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4월 16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현대자동차는 4월 초에 열린 2017 서울모터쇼에 제네시스 전시관을 따로 만들어 G90 스페셜 에디션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알렸다. 현대는 G90 스페셜 에디션과 더불어 전시관 곳곳을 맞춤 제작과 관련한 주제로 꾸몄고, 기자회견에서는 루크 동커볼케 제네시스 디자인 담당 전무가 G90 스페셜 에디션에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비스포크 수트’처럼 고객의 취향에 딱 맞는 차를 만들겠다는 브랜드 정신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는 곧 G90 스페셜 에디션이 제네시스 브랜드의 양산차에 ‘비스포크’ 개념을 반영해 만든 차라는 이야기다.

비스포크(bespoke)는 개인 취향에 맞춰 주문 제작했다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로 커스텀메이드(custom-made)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공장에서 똑같은 크기와 형태로 대량 생산되지도 않고, 이미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구매자의 취향을 반영해 주문이 들어오면 만드는 것이 비스포크 제품의 특징이다. 우리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비스포크 수트 즉 맞춤 양복으로, 주문한 사람의 체형을 재고 원단에서 부자재, 디자인과 재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제작자가 최대한 주문자의 취향을 반영해 완성한다.

요즘 자동차 업계에도 비스포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늘고 있다. 주로 차체 색, 내장재 재질, 가죽과 스티치, 카페트 종류와 색상, 오디오 시스템을 비롯한 편의장비 등에 주문자 취향을 반영한다. 롤스로이스를 비롯한 럭셔리 브랜드들은 일찍부터 ‘같은 차를 찾기 어렵다’고 할 만큼 대다수의 차를 맞춤 제작해 왔고, 20세기 말부터 고급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프리미엄 브랜드 대부분이 비슷한 서비스의 규모를 키우고 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포르쉐, 맥라렌, 애스턴 마틴 등 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비스포크 서비스가 거의 프리미엄 브랜드의 필수 요소가 되어 가고 있는 분위기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표방하는 제네시스도 이런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도 있지만 수익성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스포크 문화를 이해한다면 무작정 뛰어들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서양에서 비스포크 제작 방식이 나름의 문화를 이룬 것은 중세 유럽 귀족사회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배경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사람의 손이 많이 가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값은 기성품보다 훨씬 더 비싸다. 그래도 제품에 만족한다면 소비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비스포크 제작의 핵심은 사실 제작자의 능력이다. 제품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뿐 아니라 주문제작 과정에 경험이 풍부하고 기술이 뛰어나야 하며, 주문자의 취향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소통능력이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하는 만큼, 비스포크 제작자는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쯤 되면 제네시스 브랜드가 비스포크 서비스와 관련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브랜드 정신’을 이야기하며 운만 띄우는 선에서 곁들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비스포크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소비자가 수긍할 배경이 있어야 한다. 흔히 헤리티지라고 말하는 역사와 전통의 유산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 가운데에도 비교적 최근에 비스포크 서비스 관련 조직을 만들거나 자회사를 세운 곳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오래 전부터 소규모로 맞춤 제작 서비스를 하고 있던 곳이 많다. 또한, 꼭 완성차 회사가 아니더라도 관련된 일을 하는 장인들이 문화와 산업을 유지해 왔다.

그런 배경이 제네시스에게는 없다. 비단 제네시스뿐 아니라 유럽 이외 지역에 뿌리를 둔 프리미엄 브랜드의 공통적인 취약점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비스포크 문화는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제네시스는 이제 출범한 지 1년 반 밖에 지나지 않은 신생 브랜드다. 심지어 아직 정체성도 불분명하고, 정체성을 뒷받침할 제품군도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공을 들여 제품을 잘 만들어도, 소비자가 제네시스를 이미 오랜 세월동안 자리를 다져온 선발 프리미엄 브랜드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비스포크 제작 개념에 담긴 좋은 의도를 제품에 반영하겠다는 뜻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납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기본적인 능력과 풍부한 경험을 갖추고 소비자와 소통하며 성숙하고 믿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전에 ‘비스포크’ 같은 단어를 쓰는 것은 성급해 보인다.