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5년 5월 11일자에 ‘유럽차 동경한 미 캐딜락 알란테, 디자인 빌렸다 품질마저 잃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지금은 정도가 덜하지만, 전통적으로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유럽 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전반적인 문화에서도 유럽에 대한 동경이 엿보이듯 자동차도 마찬가지여서, 특히 고급 승용차에서는 오랫동안 유럽 차를 닮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최근까지도 기술 면에서는 독일 차를, 디자인 면에서는 이탈리아 차를 본보기로 삼으려 애를 썼다. 

이탈리아는 예로부터 예술적 감각을 지닌 자동차를 디자인하거나 소량생산하는 전문업체인 카로체리아가 유명하다. 일찌감치 독자적인 디자인 능력을 갖춘 미국 자동차 회사들도 특별한 차를 만들고 싶을 때에는 카로체리아의 도움을 받곤 했다. 이탈리아 디자인을 접목한 차들 가운데에는 비교적 호평을 얻으며 성공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캐딜락이 마지막으로 회사 밖에서 이루어진 디자인으로 만들었던 차인 알란테는 후자에 속한다.

1980년대 중반에 캐딜락은 스포티한 성격의 고급 컨버터블을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메르세데스-벤츠 SL과 재규어 XJS 등 유럽산 고급 컨버터블을 견제하려는 목적이었다. 세련되면서도 특별한 차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캐딜락은 페라리 디자인으로 유명한 피닌파리나와 손을 잡기로 했다. 당시 캐딜락을 포함한 GM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던 인물은 척 조던 이었는데, 대단한 페라리의 팬이었던 그는 피닌파리나라면 유럽 차 분위기를 살린 캐딜락을 디자인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디자인을 피닌파리나에 맡긴 것까지는 좋았지만, 알란테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디자인은 유럽 차의 세련미와 캐딜락의 특징이 잘 어우러졌지만, 설계와 성능은 미국차의 특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탓에 유럽 차의 주행감각과는 거리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생산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대량생산에 맞춰진 미국식 생산 시스템보다는 카로체리아의 소량생산 시스템이 알맞다고 판단한 것이 의외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알란테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뼈대를 만들어 비행기에 실어 이탈리아의 피닌파리나로 보내고, 피닌파리나에서 직접 생산한 외부 차체를 결합한 뒤에 다시 비행기 편으로 디트로이트로 보내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높아진 물류비용은 차값에 그대로 반영되어, 당시 판매되던 캐딜락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표가 붙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재규어의 경쟁차보다는 쌌지만, 캐딜락을 사려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값이었다. 게다가 오랜 운송과정, 생산방식의 차이 등으로 품질까지 좋지 않았다. 그 결과 알란테는 7년 동안 2만 1,000여 대만 팔리며 실패작으로 기록되었고, 캐딜락은 이후로도 한동안 유럽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