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매거진 2015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메르세데스-벤츠의 상징적인 최고급 모델로 개발된 600은 당대 최고와 최신 기술을 한데 모은 차였다. 아우토반에서 숙성된 승차감과 핸들링에 스포츠카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성능, 권위적이고 호화로운 디자인과 꾸밈새로 오랫동안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상징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상위 모델은 개발명 W186과 W189의 300 시리즈였다. 300은 당시 서독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가 관용차로 쓰면서 ‘아데나워 메르세데스’라는 별명을 얻었고, 분단된 독일의 민주진영인 서독의 부흥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꾸밈새의 대형 호화 세단인 300은 독일은 물론 세계 각지의 유명인사, 왕족과 귀족에게 높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300은 기술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메르세데스-벤츠를 생산하던 다임러 벤츠(지금의 다임러)는 300보다 더 고급스럽고 진보한 기술로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를 상징할 수 있는 최상위 모델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전쟁 이전 메르세데스-벤츠 최상위 모델이던 770K ‘그로서 메르세데스’의 위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모델이 목표였다.

메르세데스-벤츠 최고와 최신 기술 모두 담아
디자인은 폴 브라크(Paul Bracq)와 브루노 사코(Bruno Sacco)가, 설계는 루돌프 울렌하우트(Rudolf Uhlenhaut)와 프리츠 날링어(Fritz Nallinger)가 지휘했다. 울렌하우트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새로운 최고급 모델을 위해 세 가지 핵심 목표를 정했다. 탑승자의 안락함, 안전성, 성능을 당시 메르세데스-벤츠가 가진 새롭고 우수한 기술을 통해 최고 수준으로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W100이라는 개발명을 얻은 새 차의 본격적인 개발은 1956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메르세데스-벤츠가 가지고 있던 기술은 물론 새롭게 개발된 기술도 대대적으로 반영되었다. 다임러 벤츠는 W100 개발 관련 비용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300을 뛰어넘는 크기의 대형 세단에 걸맞은 엔진도 필요했다. 300에 쓰인 직렬 6기통 3.0리터 엔진은 고급차에 어울리는 주행특성을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고급차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던 롤스 로이스와 벤틀리, 캐딜락은 모두 배기량 6리터가 넘는 V8 엔진이 주력이었다.

이에 W100에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전후 처음으로 개발한 V8 엔진인 M100이 심장으로 쓰였다. 배기량 6.3리터에 보쉬의 기계식 연료분사장치를 사용한 새 V8 엔진은 비교적 낮은 영역인 2,800rpm에서 57.0kg‧m의 최대토크가 나왔고, 250마력의 최고출력은 4,000rpm에서 나왔다. 저속에서도 부드럽게 달릴 수 있도록 조율되었지만, 풍부한 토크 덕분에 뛰어난 가속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스티어링 컬럼에 레버가 있는 4단 자동변속기는 다임러 벤츠가 직접 만들었다. 이 변속기는 토크 컨버터 대신 습식 커플링과 플래니터리 기어를 사용하는 방식이어서 엔진 힘을 효과적으로 구동계에 전달했다.
W100에 쓰인 첨단 기술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서스펜션이었다. 구조적으로는 W189 300의 후속 모델로 1962년에 선보인 W112 300 SE와 마찬가지로 앞 더블 위시본, 뒤 스윙 액슬 방식의 네 바퀴 독립 서스펜션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스프링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에어 스프링을 사용했다. 에어 스프링은 메르세데스-벤츠가 처음 개발한 것도, 순수하게 독자 개발한 기술도 아니었지만 시판 승용차에 사용된 예가 거의 없을 정도로 수준 높고 값비싼 기술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독일의 소규모 자동차 회사인 보르크바르트(Borgward)가 개발한 에어 서스펜션을 개량하는 한편 주요 부품을 보르크바르트로부터 공급받았다. 에어 서스펜션은 진동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주행 안정성을 높여 최고급 차에 어울리는 쾌적한 승차감을 자아내었다. 또한, 지상고를 조절할 수 있어 운전석에서 차체 높이를 최대 50mm까지 높이거나 낮출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우토반에서 안정감 있게 고속주행할 수 있는 차를 만들기 위해 높은 수준의 섀시와 브레이크 튜닝이 이루어졌다. 네 바퀴에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가 쓰였고, 강력한 제동력을 얻기 위해 에어 서스펜션에 필요한 공기를 공급하는 에어 펌프로부터 얻은 공기압을 제동력을 높이는데 활용하는 방식의 브레이크 서보를 달았다.

초대형 세단이면서도 스포츠카에 필적한 성능
7년 여에 걸쳐 개발된 W100은 196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600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데뷔했다. 한 해 먼저 선보인 300 SE와 더불어 이전 세대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스타일은 권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였다. 차체는 4도어 세단과 롱 휠베이스 모델인 4도어 풀만의 두 종류를 기본으로 몇 가지 변형 모델이 만들어졌다.
600은 엄청난 크기와 무게에도 놀라운 성능을 냈다. 기본 모델인 4도어 세단은 길이 5.45m에 공차중량 2,600kg, 롱 휠베이스 모델인 4도어 풀만은 길이 6.24m에 공차중량 2,770kg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0→시속 100km 가속과 최고속도는 각각 9.7초와 시속 205km, 12초와 시속 200km에 이르렀다. 1964년에 선보인 첫 포르쉐 911의 0→시속 100km 가속과 최고속도가 8.7초와 시속 210km였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능이었다.
실내 구성은 기본적으로 단순했지만, 많은 부분과 장비를 선택할 수 있었다. 정확한 발표는 없었지만 완전히 똑같은 구성을 갖추고 출고된 차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내외 주요 장비는 대부분 버튼이나 스위치를 누르면 자동으로 조절되거나 작동하게 만들어졌다.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아 차체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에어 서스펜션이 있었고, 도어와 트렁크 리드도 자동으로 여닫을 수 있었다. 독립식 앞좌석은 앞뒤 방향은 물론 높낮이와 등받이 각도도 스위치로 조절할할 수 있었다. 뒷좌석은 앉는 부분만 앞뒤로 움직였지만 등받이와 앉는 부분이 연결되어 자동으로 알맞은 각도가 되었다.

600은 이후 17년 동안 생산되었지만 디자인의 변화는 거의 없이 변속기와 유압장치 등 부분적인 기술적 업그레이드만 이루어졌다. 작은 변화들도 판매지역과 법규의 변경을 반영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오히려 같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생산된 것이 차의 가치를 높였다.
1981년까지 17년 동안 2,677대가 생산된 600은 세계 각국 정상과 유명인들이 선택해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상징 역할을 톡톡히 했다. 600을 구매하거나 탔던 인물로는 교황 바오로 6세와 존 레논 등 서방세계 인사도 있었지만 피델 카스트로, 마오쩌둥, 폴 포트, 김일성 등 공산권과 제3세계 독재자도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