인에게 볼거리와 웃음을 안겨준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나온지 30년이 된다. 두 개의 속편이 나올 정도로 영화의 인기는 대단했고, 영화 속 타임머신으로 등장한 드로리언 DMC-12도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차는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차였는데, 차보다는 뒷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한 차이기도 하다.

이 차는 존 드로리언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1973년에 세운 자동차 회사에서 만들었다. 그는 미국 GM에서 스포츠 모델을 여럿 개발해 성공으로 이끌어 유명해졌고,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자신의 회사에서도 스포츠카를 만들 생각이었다. 큰 규모의 회사는 아니었기에 개발과정에서 외부의 힘을 빌리면서, 그의 첫 차는 자의 반 타의 반 다국적 차가 되었다.

우선 엔진부터 다른 회사에서 사와야 했다. 여러 회사 엔진이 물망에 올랐는데, 최종 결정된 것은 프랑스 푸조와 르노, 스웨덴 볼보가 공동 개발하고 르노가 생산한 프랑스제 V6 엔진이었다. 뼈대인 섀시는 스포츠카로 이름난 영국의 로터스가 설계했다. 로터스가 자신들이 만들던 스포츠카인 에스프리를 응용해 DMC-12를 설계하면서 자연스럽게 영국산 부품도 일부 쓰였다. 디자인은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인 이탈리아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는데, 위로 들어올려 여는 문과 독특한 광택을 지닌 스테인리스 차체를 지닌 혁신적 디자인이 돋보였다.

미국 회사의 차였지만 생산은 북아일랜드에서 이루어졌다. 북아일랜드 정부가 값싼 노동력과 저렴한 부동산 비용이라는 매력적인 조건을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이 곧 증명되었다. 채용된 근로자들은 자동차를 만든 경험이 전혀 없었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 많아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 소량 생산 차로서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결국 초기에 생산된 차는 품질이 형편 없었다. 성능도 스포츠카라기에는 별볼일 없었다.

드로리언의 판매가 시작된 1981년은 미국이 불경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던 탓에 차는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나아가 존 드로리언은 1982년 가을에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기까지 했다. 2년 뒤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DMC-12의 생산은 중단된 뒤였고, 그는 자동차 사업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21개월 동안 만들어진 9,000여 대를 끝으로 드로리언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한 덕분에 뒤늦게나마 모습과 이름을 알리며 유명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