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5년 2월 9일자에 ’21세기 브랜드로 부활한 엔진 개발의 선구 마이바흐 부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1846년 2월 9일에 독일 하일브론에서는 자동차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태어났다.   다른 자동차 선구자들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엔진 분야에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바로 빌헬름 마이바흐다. 그는 카를 벤츠와 함께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틀리프 다임러의 회사에서 일하며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했다.

그는 다임러가 처음으로 고용한 직원이었지만, 뛰어난 능력 덕분에 곧 기술 책임자를 맡으며 나중에는 동업자나 다름없는 관계로 발전했다. 1883년에 개발한 다임러의 첫 엔진, 1885년에 자전거에 엔진을 얹어 탄생한 세계 최초의 모터사이클, 1886년에 만든 첫 네 바퀴 자동차인 ‘엔진 마차’도 두 사람의 협력에서 비롯되었다. 마이바흐는 다임러의 회사에서 기술 책임자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다임러의 제품 이름인 메르세데스가 널리 알려진 것도 설계를 맡은 그의 공이 컸다. 나중에 다임러와 벤츠의 회사가 합병하면서 제품 브랜드를 메르세데스-벤츠로 정할만큼 메르세데스는 뛰어난 성능과 신뢰성으로 다임러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다임러가 1900년에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리를 지키던 마이바흐는 1907년이 되어서야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1909년에 유명 인사였던 페르디난트 체펠린 백작의 후원을 받아 장남 카를과 함께 엔진 회사를 만들었다. 비행기와 더불어 항공기 시대의 문을 연 것으로 유명한 비행선에 쓸 엔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마이바흐 부자의 설계로 완성된 엔진에 힘입어, 체펠린 비행선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용으로도 쓰여 적잖은 성과를 거두었다.

엔진 회사로서 마이바흐가 더욱 크게 성장한 것은 전쟁이 끝난 뒤였다. 전후 독일에서 항공기 제작이 금지되어 쓸모가 줄어든 비행선의 엔진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도록 개조하는 사업이  수익을 올린 덕분이었다. 이 즈음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손댄 분야 중 하나가 자동차였는데, 1930년부터 만들어진 체펠린 시리즈는 당대 독일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차로 이름을 날렸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인 1941년에 자동차 생산을 중단한 마이바흐는 엔진 개발과 생산에 집중했고, 이후 철도차량, 선박, 군용차, 발전설비 등에 쓰이는 상용 엔진 전문업체인 MTU 프리드릭샤펜(MTU friedrichshafen)으로 발전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뛰어난 엔진 개발에 힘을 쏟은 카를 마이바흐는 아버지의 생일과 며칠 차이나지 않는 1960년 2월 6일에 숨을 거두었다. 한때 회사 차원에서 자동차 생산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마이바흐는 21세기 들어서야 모회사인 다임러에 의해 초대형 호화 승용차 브랜드로 부활할 수 있었다. 판매 부진에 따른 생산 중단으로 명맥이 끊길 뻔했던 마이바흐는 최근 메르세데스-마이바흐라는 새 브랜드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