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4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토요타의 대표적인 4륜구동차인 랜드 크루저의 2세대 모델에 해당하는 40 시리즈는 수출을 염두에 두고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뛰어난 내구성으로 해외 시장에서 토요타의 이름을 높인 것은 물론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24년 동안 생산되었다.

토요타 랜드 크루저는 토요타는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4륜구동 차로 지프, 랜드로버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팔리고 알려진 SUV 중 하나다. 랜드 크루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토요타가 만든 AK10형 소형 화물차 설계를 바탕으로 1951년부터 생산된 BJ형 4륜구동차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4륜구동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토요타가 독자 모델 개발을 준비할 무렵, 일본 경찰예비대가 4륜구동차 입찰에 참여를 제안하면서 토요타의 4륜구동차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경찰예비대로의 납품이 무산되자 토요타는 수출을 위해 개발을 이어나갔고, 결국 1951년에 첫 모델인 BJ가 완성되었다. 형식명인 BJ는 B형 엔진을 사용한 지프(Jeep)형 차라는 뜻이었다. 상표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 만든 랜드 크루저라는 이름이 처음 쓰인 것은 1954년이었다. 그 뒤로 랜드 크루저라는 모델명은 지금까지 이어져, 토요타에서 가장 오랫동안 쓰이고 있는 모델명으로 남아 있다.

해외 시장 노리고 내구성 충실하게 만들어

60년 역사 가운데 가장 인기를 얻으며 랜드 크루저를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60년에 등장한 40 시리즈다. 40 시리즈는 토요타의 해외 시장 진출 전략과 맞물려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다. 이는 토요타의 초기 미국 진출에서 얻은 경험이 밑거름이 되었다.

1958년에 승용차인 크라운을 앞세워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 토요타는 품질과 완성도, 내구성 모두 당시 미국 시장 환경과 맞지 않아 고배를 마셨고, 결국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 시장으로 전략적 목표를 수정했다. 그러면서 트럭 섀시를 바탕으로 만들어 승용차보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개발도상국 도로 환경에 적합한 랜드 크루저를 주력 제품으로 내세웠다. 

1960년 1월부터 생산이 시작된 40 시리즈는 수출 우선 정책에 따라 해외 판매가 먼저 시작되었고, 일본 시장에는 8월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픽업 및 섀시 버전에 이어 하드톱 모델이 추가되었다. 이전 모델인 20 시리즈와 20 시리즈의 롱 버전인 30 시리즈에 이어 나온 40 시리즈는 20 시리즈와 라디에이터 그릴과 테일램프 등 일부만 다를뿐 외관상으로는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섀시를 대폭 개선하는 등 구조적인 변화가 커서 새 모델로 취급되었다. 

엔진은 1954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F형 직렬 6기통 3.9리터 휘발유 엔진을 이어받았고,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리지드 액슬에 리프 스프링을 조합했다. F형 휘발유 엔진을 얹은 모델에는 FJ에 40 시리즈를 뜻하는 4와 휠베이스 길이를 뜻하는 한 자리 숫자를 더한 형식명이 쓰였다. 처음에는 휠베이스가 짧은 FJ40만 나왔는데, 적재공간이 좁다는 지적에 차체 길이를 늘려 적재공간을 확보한 FJ43과 FJ45가 추가되었다. 차체는 소프트톱, 하드톱, 픽업, 스테이션 왜건, 소방용 등이 다양하게 생산되었다. 한편 생산은 토요타가 생산한 섀시를 차체를 제작하는 아라카와(荒川)판금공업이 인수해 최종조립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중동과 동남아시아 시장에 수출해 얻은 성과로 자신감을 얻은 토요타는 곧 미국 시장에도 랜드 크루저를 내놓을 수 있었다. 일본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랜드 크루저는 지프와 비슷한 성능과 충분한 내구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한때 미국에서 판매된 일본차 중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미국 시장에는 처음부터 F형 휘발유 엔진을 얹은 FJ 모델만 판매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미국에서는 40 시리즈의 FJ형 모델인 FJ40을 랜드 크루저의 원형으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험로가 많은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1960년대 말에는 지프와 랜드로버의 판매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또한 브라질에서는 1961년부터 현지 생산이 시작되었고, 현지에서는 반데이란테(Bandeirante)라는 이름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반데이란테는 현지에서 생산된 메르세데스-벤츠 디젤 엔진을 얹었다.

디젤 엔진 얹은 후 제2의 전성기 누려

일본에서도 1964년에 열린 도쿄 올림픽을 전후해 마이카 붐이 일어나면서 랜드 크루저의 판매도 함께 늘어났다. 1965년까지 누적 생산대수는 5만 대 수준이었지만, 1968년에는 10만 대를 넘어설 정도로 판매가 급증했다. 1967년에는 스테이션 왜건 형태의 가지치기 모델인 55 시리즈가 나오면서 FJ45의 생산이 중단되었고, 아울러 40 시리즈도 마이너 체인지 되었고 2도어 숏보디 모델을 제외한 나머지 모델은 휠베이스 길이가 통일되었다.

40 시리즈는 여러 변형 모델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1966년부터 생산된 2도어 하드톱 모델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모델은 후방 시야확보를 돕기 위해 차체 뒤쪽 모서리에 곡면 유리창이 추가되었는데, 이 곡면 유리창은 이후 1963년부터 쓰인 플라스틱 재질의 흰색 지붕과 함께 40 시리즈의 특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1973년에는 수출용 롱 휠베이스 모델에 처음으로 3.6리터 디젤 엔진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1974년에는 일본 내수용 모델에도 새로 개발된 B형 3.0리터 디젤 엔진이 쓰이기 시작했다. 디젤 엔진 모델은 뛰어난 토크와 연비는 물론 기어비 조절로 성능이 높아져 호평을 얻었다. 또한 일본에서는 이전의 F형 휘발유 엔진보다 배기량이 작아지면서 소형 화물차로 분류되어 세제혜택의 대상이 되었다. 그 덕분에 판매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일본에서도 랜드 크루저는 디젤 모델이 주력 제품이 되었다. 한편 엔진 변경의 영향으로 형식명도 BJ로 시작하는 것으로 바뀌어, 일본에서는 40 시리즈의 FJ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디젤 엔진과 더불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40 시리즈는 이후로 꾸준히 업그레이드되며 명맥을 이어나갔고, 1984년에 환경 및 안전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 개발된 70 시리즈에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24년 동안 해외 생산분을 포함해 110만 대 이상 생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8년에 신진자동차에 의해 픽업 모델이 조립 생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